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 대한 표현은 초급 1에서 배웁니다. 날짜 읽기, 하루 일과 이야기, 단위와 가격에 대한 주제를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수’와 ‘숫자’는 무엇이 다를까요?
* 수: 셀 수 있는 사물을 세어서 나타낸 값.
자연수, 정수, 분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좁은 뜻으로는 자연수를 가리킨다.
* 숫자: 수를 나타내는 글자.
금전, 예산, 통계 따위에 숫자로 표시되는 사항. 또는 수량적인 사항.
사물이나 사람의 수.
수는 수량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값이고 숫자는 그 값을 표기하는 기호입니다. 별이라는 개념을 별이라는 글씨나 ☆로 표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123은 백의 자리 숫자 1, 십의 자리 숫자 2, 일의 자리 숫자 3으로 이루어진 세 자릿수입니다. 아라비아 숫자는 0~9, 10개뿐이지만 이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수는 무수히 많지요.
수는 ‘많다/적다’와 같은 양을 느끼게 하는 형용사와 잘 어울리지만, 숫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고 하지 숫자 많은 밤을 지새웠다고는 하지 않잖아요? 또한 학생 수가 많다, 는 괜찮아도 학생 숫자가 많다고 하면 어색하지요. 만약 번호판 수가 많다고 하면, 번호판의 개수가 몇 개인지 정확히 모르더라도 일단은 많다는 뜻입니다. 반면 번호판 숫자가 크다고 하면 거기 적힌 숫자의 폰트 크기가 크다는 뜻이거나 9999처럼 높은 자리 숫자라는 뜻입니다.
수는 ‘늘다/줄다’에도 잘 어울립니다. 조회 수가 늘었다고 하지 조회 숫자가 늘었다고 하면 어색해요. 물론 일상에서는 학생 수/숫자가 줄었다, 실업자 수/숫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튜브 영상 조회 수/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와 같이 수와 숫자를 혼용해서 쓰는 예도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 수/실업자 수/조회 수가 늘었다”가 더 자연스럽고, “학생 숫자/실업자 숫자/조회 숫자”는 수치를 강조한 어감입니다.
작가 최유안의 단편 소설 ‘영과 일’에 나오는 문구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증식. 대체 화폐도 결국 증식하게 되어 있지. 그것 역시 새로운 개념의 숫자일 뿐이거든. 새롭게 만들어지는 산업은 어디든 있어. 새로운 교통수단,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인프라. 미래 산업 구도를 예측한 숫자의 재배열, 그건 투자 관리자의 기본 덕목이야.」
숫자의 냉철하고 차가운 느낌이 읽히지요? 작가는 숫자를 정보를 처리하고 기록하는 기호에서 가치 판단 기준으로 확장하면서 투자 매니저인 화자의 실용적인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수익률, 점수와 등급, 순위 앞에서 숫자가 공정하며 객관적이라고 여깁니다. 좋아요와 별점 등 사람의 마음도 숫자로 환산되고 있어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어른들은 숫자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이제 그 숫자는 예전보다 더욱 넓은 범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이는 부정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표하는 숫자에 담긴 사회적 편견은 거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지요. 숫자는 가만히 있는데, 숫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꽤 선택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