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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13. 2024

소설_행복한 국숫집 1화

  한동안 ‘행복한 국숫집’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국숫집 건너편 안경원에 앉아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하릴없이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혹시 그들을 마주친다면 미소를 지어야 할지, 위로를 건네야 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괜히 민망해서 내가 먼저 눈을 피할지도 몰랐다. 그랬는데 오늘, 한 달여 닫혀있던 국숫집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눈을 비비고 상체를 내밀어 그쪽을 쳐다보았다. 곧이어 국숫집 불이 켜졌다. 빼빼 아재 부부였다.     



  안경원과 국숫집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너편 골목의 입구 모퉁이에 있었다. 개발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일대에는 임대를 기다리는 신축 건물이 즐비했다. 일 층에 행복한 국숫집이 있는 삼 층짜리 건물 위쪽에도 임대 문의라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 건물 바로 옆 필지는 드문드문 잡초와 돌무더기가 있는 빈터였고 임시로 꽂아둔 두 개의 쇠막대 사이에 걸린 현수막에는 매매라 쓰여 있었다. 그렇게 주변이 다소 스산했지만 군데군데 들어선 신규 상가들은 제각각 말끔하게 단장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국숫집도 마찬가지였는데 거기엔 내 눈길을 끄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일단 국숫집의 아파트 쪽 도로와 골목 쪽을 접한 두 면은 통유리였다. 벽과 천정은 온통 하얀 페인트로 칠해 있었고 민들레 홀씨 모양의 펜던트 조명을 곳곳에 달아 국숫집 내부는 매우 화사하게 빛이 났다. 창가에는 바 테이블이, 안쪽에는 서너 개의 작은 월넛 나무 식탁이 있었다. 식당 벽면에는 메뉴가 적힌 월넛 나무 도마가 걸려있었는데, 메뉴는 국수 두 가지와 만두뿐. 화려한 인테리어에 비해 매우 단출하고 소박해서 어쩐지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국숫집 분위기만큼이나 어딘가 안 어울리는 남자가 둘 있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오십 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배불뚝이 아저씨와 양복을 입고 안경을 낀 마른 체형의 아저씨였다. 나는 그들을 불뚝 아재과 빼빼 아재라 불렀는데, 두 아재를 우습게 봐서 그러는 건 결코 아니었다. 예전부터 아재라는 단어가 친근하고 좋았다. 물론 그들을 직접 그렇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나는 행복한 국숫집에 대한 방문자 리뷰를 찾아본 적이 있었다. 리뷰는 고작 일곱 개에 불과했지만 별 개수는 하나부터 다섯까지 골고루였다. 국수가 맛이 없다든가 가격 대비 추천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고, 사장이 친절해서 좋다든가 인테리어가 고급스럽다든가 국수가 맛있다는 호평도 있었다. 요즘은 식당에 방문하기 전 리뷰부터 확인하는 사람이 많아서 맛집으로 소문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실제로 손님이 북적이는 건 오픈 뒤 며칠 외에는 보지 못했다. 그랬기에 행복한 국숫집은 고개를 갸웃할 법한 간판명이었다. 그래도 나는 행복이라는 말이 가게 매출과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경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해, 장기간 이어지는 코로나19로 많은 자영업자가 사업을 접거나 축소했다. 우리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경원 말고 문구점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건비라도 아낀다며 문구점 직원을 내보내고 직접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히 해고되지 않았지만 오롯이 혼자 안경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아침 열 시에 출근해서 가게를 청소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콘택트렌즈 용액을 새로 채우고, 물품을 정리하다가 손님을 맞이했다. 틈틈이 유리창과 진열대도 말끔하게 닦고 소독했다. 하지만 장사가 썩 잘 되지는 않았다. 손님들은 시력 검사 장비에 이마와 턱을 밀착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간혹 혼자 오는 손님의 경우 안경이 잘 맞는지를 봐주었는데, 그들은 안경을 써보고 안경사인 나와 마주 보는 것도 꺼렸다. 안경이 잘 어울리는지 살피려면 마스크를 잠깐이라도 내려야 했기에 서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마스크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이, 마스크를 쓰고라도 만나고 싶은 사이, 마스크를 쓰고도 필요 이상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손님 간에는 딱 필요한 일만 주고받으면 되었는데, 그건 안경사 국가시험을 준비하면서 내가 꿈꾸던 것과는 달랐다. 손님들과 마주 보고 웃으며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는 나, 내가 골라준 안경과 내 친절함에 반해 단골이 되는 손님, 그 안에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럴 기회가 좀처럼 없어서 아쉬웠다.


  작년 가을이었다. 유난히 손님이 없어 나는 음악을 들으며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건물 일 층 코너에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건물은 내가 안경원에 처음 왔을 때 완공되었지만 내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까 건물이 세워지고 거의 구 개월 만에 누군가가 거기에서 장사를 하려는 거였다. 내 일도 아니건만 이런 시기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게 괜찮을지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신축 건물이 비어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생기면 주변 분위기도 나아질 것 같았다. 더욱이 커다란 통유리 안쪽으로 자연스러운 나뭇결이 돋보이는 테이블이 놓이는 걸 보면서 나는 점점 설레었다. 어떤 업종일지 헤아려 보았다. 인테리어로 봐서는 카페일 것 같았다. 이왕이면 내가 일하다가 얼른 먹기 편한 샌드위치도 팔았으면 했다. 앙버터나 마카롱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저런 분위기라면 사장은 내 또래의 여자가 아닐까도 싶었다. 그러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아니, 멋진 남자라면 더 좋을 거 같았다. 훤칠한 훈남과 유리창을 통해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다가 그만 얼굴까지 붉어졌다.


  나는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 가게 주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다행히 안경원과 그 건물 사이는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골목길이기에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보였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젊은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현장 소장처럼 보이는 아저씨만 상황을 둘러보고 갔다. 심지어 가게 단장이 거의 마무리되었는데도 커피머신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쩐지 애가 탔다. 그리고 인테리어 마지막 날에 붙은 간판은 ‘행복한 국숫집’이었다. 도대체 무슨 국수를 팔겠다는 건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길을 건너 국숫집 앞으로 갔다. 식당 안에 붙은 작은 도마에는 딱 세 줄의 메뉴가 적혀 있었다. 멸치국수, 열무국수, 고기만두. 내가 짐작했던 게 맞을 거라 장담한 것은 아니었지만 배반이라도 당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젊고 잘생긴 남자가 가게를 맡을 가능성은 적어진 것 같았다. 나는 국숫집을 향해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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