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 망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며 느릿하게 일어나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실이었다. 어렴풋이 어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파로 몸을 던진 기억이 났다. 그러고는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등과 엉덩이가 축축했다. 땀도 흡수하지 못하는 푹 꺼진 소파에서 달게 잤다는 게 신기했다. 허리가 살짝 뻐근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기지개를 켜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지난 몇 달간 매일같이 국숫집에서 바쁘게 장사 준비를 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 열 시였다.
나는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국숫집 문을 닫았다. 그것이 그저 지난밤의 꿈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행복한 국숫집’이라는 간판명을 떠올리자 부끄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어제저녁, 마지막으로 국숫집 불을 끄고 나오면서 출입문에 휴업이라 쓴 종이를 붙였다. 폐업이라 쓰면 거기서 앞으로 누가 무슨 장사를 하든 망해 나가는 저주라도 내려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김 씨는 식당을 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든 찾아보겠노라 했다. 그래야 인테리어 철거 비용과 남은 기간 월세를 부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사업의 시작과 끝을 모두 김 씨에게 맡겨버린 셈이었다. 내가 직접 해야 할 폐업 신고와 영수증 처리 같은 자잘한 일이 남아있지만 서두를 건 없었다. 어차피 오늘부터 나는 백수, 남는 건 시간이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내가 대기업 연구소로 출근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작년 여름, 거의 30년간 일해온 직장을 그만두었다. 명예퇴직을 신청하라는 본사의 은근한 압력이 있기도 했지만 내가 젊었을 때 비웃던, 더는 실적도 못 내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자괴감이 큰 이유였다. 나에게는 딸린 가족도 없기에 그간 저축해 놓은 얼마간의 돈과 국민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워낙에 연구실에만 박혀 살아온 터라 특별한 취미도 없고 쇼핑을 즐기지 않아 돈 쓸 일이 많지도 않았다.
그저 연구실 밖 생활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땅히 만날 사람이나 돌아다닐 만한 데는 없었다. 다행히 내게는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동안 뉴스만 간신히 챙겨 보던 나는 채널을 돌려가며 며칠을 보냈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심지어 광고도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만 푹 빠져버렸다. 보름쯤 지나서는 헬스 채널을 틀어놓고 뱃살을 빼기 위한 요가 동작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요리 채널을 보면서 김치전을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반복되자 점점 시시해졌다.
휴대폰은 광고 문자나 안전 안내 문자가 도착했을 때만 진동했다. 돌이켜보면 연구소에 다닐 적에도 일 관련 연락 말고는 특별히 전화를 받은 기억이 없었다.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어느덧 텔레비전을 보며 이런 이런, 어허, 큰일이네, 잘했네 잘했어,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 위를 뒹굴며 온몸을 벅벅 긁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려 깜짝 놀랐다. 김 씨였다. “강 박사님, 명예퇴직하셨다면서요. 어떻게 지내세요?”
김 씨는 우리 연구소에 각종 실험용 기자재와 화공약품을 대는 회사의 영업팀장이었다. 그는 새로 채용된 영업사원이 있으면 각 팀에 데리고 다니며 인사부터 시켰다. 항상 반듯한 자세로 살뜰하게 신입사원을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다른 책임연구원들과 함께 김 씨와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었다. 그는 예의를 지킬 뿐 청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게 정직한 이미지 쌓기와 고객 관리 차원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더는 그에게 싸구려 공업용 메탄올조차 주문할 일이 없는 나에게 안부를 묻는 사람이라니!
김 씨는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내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만날 장소로 정한 샤부샤부 식당의 위치였다. 나는 끌어안고 있던 죽부인을 얼른 옆으로 제치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면도도 했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으며 거울에 비친 나의 손놀림은 생기가 도는 듯 가벼웠다. 오랜만에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머리도 살살 빗어넘겼다. 그리고 옷장에 걸린 등산복 중에서 가장 깨끗한 것으로 골라 입었다.
내가 식당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는데 종업원이 다가왔다. 김 씨는 이미 도착해 있다고 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갔다. 나를 본 김 씨는 얼른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가지런한 이가 다 드러나게 웃는 그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입이 벌어졌다. 나는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나보다 무려 세 살 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 씨가 익은 고기와 야채를 내 접시에 먼저 올려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먹은 게 무안했다. 게다가 불룩한 배도 어쩐지 부끄러워 손으로 슬그머니 가리며 “어이쿠, 형님이셨군요. 배도 하나도 안 나오고 피부도 좋아 보여서 저보다 젊으신 줄 알았어요.” 했다. 김 씨는 손을 내저으며 얼굴을 붉혔다. 곧이어 씁, 하고 입맛을 다신 뒤 읊조리듯 말했다. “젊어 보이면 뭐 합니까. 저도 내년 하반기에는 아무래도 퇴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 박사님 퇴직하셨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퇴직 생각만 하면 막막하다며 퇴직 선배로서의 조언을 부탁했다. 그리고 나에게 회사를 떠난 생활이 어떠한지 물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입만 벌렸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읊자니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하는 척 거짓을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입술 양 끝에 고인 침만 연신 닦아내는 나를 보더니, 조언은 천천히 듣겠다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뭘 꼭 얻고 싶어서 전화한 것은 아니라고, 퇴직한 남자들은 골방에 갇힌 듯 쓸쓸해지기 마련 아니겠냐고, 서로 비슷한 연배이니 가끔 만나 술친구를 하면 외롭지 않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만히 앉아 내가 사는 모습을 고스란히 들킨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김 씨는 나에게 양손으로 쇼핑백 하나를 건네었다. “푸젠성 무이암차라는 최고급 우롱차입니다.” 선물까지 챙겨온 그의 모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연구소에서 내가 열심히 지도했던 후배연구원들도 이러지는 않았던 것이다. 식삿값이라도 내려고 얼른 지갑을 꺼냈지만, 그가 벌써 계산까지 끝낸 뒤였다. 나는 겸연쩍어 목덜미를 긁으며 다음에 만나서는 내가 꼭 밥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