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팎을 오가는 일상의 낙원
자연도 도시도 좋지만 I(형)에게 집은 최고의 안식처다. 물론 매일의 반복적인 일감이 기다리는 일터지만, 가장 자기다울 수 있는 공간. 아침을 준비하고 흔들어 깨우고 일터와 학교로 떠나보내면, 아니 음악을 틀고 창문을 열고 대충 정리하고 커피를 내리면 이제 나만의 세상. 거실은 어느새 원하는 대로 읽고 쓰며 노는 작업실이 된다. 창문 너머로 초록의 풍경을 볼 수 있다면 더 완벽할 텐데. 결국 그 갈망 덕분에 밖으로 나가 걷고 산을 오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보나르의 실내 풍경화를 보면 황홀해진다. 아늑한 실내에서 창을 통해 다채로운 자연을 마주한 정경은 내가 꿈꾸는 낙원에 가장 가깝다.
주홍빛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에 새하얀 천이 덮인 동그란 식탁, 그 위에 다과가 반짝인다. 중심에 활짝 열린 문과 커다란 창 너머로 아기자기한 정원이 보인다. 밖에서 창틀에 팔을 기댄 빨간 옷의 여인이 집안을 지긋이 바라본다. 실내를 이리저리 떠돌다 보면 의자에 앉아 있는 하얀 고양이, 뒤쪽 선반에 놓인 꽃도 눈에 들어온다. 화가가 그랬듯이 우리의 시선은 강렬한 색조로 마음을 들뜨게 하는 실내와 햇살 가득한 정원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제야 문 사이 꽃밭에서 어른거리는 소녀가 보인다. 이 작품은 보나르가 1912년 센 강변에 구입한 시골집의 식당을 담아낸 것이다.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는 파리 근교에 정원이 있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기대대로 법학도가 되었지만 보나르는 미술에 대한, 좀 더 정확하게는 자유롭고 예술적인 삶에 대한 열망으로 화가를 선택했다. 쥘리앙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배우며 평생의 친구가 되는 에두아르 뷔야르와 모리스 드니를 만났고, 1890년경 이들은 폴 세루지에(1864~1927)가 이끄는 '나비파(Nabis)'에 합류한다. 예언자를 뜻하는 나비파는 폴 고갱(1848~1904)의 영향을 받아 화가의 내면과 해석을 중요시했다. 형식적으로는 '색채를 찬양하고 특징을 강조하는 선으로 형태를 단순화할 것'이라는 강령을 따랐다. 이러한 특성은 당시 유행하던 상징주의와 일본의 채색목판화 우키요에에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파리의 풍경과 중산층의 일상을 다룬 보나르의 초기작도 그런 장식적인 디자인 감각이 두드러졌다. 보나르는 그림뿐 아니라 광고 포스터와 삽화, 무대 디자인과 인테리어 소품 등 현대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점차 인정받았다.
1900년경 나비파는 각자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고, 보나르도 자기만의 표현을 모색했다. 생의 동반자이자 뮤즈가 되는 마르트(Marthe de Méligny, 1869–1942)를 자주 그렸고, 인상파의 밝은 색채와 자유로운 붓놀림을 실험했다. 재현에서 색채를 해방한 야수파(1906)와 형상을 해방한 입체파(1907)의 등장도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새로운 경향들은 미적 관습에서 벗어나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자극했다. 보나르는 특히 두 살 어린 앙리 마티스(1869~1954)와 자주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는 마티스의 <열린 창문>(1911)을 구입해 평생 작업실에 간직했다. 마티스는 1905년 프랑스 남부 콜리우르에서 창문 모티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이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변주해 그렸다. 창문 모티프는 보나르의 작업에서도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보나르는 센 강변과 노르망디, 프랑스 남부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결국 1912년 모네가 수련 연작을 그리고 있는 지베르니 근처 센 강변의 베르노네에 작은 집을 구입한다. 여름은 ‘나의 카라반(Ma Roulotte)'이라 부른 이곳에서, 겨울은 남부 지중해변에서 보내며 가끔 파리를 오갔다. 복잡한 도시보다 자연에 대한 열망이 커진 데다 몸이 아픈 마르트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한적한 시골에 둘만의 공간은 곧 작업의 주된 주제가 된다.
<센강이 보이는 창문>은 2층 거실을 보여준다. 시선은 바로 정면의 큰 창을 통해 보이는 푸른 하늘과 센강, 정원의 무성한 나무들로 향한다. 창문 앞 탁자에는 화가의 종이와 연필이 놓여 있고, 맞은편 의자에는 강아지가 앉아 있다. 강아지와 의자, 벽까지 온통 황톳빛이다. 오른쪽 테라스로 열린 문에는 밖을 향해 서있는 여인이 살짝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대표작처럼 창과 문의 구성과 색채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마티스처럼 색채에 사로잡힌 보나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색채를 위해 형태를 희생했다"라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그에게 구성은 예술의 모든 것이자 열쇠였다. 초기부터 보나르는 직접 찍은 사진이나 막 상영되기 시작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대담한 구성과 즉흥적인 움직임을 담았다. 또한 창이나 문, 테라스 등을 활용하여 '일상의 극장'을 제시했다.
대표작 <전원의 식당>의 일부를 클로즈업해 그린 <열린, 창이 달린 문>은 보나르의 농익은 양식을 보여준다. 열린 문쪽으로 다가가 바라본 장면은 노을빛을 받아 더욱 풍부한 색감으로 물들었다. 왼쪽 절반을 차지한 연보랏빛 문에 노란 바구니가 매달려있고, 맞은편에는 노란 체크무늬천이 깔린 식탁이 있다. 식당의 붉은 벽은 연보랏빛, 노란빛과 공명하며 짙은 여운을 남긴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정원은 더 풍성해졌고, 하늘은 주홍과 보라로 물들었다. 여름날 해 질 녘의 그윽한 풍경과 실내의 호화로운 색이 전하는 환희가 마음에 번진다. 보나르의 말대로 "색채는 행동한다."
보나르 그림만의 감성적이고 몽상적인 분위기는 작업 방식에 기인한다. 보나르는 인상파처럼 풍경 앞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 평소 영감의 순간에 그는 대상을 빠르게 드로잉 하고 날씨나 색채, 분위기 등을 기록했다. 이를 기반으로 작업실에서 과거의 기억과 느낌을 되새기고 상상하며 색조와 형태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보여주듯이, 인간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하고 왜곡되며 다르게 채색되는지. 보나르의 그림에서도 모호한 공간과 왜곡된 시선, 인물에 대한 심리적 깊이도 더해진다. 보나르는 보통 여러 작품의 캔버스천을 작업실 벽에 압핀으로 고정한 채 동시에 작업했다. 때때로 그림의 아웃라인이 변경되었고, 몇 년에 걸쳐 끊임없이 수정되기도 했다. 우리가 기억을 소환할 때마다 달라지듯이.
"저는 모든 소재를 손에 쥐고 있죠. 직접 가서 보고, 메모도 하고, 집에 돌아옵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생각에 잠기고, 꿈을 꿉니다."
같은 해의 <열린 창문>은 진주빛을 덧입어 더 꿈같은 분위기다. 2층 거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풍경인데, 역시 시선은 열린 창 너머의 풍경으로 향한다. 푸른 하늘,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와 보랏빛 그림자에 한참 머물게 된다. 화면은 열린 창과 어두운 블라인드, 스트라이프 벽지로 분할되었고, 실내의 따듯한 색조와 야외의 차가운 색조가 대비를 이룬다. 오른쪽 구석엔 의자에 기대앉은 여인이 검은 고양이를 어루만진다. 주황색 벽지에 스며든 여인은 마르트일 수도 있지만, 보나르가 이 시기 사랑에 빠진 모델 르네 몽샤티일 가능성이 높다.
마티스처럼 보나르도 일상에 표정을 더하는 창문을 사랑했다. 막힌 벽과 다르게 뚫린 창문은 세상을 향한 기대와 그리움, 소통과 자유 등을 상징한다. 특히나 열린 창문은 내부와 외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며 환기한다. 또한 사적 공간에서 벗어나 현실로 향하는 문이자 상상력과 창의성의 영역으로 통하는 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은 그림을 은유한다. 보나르는 화사하고 아늑한 실내와 광활하고 변화하는 자연을 다르게 표현했고, 이를 조화롭게 연결시켰다. 그에게 그림은 '서로 연결되는 얼룩의 연속'이었다.
몽샤티와의 불륜으로 마르트와의 관계가 깨질뻔한 후, 1925년 60을 바라보는 보나르는 오랜 협업자이기도 했던 마르트와 결혼했다. 몽샤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보나르는 큰 충격을 받았다. 건강이 악화된 마르트마저 신경 쇠약으로 폐쇄적으로 변해, 보나르는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다. 부부는 1926년 프랑스 남부 르 카네에 '작은 숲(Le Bosquet)‘이라 이름 지은 작은 별장을 구입했다. 여기서 보나르는 유명한 마르트의 목욕 연작(1925~39)을 남겼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몸짓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눈부신 색채로 담아낸 그림들은 몽환적이면서도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둘만의 세계를 보여준다. 친밀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보나르는 소심하지만 겸손한 성품으로 지인들에게 인정받았고, 초기부터 집안 정경과 일상의 내밀한 장면을 즐겨 다루어 '앙티미즘(Intimism)' 화가로 여겨졌다.
<정원을 향한 식당>은 휴가로 떠난 보르도 근교 아르카숑의 별장을 담아낸 것이다 화려한 보랏빛 벽지와 대조되는 창 너머 풍성한 정원도 아름답지만, 전면 식탁에 놓인 음식이 눈길을 끈다. 줄무늬가 있는 새하얀 식탁보 위에 놓인 과일과 빵, 차와 주전자가 햇살에 반짝인다. 이 무렵 보나르는 일상의 물건과 과일 등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정물을 자주 그렸다. 한편 왼쪽 가에 찻잔을 든 채 텅 빈 눈으로 서 있는 마르트는 모호하고 덧없이 묘사되었다. 정원과 실내, 식탁 위 음식의 눈부신 색채들이 진동하며 조화롭게 화답한다. 휴가 중에 마주한 풍성한 식탁과 특별한 정경을 화가는 잊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보나르는 집의 구석구석을 애정하고 그렸지만, 가장 자주 다루어진 공간은 가정생활의 중심인 식당이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이 작품은 특히나 화려한 색채로 구성된 식탁이 눈길을 끈다. 밝은 보라와 꽃무늬, 주황과 파랑의 패치워크로 구성된 식탁보 위에 놓인 굽이 있는 노란 접시 두 개와 과일들, 알록달록한 유리그릇, 화려한 쟁반 위에 갈색 도기, 하얀 물주전자 등이 자유롭게 놓여 있다. 빨간 꽃이 담긴 꽃병 뒤에 마르트는 마치 유령처럼 벽지에 배어들었고, 의자와 밖에 나무도 닫힌 창틀에 스며있다. 창 너머로는 청명한 하늘과 강물, 정원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보나르는 평범한 집안 풍경을 색채의 구성과 빛의 유희, 인물과의 심리적 관계를 반영해 영원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보나르가 그려낸 일상의 낙원은 풍요와 행복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에덴동산에 사탄이 있고 아르카디아에 죽음이 있는 것처럼. 대표작처럼 초기에는 더 선명하고 밝았지만, 점차 모호해지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지인들의 죽음, 무엇보다 반려자인 마르트의 건강이 악화되고 배타적으로 변하면서 그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보나르는 그 상황에서 마르트의 모습과 집안 정경을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노래하는 자가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그가 말했듯이, 말년의 자화상은 슬픔과 번민으로 얼룩져 있다. 실내 풍경에서 창문은 닫혀 있고, 언뜻 사랑스러운 장면은 자세히 보면 당혹스럽고 기묘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비롭고 살아 있는 듯한 보나르만의 세계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사물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은 조금씩 짐작해 나가는 행복이 전부인 시의 즐거움, 그 3/4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암시하는 것, 거기에 꿈이 있다" - 시인 스테판 말라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