낙원의 이면 & 드로잉 여행 뒷 이야기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꾸며

by 괜찮은 작가 imkylim

다소 짧았지만 알차게 보낸 여행이었다. 하지만 유쾌함 뒤를 붙잡는 찜찜함이 있다.


하와이는 노숙자가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말이 있다. 따스한 날씨에 너른 잔디밭,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해변가 샤워 시설과 화장실, 주택가에는 과실수가 그득하다. 모기와 파리도 보이지 않는다. 수영팬티 한 장만 입은 사람도 많으므로 헐벗은 건지 태양과 바다를 즐기는 관광객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아침에는 잔디밭과 벤치에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늦잠을 자고 있거나 짐을 챙겨 어슬렁거리고 있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혹여나 비행기가 뜨지 않아도 며칠쯤은 숙소 없이 살 수 있겠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왔다.


위에 적은 조건 중 모기와 파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거기 머무는 동안 개미는 봤지만 모기와 파리는 보지 못했다. 신기해서 귀국한 뒤 그 이유를 검색해 보았다. 「6월부터 9월은 건기이고, 바람이 강해 모기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주요 관광지는 방역이 철저하고 쓰레기 관리도 잘 되기에 파리가 거의 없다. 특히 오하우 남부는 건조하고 방역이 잘 되므로 관광객은 모기를 거의 볼 수 없다.」


타당한 이유였지만 내가 머문 기간 동안 이상 기후라 그랬는지 건기인데도 비가 잠깐씩 뿌렸다. 그렇다면 바람과 방역. 연중 무역풍이 불기에 선풍기라도 틀어놓은 양 바람이 부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기가 살지 못할 정도로 거세다고 볼 수는 없었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와이키키 거리에 보이지 않는 파리. 그렇다면 방제를 얼마나 한 것일까.


이어 와이키키 해변이 자연산이 아니라는 점이 머리를 스친다. 와이키키 해변은 탁 트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덜했다.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파제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많아서였다. 거센 파도를 한 번 걸러주어 관광객의 안전 도모도 하지만, 모래 때문이라고 한다. 몰아치는 파도에 유실되는 모래를 계속 보충해 주어야 하는데, 한때는 캘리포니아에서 퍼다 날랐고, 지금은 와이키키 앞바다의 모래를 퍼다 해변에 채운다고. 말하자면 와이키키는 인공 예술 작품이라는 뜻인데, 그게 썩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해변가의 리조트와 호텔이 없었어도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런데 이게 하와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하천 주변이나 오래된 동네에는 파리와 모기가 많지만 잘 사는 동네는 덜하다. 쓰레기 수거와 방역이 잘 되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자본이 만든 구획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는 인공 백사장이 있으며 해운대에도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한 방파제와 모래 채우기는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자연을 즐기기 위해 자연을 조작하는 아이러니는 한국에서도 하와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아름다운 경치, 청결함과 편리한 시설 덕에 즐기고 왔다고 그저 만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결국 지상낙원이라는 곳도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이면의 구조를 떠올릴 때면 ‘어디까지가 자연인가’ 하는 질문이 고개를 든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jpg
제방 위에서.jpg


나의 첫 여행 드로잉,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생각해 본다.


* 좋았던 점

1. 여행 중 드로잉은 당시에도 만족스러웠지만, 여행이 끝난 후에도 기억이 오래 남는다.

2. 기록하다 보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유를 길어 올리게 될 때가 있다. 보통 여행을 가면 비슷한 곳에서 즐기고 소비하며 비슷한 인증샷을 찍기가 되기 쉬운데, 그림과 기록을 통해 나만의 시각과 자기 성찰이 더해진 듯하다.


* 아쉬웠던 점

1. 현장에서의 그림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2. 짐은 최소한이어야 한다. 줄인다고 줄였지만 더 줄였어야 한다.

3. 나만의 여행 주제가 있었다면 더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 아쉬웠던 점을 보완한다는 면에서 다음 여행 드로잉은 컨투어드로잉 위주가 될 듯하다. 펜과 노트만 있어도 되니 짐이 가볍다. 이어진 라인 그림이니 빠르게 그릴 수 있다. 포인트 채색 정도라도 하고 싶다면 색연필 두어 가지나 최소한의 물감을 더하면 된다.

컨투어드로잉을 진즉 기억해내지 못했던 게 아쉽다. 하지만 그건 아마 몇 번 해 보지 않아서일 것이다. 또한 직접 여행 드로잉을 해 봤기에 깨닫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 교통수단의 발달로 우리는 여행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저 돌아다니는 것은 탄소 배출만 늘리는 행위이다. 여행의 질적 가치를 높이는 건 아무래도 인식의 확장일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만의 여행 주제를 정하고 싶다. 전통문화, 음식, 건물, 예술 등의 테마를 파고들면 더 흥미롭고 영감과 통찰을 얻게 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소망한다. 공항에 면세점 말고, 편안하고 커다란 서점이 곳곳에 생기면 좋겠다. 시간을 때운다기보다는, 다른 장소로 떠날 때 조금이라도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조금 더 다채로운 여행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이를테면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안내서, 에세이, 여행을 기록할 수 있는 노트 및 문구류, 여행 중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중심으로 큐레이션한 장소 말이다.

내가 여행 중에 참 좋았다, 하고 회상하는 것들은 대개가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만난 사람들과의 나눈 웃음, 하늘과 바다, 산책로, 길에 떨어져 있던 망고 등. 그러니 여행의 첫 출발지이자 마지막에 들르는 공항에서 면세품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보는 게 낫지 않은가 싶다. 우리가 소비할수록 자연은, 그러니까 공짜라고 생각하고 누렸던 아름다움은 훼손되기만 하니 말이다.


plus) 나는 여행을 가면서 로밍을 하지 않았다. 물론 숙소에서는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지만 숙소 밖에서는 인터넷을 쓸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빵나무를 확신하지 못했고 엉뚱한 꽃을 오히아 레후아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이왕 햄버거를 먹는다면 그 지역만의 특색이 담긴 곳을 찾고자 하는 성향의 내가 식당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맥도널드에 들어간 것도 그랬다. 하지만 잘한 일이었다. 모든 걸 다 알고 행동하는 건 썩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그 덕에 실수도 착각도, 우연한 만남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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