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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19. 2024

소설_행복한 국숫집 5화

  여태껏 두 아재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를 되짚어보았다. 처음 멀리서 봤을 때는 형제 내지는 우정이 돈독한 사이로 느껴졌다. 그러나 점점 수상쩍고 이상하게 보였다. 빼빼 아재는 어쩌다 저런 아재와 정을 나누게 되었을까? 문득 안경원에 방문했던 날 은퇴 운운하던 게 기억났다. 혹시 불뚝 아재가 빼빼 아재의 퇴직금에 손을 댄 걸까? 그러니까 빼빼 아재의 퇴직금을 불뚝 아재가 미리 가져다 썼는데 약속된 시간이 되도록 갚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안경은 빼빼 아재의 마음을 사거나 혹은 달래기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빼빼 아재가 공동 투자를 했지만 장사가 잘되지 않아 수익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빼빼 아재가 가게 매출을 올려주려고 애쓸 수밖에 없었을 거였다. 둘 사이가 묘한 애정 관계라기보다는 돈으로 엮인 것 같다는 의심이 훨씬 합리적인 것 같았다. 


  국숫집을 엿보던 아주머니도 떠올랐다. 만약 아주머니가 불뚝 아재의 아내라면 빼빼 아재에게 미안해서 식당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였다. 빼빼 아재의 아내라면 복잡했다. 우선 국숫집에 붙어있느라 자주 귀가가 늦는 남편이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게다가 빼빼 아재가 몰래 투자한 거라면, 아주머니는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행동하는 게 현명할지 고민하느라 머뭇거렸을 수도 있었다. 아주머니는 누구의 아내일까? 그러다가 나는 내 이마를 쳤다. 아주머니는 빼빼 아재의 아내일 가능성이 컸다. 빼빼 아재와 아주머니가 각자 향했던 같은 방향, 거긴 바로 그들의 집으로 가는 쪽일 터였다.


  나는 빼빼 아재와 아주머니에게 내가 불뚝 아재를 보면서 느낀 점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의 추측과 오지랖이 저들 사이에 괜한 소란만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설사 알려주려고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전화번호는 불뚝 아재의 것뿐이었다. 빼빼 아재와 아주머니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한, 말을 전할 방법은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모른척해도 될 텐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하다 하다 별생각을 다했다. 이를테면 눈으로 사람을 알 수 있을까, 하는. 불뚝 아재의 눈빛이 아무래도 찜찜했던 것이다.


  불뚝 아재는 눈이 조금 튀어나왔고 탁한 기름기가 있으며 눈꼬리는 짧은 편이었다. 빼빼 아재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지난번에 안경을 맞출 때뿐이어서 눈이 작고 눈꼬리가 약간 내려간 편이라는 것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른 휴대폰을 열어 눈 관상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내 눈조차도 어떤 눈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눈 관상으로 아재들을 파악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하기야, 눈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지를 누구나 척 알 수 있다면 어디 무서워서 눈을 드러내고 다닐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문득 며칠간 빼빼 아재가 보이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그렇다면 둘의 사이가 어떤 일로든 틀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이미 끝난 사이라면 내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빼빼 아재가 다시 국숫집에 나타났다. 그것도 저번에 어두운 주차장에서 국숫집을 보던 아주머니와 함께였다. 평소보다 이른 것 같아서 재빨리 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 즈음이었다. 나는 걸레를 손에 쥐고 유리를 닦는 척 문 앞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재 둘과 아주머니가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선 곳에서는 아주머니와 빼빼 아재의 앞모습과 불뚝 아재의 뒷모습이 보였다. 빼빼 아재는 우리 안경원에서 맞춘 안경이 아닌 예전 것을 쓰고 있었다. 빼빼 아재가 주로 말하고 있었는데 불뚝 아재는 팔짱을 끼고 앉아 느릿하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소에 형님이라 부르며 예의를 갖추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그러다 불뚝 아재가 가게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테이블 위에 뭔가를 쓰는 시늉도 했다. 곧이어 양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를 으쓱했다. 빼빼 아재가 이마에 손을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줄곧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던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두 아재를 번갈아 보면서 짜증을 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방을 열어 안경을 꺼냈다. 우리 안경원에서 맞춘 거였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주머니는 그 안경을 바닥에 거칠게 집어 던졌다. 곧이어 불뚝 아재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며 큰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불뚝 아재는 뻔뻔스럽게 앉은 채로 양팔을 옆으로 벌렸다. “배 째!”라는 말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곧이어 아재 둘에게 번갈아 가며 삿대질을 시작했다. 빼빼 아재가 일어나 아주머니를 말리려는 듯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는 빼빼 아재를 뿌리치고 씩씩대며 국숫집 문을 열었다. 빼빼 아재도 서둘러 아주머니를 쫓아 나왔다.


  나는 유리문에서 얼른 몸을 떼었다. 너무 한참 동안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어찌나 걸레를 꼭 쥐고 있었던지 손가락도 뻣뻣했다. 괜히 화분을 매만지고 안경 진열대도 살피는 척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바깥을 몰래 흘끔거렸다. 아주머니는 골목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빼빼 아재는 아주머니의 옆에 앉아 열심히 말했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고 버럭 화를 냈다. 눈물로 얼룩진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울컥하며 목이 메었다.


  이런 와중에 불뚝 아재는 뭘 하고 있을까 싶어 국숫집 안을 흘겨보았다. 불뚝 아재는 화를 참는 듯 씩씩거리는 것 같았는데 이윽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무시무시한 산적처럼 보이는 뒷모습이 섬뜩했다. 불뚝 아재가 왜 갑자기 주방으로 가는 걸까! 칼이라도 들고나오려는 거 아니야? 덜컥 겁이 났다. 뉴스에서나 보던 대낮의 살인사건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얼른 내 휴대폰을 찾았다. 긴장한 탓인지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허둥대던 나는 매장 전화라도 쓰려고 안경 진열대 뒤로 가다가 그제야 내 바지 뒷주머니에 휴대폰이 있는 걸 알아차렸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국숫집 주방 쪽을 살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고 진땀만 흘렀다. 그러다 주방에서 나오는 불뚝 아재와 눈이 마주쳤다. 놀라서 휴대폰을 놓칠 뻔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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