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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14. 2024

소설_행복한 국숫집 2화

  행복한 국숫집이 개업한 날, 거기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드나들었다. 대개가 화분을 들고 있거나 서로 마주 보며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지인들 같았다. 주방에서 일하고 음식을 나르는 아주머니는 두 명이었다. 사장은 내가 현장 소장일 거라 여겼던 배가 불룩한 아저씨, 그러니까 불뚝 아재였다. 너털웃음을 머금으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그는 피부가 거무튀튀하고 머리카락은 뻣뻣해 보였다. 나는 그날 종일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도대체 뭘 기대한 거냐고 나를 꾸짖고 또 꾸짖었다. 그리고 그 뒤로 국숫집을 가능한 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눈길이 다시 국숫집으로 향하게 되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밤새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주변 상인들과 나는 각자 자신의 가게 앞에 쌓인 눈을 쓸고 있었다. 다 치우고 안경원으로 들어가려는데 길 건너편에서 “형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불뚝 아재가 마르고 안경 쓴 아저씨, 그러니까 빼빼 아재와 친근하게 주먹 악수를 하고 있었다. 신발까지 젖어 추웠던 나는 얼른 가게로 들어와 슬리퍼로 갈아 신고 빗자루를 창고에 넣었다. 그런데 오픈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자꾸만 그들에게 시선이 갔다.


  마스크로 인해 잔뜩 김이 서린 안경을 쓴 빼빼 아재는 들고 있던 검정 비닐봉지에서 샛노란 집게를 꺼냈다. 그러고는 눈밭에 쭈그리고 앉아 꿈실꿈실 움직였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싶어 쳐다보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빼빼 아재의 손바닥에는 매끈하고 통통한 눈오리가 있었다. 그 집게는 눈오리를 만드는 틀이었다. 눈오리를 넘겨받은 불뚝 아재는 허리까지 젖혀가며 웃었다.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형님, 이거 너무 귀여운데요? 하는 것 같았다. 두 아재는 함께 눈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눈이 제대로 뭉쳐지지 않아서 오리가 깨지면 그걸 보고도 와르르 웃었다. 마침내 열 마리가량 만들어서 가게 앞에 나란히 줄을 세워 놓았다. 그러다 장난기가 동했는지 두 마리를 뽀뽀하는 것처럼 붙여놓고 또 웃었다. 희미하지만 오리 오리 꽥꽥 하고 오리 가족 동요를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빼빼 아재도 가끔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까지 들리지 않았다. 눈길을 조심스레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두 아재가 눈놀이하며 동요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한참을 밖에 있던 두 아재는 이윽고 국숫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불뚝 아재가 김이 오르는 국수 두 그릇을 주방에서 가지고 나왔다. 언젠가부터 아주머니들을 다 내보내고 불뚝 아재 혼자 일하는 듯했다. 그래도 될 만큼 국숫집에 드나드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앉아 국수를 먹으며 계속 말을 주고받았다. 빼빼 아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인 불뚝 아재의 어깨를 토닥이기도 했다. 그리고 노란 집게를 불뚝 아재에게 건넸다. 기죽은 듯 수그리고 있던 불뚝 아재가 다시금 환하게 웃었다. 위로와 격려, 그런 낱말이 떠올랐다. 길 건너 내가 있는 곳까지 훈훈함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국숫집 앞 오리는 녹아 없어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오리들을 볼 때마다 의좋은 형제 같았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국숫집을 유난스럽게 쳐다본 건 아니었지만 빼빼 아재가 손님들을 몰고 국숫집에 들어가는 건 몇 번 봤다. 빼빼 아재는 양복 위에 코트나 점퍼를 입고 주로 저녁 시간과 주말에만 나타나는 걸 봐서는 직장에 다니는 것 같았다. 함께 가게로 데리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주로 빼빼 아재보다 젊어 보였다. 빼빼 아재 일행은 행동도 크지 않았고 서로 예의를 지키며 식사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학교의 교감이나 교장, 아니면 직급이 좀 되는 공무원일 것 같았다. 빼빼 아재는 국수만 시키는 게 아니라 만두까지 추가하는 일이 잦았다. 가끔은 너무 많이 시켰는지 남은 만두를 싸가기도 했다. 빼빼 아재가 불뚝 아재의 가게 매출을 올려주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다. 불뚝 아재도 빼빼 아재가 나타나면 커다랗게 양팔을 들면서 환대했고 가게를 나설 때는 문밖에까지 따라 나와 인사를 하는 등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나는 그들이 어떤 관계일지 궁금했다. 일단 불뚝 아재가 형님이라 부르는 걸 봐서 빼빼 아재의 나이가 더 많은 건 확실했다. 그래도 빼빼 아재는 불뚝 아재보다 피부가 깨끗해 보였고 희끗희끗한 머리 스타일도 단정했다. 아무튼 외모에서 둘은 중간키 정도 된다는 것 말고는 딱히 비슷한 데가 없었다. 불뚝 아재는 우락부락한 이미지에 행동이 컸지만 빼빼 아재는 순한 선비처럼 보였다. 친형제로 보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렇다면 먼 친척이거나 아주 친밀한 선후배 관계일까 싶기도 했다. 어린 시절 고향 골목에서 함께 놀던 사이일 수도 있었다. 사실 그들이 무슨 사이이든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삭막한 세상에서 그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한 일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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