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올해 초봄,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두 아재가 함께 안경원에 온 날이었다. 불뚝 아재가 빼빼 아재를 억지로 데리고 들어오는 듯 보였지만 어쨌든 반가웠다. 나는 너무 기쁘고 놀라워서 아재들, 어쩐 일이세요? 하고 호들갑을 떨 뻔했지만 간신히 참고 평소 다른 손님에게 하듯 인사했다. 빼빼 아재는 내 인사에 안녕하세요, 하고 답하고는 불뚝 아재에게 “내 안경이 뭐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하며 구시렁거렸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어딘가 들떠 보였다. 불뚝 아재는 “아이고 형님, 제가 다른 안경으로 맞춰드릴게요. 군소리 말고 하나 하세요.” 했다.
나는 국숫집의 매출이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십만 원 이하의 안경테가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불뚝 아재는 몇 개의 테를 골라 빼빼 아재에게 권했다. 그러다가 가격표를 보고는 “아니, 이런 것밖에 없어? 우리 형님한테 비싼 걸로 해 드려야 하는데.” 하고 말했다. 나는 불뚝 아재의 느닷없는 반말에 살짝 놀랐지만, 고가의 안경테가 있는 쪽으로 다시 안내했다. 불뚝 아재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가격표를 살피고 가장 비싼 것으로 골라 빼빼 아재에게 내밀었다. 빼빼 아재는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안경을 써보고는 상체를 굽혀 테이블 위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내가 “고객님, 잘 어울리는지 제가 한번 봐 드릴게요.”하고 말하자 불뚝 아재가 얼른 나를 막아섰다. “형님, 제가 봐 드릴게요. 자 여기 봐요.”
빼빼 아재는 처음에 어색해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여러 개의 안경을 써 보았다. 그렇게 얼굴을 여러 번 정면으로 바라보는 중년의 두 아재 옆에서 나는 그저 걸리적거리는 나무토막이 된 느낌마저 들었다. 약간 각이 진 안경테를 가리키면서 불뚝 아재가 말했다. “형님, 이런 걸 쓰면 은퇴해도 현역처럼 보일 겁니다.” 빼빼 아재는 살짝 울컥하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고, 불뚝 아재는 “우리 사이에 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했다.
나는 빼빼 아재의 시력검사를 한 뒤, 렌즈까지 제작되려면 삼일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계약금을 받으려는데 누구에게 받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불뚝 아재는 “제가 형님한테 드리는 선물이잖아요!” 했고, 빼빼 아재는 상의에서 지갑을 꺼내며 “괜찮다는데 그러네. 내 안경이니까 내가 계산할게.” 했다. 그리고 빼빼 아재가 연락할 이름을 계약서에 적으려고 김, 까지 썼는데 불뚝 아재가 갑자기 정색했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뚝 일어날 거예요!” 빼빼 아재는 불뚝 아재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다. 불뚝 아재는 내게 뭉툭한 손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며 말했다. “나, 이 앞에 행복한 국숫집 사장인데, 국수 한번 먹으러 와.”
역시 두 아재의 친밀감이 유별난 것 같기는 했다. 연락처로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나는 둘의 성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불뚝 아재는 강 씨였고, 빼빼 아재는 김 씨였다. 역시 친형제가 아니었다. 둘의 말투가 아주 다른 걸 봐서 같은 고향에서 자란 사이도 아닌 것 같았다. 불뚝 아재에게는 어느 지역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억양이 있었고 빼빼 아재는 평범한 표준 말씨를 썼다.
며칠 뒤, 불뚝 아재는 혼자 안경을 찾으러 왔다. 안경집을 열어서 확인하고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툼한 손에 잡힌 안경은 가늘고 연약해 보였다. 아재는 남은 잔금을 보면서 오만 원만 깎아달라 했다. 나는 느닷없는 요구에 당황스러웠다. 사장이 아니라서 그건 어렵다고 하자 막무가내로 사장 전화번호를 달라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불뚝 아재가 냉큼 전화기를 빼앗았다. 아재는 한참의 흥정을 했고 마침내 삼만 원을 할인받았다. 아재는 혼잣말하듯 아, 엄청 빡빡하게 구네, 하고 중얼거리고는 씩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 뭐냐. 기브 앤 테이크 알지? 내가 이렇게 비싼 안경도 사줬는데 아가씨도 국수 먹으러 와. 다 맛있어.” 그러고는 다짐을 받겠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내가 마지못해 네, 그럴게요, 하고 대답하자 그제야 눈길을 거두었다.
안경을 맞추러 왔을 때도 나에게 존댓말을 않더니. 나는 마음이 상했다. 당시에는 내가 아재들에 대한 친근감에 조금 놀라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더구나 국수 먹으러 오라는 말이 두 번째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국수 한 그릇 그냥 주겠다는 뜻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순진한 착각을 한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반드시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듯 말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다. 어쩌면 빼빼 아재와도 순수한 우정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 아재가 어떤 사이일지 부쩍 궁금했다.
그다음부터 나도 모르게 빼빼 아재가 국숫집에 들르는 오후 일곱 시 즈음이 되면 그쪽으로 눈길이 갔다. 빼빼 아재가 국숫집에 매일 나타나는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데리고 오든 혼자 오든 일주일에 서너 번은 보였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혼자 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매번 같은 식당에 가자고 하면 굉장한 맛집이 아닌 이상 나라도 썩 내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면 혼자가 더 편해서일 수도 있었다. 빼빼 아재는 국수를 먹고 금방 자리를 뜨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때는 밤 열 시에 식당을 닫을 때까지 머물다가 불뚝 아재가 정리하는 것을 도운 다음 함께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 머무르려면 아무래도 혼자가 나을 거였다. 그리고 식당에 둘만 남았을 때는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었다.
거의 매일 만나면서도 할 말이 그렇게도 많다는 게 신기했다. 두 아재는 내가 분류한 사람의 관계로 보자면, 마스크를 쓰고라도 꼭 만나는 사이인 동시에 마스크 없이도 괜찮은 사이였다. 지난번에 안경을 맞추러 왔을 때 불뚝 아재는 빼빼 아재에게 안경을 직접 씌워주고 안경다리가 닿는 귀 근처도 살펴주는 등 정말 세심했었다. 그러면서 빼빼 아재의 얼굴에 불뚝 아재의 손이 닿곤 했는데, 둘 다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행여나 로맨틱한 사이라서 매일 보고 싶은 것일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