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아 레후아가 아니었다

by 괜찮은 작가 imkylim

하와이에 가기 전, 오히아 레후아라는 식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랬다

1) 화산의 여신 펠레가 멋진 청년 오히아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

2) 오히아에게는 레후아라는 연인이 있었기에 펠레의 고백을 거절

3) 펠레는 질투심에 오히아를 나무로 만들어 버림

4) 레후아는 조상신에게 오히아를 돌려달라 애원하고, 신들은 레후아를 오히아 나무의 꽃으로 변모시킴

5) 결국은 호이아와 레후아가 영원히 연결됨

* 하와이에서는 레후아 꽃을 꺾으면 연인의 이별을 슬퍼하는 비가 내린다고 함


전설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는 식물의 특징이 매력적이었다. 용암 지대에서 최초로 자라는 식물이고 하와이에서 가장 흔한 자생나무이며 매우 가변적이라서 다양한 고도와 토양 조건에 따라 키, 형태, 잎 모양, 성장 습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이를테면 키가 25미터까지 자라기도 하고 바닥에 엎드려 기듯 퍼지기도 한다. 곧고 미끈하게도 뒤틀린 채로도 자란다. 꽃 색깔도 빨강에서 분홍, 주황, 노랑까지 다양하다. 잎의 기공은 이산화황과 같은 화산 유해가스가 있는 경우에는 닫힌다.

오히아 레후아.jpg 여행 전에 그려봤던 오히아 레후아
오히아레후아.jpg 카우아이에서 본 오히아 레후아


나는 하와이에 가면 오히아 레후아를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가장 흔한 자생나무라고 했으니까. 실제로 카우아이 섬에서 딱 한 번 봤다. 오아후 섬 길거리에서 오히아 레후아(라고 믿은) 사진을 찍으며 의외로 흔하지는 않네? 하고 생각했다. 미리 찾아봤던 꽃 모양과 좀 달라 보이긴 했지만 가변적이라고 했으니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행에서 돌아와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했다. 이게 정말 오히아 레후아가 맞을까? 검색 결과, 그건 레드 파우더 퍼프였다.


여행 전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것은 나의 불찰이지만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오히아 레후아는 생명력이 강하다며! 하와이에서 가장 흔한 자생나무라며! 내가 보지 못한 어딘가에 오히아 레후아가 살고 있다는 건 알지만 속상했다.


하와이 토종인 오히아 레후아는 원래는 해안가의 건조한 지역부터 해발 2,500미터 이상의 고지대까지 널리 자라지만, 최근 급성 오히아 괴사병이라는 외래 곰팡이병 등의 병해충으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토종 삼림의 약 60~80%를 차지했던 오히아 레후아가 쓰러진다는 것은, 수많은 토착 생물이 함께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봤던 레드 파우더 퍼프는 낮은 지대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하와이의 거리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래종으로 오히아 레후아와 붉은 꽃이 비슷하게 생겨 혼동하기 쉽다고 했다. 레후아 하올레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외국인 레후아라는 뜻이라고 했다. 외래종이라는 의미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헷갈린다는 의미도 될 것 같았다. 용어에서조차 외래종이 토착종을 대체하는 비극적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했다.

레드 파우더 퍼프.jpg 레드 파우더 퍼프(레후아 하올레)
레드파우더 퍼프.jpg

놀라운 생명력을 지녔다던 토착 생명이 힘없이 자리를 비켜주는 걸 보며 이런 추세라면 하와이 숲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 가능한 하와이를 위해 우리는 생명 공동체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책임을 가져야 할 터였다. 내가 혹시 다음에 또 하와이에 간다면, 그때는 붉게 타오르는 진짜 레후아 꽃을 흔하게 볼 수 있을까. 제발 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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