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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17. 2024

소설_행복한 국숫집 4화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난날이었다. 나는 손님을 맞느라 빼빼 아재가 국숫집에 들어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랬는데 우연히 건물 옆 주차장에 서 있는 한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어둠 속에 있었지만 국숫집의 조명 덕에 희미하게 보였다. 가벼운 체육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걸 봐서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 같았다. 반사적으로 식당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재 둘이 국수와 만두를 놓고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불뚝 아재는 뚱한 표정으로 배를 내밀고 앉아 팔을 쭉 뻗어 양쪽에 있는 의자 등받이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리고 빼빼 아재는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자세 탓인지 불뚝 아재는 평소보다 더욱 커 보였고 빼빼 아재는 훨씬 작아 보였다. 


  그 사이 손님이 안경테를 골랐고, 나는 적당한 렌즈를 추천하느라 창밖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손님이 나간 다음에야 바깥을 봤는데 아까 그 아주머니는 여전히 거기에 서 있었다. 목을 쭉 뻗어서 국숫집 안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다가 이내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매우 초조해 보였다. 아재 둘은 띄엄띄엄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불뚝 아재는 머리를 긁적였고 빼빼 아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양쪽 관자놀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잠시 뒤 빼빼 아재가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밖에 있던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 빠르게 걸었다. 식당을 나오는 빼빼 아재의 뒤에 대고 불뚝 아재가 형님, 하고 부르는 것 같았다. 빼빼 아재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내저었다. 그러고는 아주머니가 사라진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마른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다가 돌부리라도 있었는지 잠시 몸의 균형을 잃기도 했다. 나는 빼빼 아재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국숫집을 쳐다보았다. 불뚝 아재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거칠게 빈 그릇을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영업 종료 시각보다 조금 이르게 문을 닫았다.


  두 아재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어째서 아주머니는 쩔쩔매면서 국숫집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던 것인지도 궁금했다. 아주머니는 혹시 두 아재 중 한 명의 아내? 자기 남편의 마음을 빼앗은 사람이 여자일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도 남자였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당장에 뛰어 들어가 멱살을 잡지 않은 걸 봐서 그 아주머니는 생각이 많은 사람일 것 같았다. 이를테면 동성애에 관대했었는데, 그게 막상 가족의 문제가 되자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상황이랄까. 그리고 아재 둘은 아내가 눈치챈 것 같다고, 관계를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냐고, 혹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의논하는 중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내저었다. 괜히 아재 둘을 동성애라 단정하면서 상상을 펼치고 있는 내가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면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다 국숫집을 쳐다봤다. 일찌감치 불이 꺼진 국숫집이 쓸쓸해 보였다. 


  그러고는 일주일 정도 빼빼 아재가 국숫집에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점심에는 그나마 손님이 더러 있었지만, 빼빼 아재마저 오지 않자 저녁에는 테이블이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날, 나는 국숫집에 가보기로 했다. 둘쭉날쭉한 방문자 리뷰에 망설여지긴 했지만, 불뚝 아재가 두 번이나 국수 먹으러 오라며 재촉한 만큼 한번 다녀오는 게 마음 편했다. 안경원 출입문에 잠깐 자리를 비웁니다, 라는 메시지를 붙여놓고 건너편 국숫집으로 갔다. 


  나를 본 불뚝 아재는 안경원 아가씨 왔네! 하고 반가워하며 멸치국수? 했다. 조금 더운 날이었기에 시원한 열무국수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멸치국수와 김치, 단무지가 내 앞에 놓였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먼저 맛보았다. 멸치육수에서 비린 냄새가 훅 끼쳤다. 그리고 당근과 애호박, 양파를 한꺼번에 볶았는지 색이 선명하지 않아 맛깔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위에 조금 얹어있는 소고기는 잘게 다졌는데도 질겼다. 게다가 면이 불어 있었고 몇 가닥은 서로 들러붙어 있었다. 실수로 만들어 놓은 것을 나에게 파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저녁까지 근무하려면 어쨌든 배는 채워야 했다. 입에 당기지 않아 천천히 먹어서인지 국수가 점점 불어 양이 도통 줄어들지 않았다. 별 다섯 개짜리 방문자 리뷰와 호평은 불뚝 아재의 지인이 써 준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식당에 들어갈 때 열무국수를 먹고 있던 두 명이 계산하고 나가자 식당 안에는 불뚝 아재와 나만 남게 되었다. 불뚝 아재는 내 앞에 턱 앉아서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아가씨 얼굴도 반반한 게 남자가 꽤 꼬이겠는데? 조만간 국수 얻어먹게 생겼네. 나도 꼭 초대해. 축의금 두둑하게 들고 갈게.”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그런 말은 불편하다고 하자 불뚝 아재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딸 같아서 예쁘다고 칭찬한 건데 기분 나빴어?”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아재는 실실대고 웃으며 아가씨 퍽 예민하네, 했다. 말을 더 해보았자 통하지도 않고 얼굴만 붉힐 게 뻔했다. 나는 말없이 다시 젓가락을 집어 국수를 휘저었다. 그러나 더 먹다가는 배탈만 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이 없냐는 다급한 아재의 질문에 그저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고 둘러댔다. 


  불뚝 아재는 무례한 사람인 것 같았다. 내가 먹을 메뉴 선택에 대해서도 그렇고, 양해를 구하지 않고 내가 식사하는 테이블에 앉은 것도 그랬다. 정작 나는 아직 관심도 없는 나의 결혼에 대해서 불뚝 아재 마음대로 생각해 버리는 건 더더욱 끔찍했다. 안경원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불뚝 아재의 오래된 기름이 맺힌 듯한 탁한 눈동자도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맛이 없냐고 물어볼 때 아재의 말투는 약간 사납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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