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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20. 2024

소설_행복한 국숫집 6화(완결)

  불뚝 아재는 무심한 표정으로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갔다. 쟁반 위에는 국수가 세 그릇 얹혀있었다. 나는 조금 어지러워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불뚝 아재는 이윽고 국숫집 문을 열고 나가 빼빼 아재와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난감한 듯 서 있다가 뭐라 말하면서 두툼한 팔을 들어 가게 쪽을 가리켰다.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아재 둘을 외면하고 강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바닥에 붙은 듯 버티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셋은 국수를 앞에 두고 앉았다.


  비로소 나는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목이 탔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정수기로 다가가다 문득, 국수 안에 독극물이라도 탄 건 아닐지 불안했다. 그래도 증거 없이 신고부터 할 수는 없었다. 아까는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지만 이번에는 일단 동영상부터 찍기로 했다. 불뚝 아재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조심해야 했다. 화분 사이로 휴대폰의 렌즈 부분만 드러나게 세워놓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뭔가 의심쩍다 싶으면 얼른 112로 신고하려고 매장 무선 전화기를 내 옆에 갖다 놓았다. 국숫집으로 달려가 아주머니와 빼빼 아재를 구해야 할 상황에 대비해 신발도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잡지를 꺼내 들고 의자에 앉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척하며 행복한 국숫집을 훔쳐보았다. 숨소리도 죽였다. 그들은 한결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었는데 이윽고 머리를 맞대고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내가 지난번에 먹고 싶었던 열무국수였다. 아주머니는 열무김치로 면을 감싸며 먹고는 그릇을 들어 국물까지 싹 비웠다. 그러고는 빈 그릇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 모양으로 보아 시원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어이없었지만 나는 동영상 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셋은 또 한참 이야기했다. 가끔 한두 명씩 흥분하는 듯했지만 주먹다짐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서로 어색하나마 미소까지 주고받았다. 그들은 느긋하게 인스턴트 커피믹스를 타고 거기에 얼음까지 넣어 휘휘 저었다. 그리고 맥주 마시듯 건배하고는 시원하게 들이켰다. 나만 쓸데없이 긴장하고 있는가 싶어 얼떨떨한 기분마저 들었다. 


  한참 뒤, 빼빼 아재와 아주머니는 가게에서 나왔다. 그리고 지난번에 사라졌던 그 길로 걷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앞서서 걸었고 대각선 뒤쪽으로 빼빼 아재가 따라붙었다. 아주머니 발걸음이 빨라지면 아재도 그 속도에 맞추었다. 둘 사이의 간격은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 아주머니는 앞만 똑바로 봤고, 빼빼 아재는 두어 번 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마른 어깨가 위로 솟았다가 내려앉았다. 깊은 한숨을 쉬는 모양이었다. 내 입에서도 한숨이 나왔다. 


  불뚝 아재는 바깥이 꽤 어둑해지도록 멍하고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불뚝 아재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불뚝 아재는 이윽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없이 가게를 정리하고 불을 껐다. 그리고 국숫집 문을 열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분주한 척 움직였다. 그런데 밖으로 나왔던 불뚝 아재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나는 국숫집 안을 다시금 흘끗거렸다. 불뚝 아재는 깨끗한 A4용지를 꺼내놓고 한동안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펜을 들고 정성껏 종이에 무언가를 썼다. 그 종이를 국숫집 문 앞에 붙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기엔 딱 두 글자가 굵은 네임펜으로 적혀 있었다. 휴업.


  나는 그날, 그리고 다음 날까지 뉴스를 열심히 챙겨 보았다. 지방 뉴스까지 꼼꼼하게 보았고 놓친 사건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 뉴스도 수시로 검색했다. 혹여나 독극물로 인한 사망 사건이라도 터지면 증거물로 제출하려고 했던 동영상은 다행스럽게도 쓸 일이 없었다. 빼빼 아재 부부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최소한 큰 탈은 없다는 의미였다. 한편으로는 불뚝 아재가 칼을 들고나올까, 국수에 독극물을 탔을까, 그런 상상을 했던 게 생각나 불뚝 아재에게 미안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행복한 국숫집의 간판이 없어졌다. 두 아재도 보이지 않았다. 간판만 내렸지 다른 건 그대로였고 한 달째 불이 꺼져 있었다. 휴업이라 적힌 종이는 비에 젖고 마르면서 조금 찢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나는 닫힌 국숫집을 보면서 두 아재와 아주머니는 어찌 지내고 있을지 헤아려 보았다. 갈등이 극에 치달은 듯했던 모습과 국수를 먹고 냉커피로 건배하던 모습 등 어디에 치중해서 상상을 펼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랬는데 오늘 빼빼 아재와 아주머니가 국숫집에 나타난 거였다. 빼빼 아재 부부는 잠겨있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다니며 테이블과 찬장, 조명 등을 살펴보았다. 곧이어 작은 트럭이 도착했다. 트럭을 몰고 온 남자는 짐칸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렸다. 길쭉하고 반듯한 모양으로 봐서는 간판인 것 같았다. 식당에서 나온 아재가 트럭에서 내린 남자에게 간판의 위치를 알려주듯 분주한 손짓을 했다. 트럭 아저씨가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재는 이야기를 마친 뒤 아주머니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아주머니의 뒷짐 진 손 쪽으로 넌지시 자기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주머니는 앙칼지게 그 손을 내쳤다. 그러나 아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은근하게 웃으며 아주머니의 어깨를 툭 쳤다. 아주머니는 진저리를 치며 어깨를 털고 고개를 돌리기는 했지만 아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이제는 빼빼 아재 부부가 가게를 하게 된 모양이었다. 불현듯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간판의 포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간판일까? 행복한, 까지 보였다. 포장에 가려진 부분을 얼른 보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목을 힘껏 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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