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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Jun 01. 2023

하느님과 함께 걸었던 구약의 사람들, 미술로 만나다.


카롤링거 시대의 복음서 커버, 870년경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경. 하나의 책이 이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 행동과 삶을 변화시켰을까를 상상해 본다. 역사상 수많은 작가와 철학자, 미술가와 음악가들에게도 성서는 창작에 무한한 영감이 되었다. 때론 이 책에 담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만 해도 손으로 쓰고 그린 필사본 성경은 소수의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는 보물에 가까웠고, 문맹이었던 대중은 글자를 읽을 수조차 없었다. 이제 우리는 주변에 흔한 성경책뿐만 아니라 클릭 한 번이면 쉽게 성경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신자여도 성경을 제대로 끝까지 읽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오락가락하는 믿음을 가진 나에게도 그 책은 여전히 멀리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작하게 된 매일의 독서와 산책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자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한두 해가 지나자 그 대화는 신에게 던지는 독백과 질문으로 이어졌다. 드물지만 간혹 산책길에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질문의 답이 들려오는 것을 경험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형상으로 쉬지 않고 매일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 또한, 삶의 의문들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이 나에게도 있고 그것이 연결됨을 분명하게 느낀 순간, 신을 더 선명하게 알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찾아왔다.      


딱딱하고 오래된 외관과 말투 때문일까, 신에 대한 사랑과 간절함이 부족해서일까, 큰 맘을 먹고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여지없이 딴생각에 빠지곤 했다. 이번에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산책길에 고요함 속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만의 방식으로 성경에 다가가 보라고, 미술이라는 창을 통해 그 책에 빠져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에 심어진 씨앗이 자라나 <미술로 읽는 성경 이야기: 미술가는 성경을 어떻게 번역해 왔는가>를 주제로 5개월 동안 강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시작할 땐 나를 포함해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참여자들이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매주 3시간에 가까운 수업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몇천 년 전, 저 척박한 서아시아(고대 근동, 중동)를 떠돌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모험, 그들의 감정과 믿음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나면서, 점차 큰 힘과 용기가 내면에 자리 잡는 것 같았다. 창세기의 성조들을 지나 나처럼 말주변도 없고 사람들 앞에 서기를 꺼리는 모세가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던 중, 예전부터 강의 중에 부적처럼 손에 쥐곤 했던 돌멩이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이전과는 다른 지평 위에 서서, 이전과는 다른 필터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미술을 통해 구약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경험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성경은 천년이 넘게 여러 저자를 통해 구전되며 편집, 기록된 책이고, 유대 민족이 하느님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담아낸 신앙고백서다. 하느님에게서 받은 영감의 이야기와 역사뿐만 아니라 율법과 지혜, 기도와 찬양, 예언, 설교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책들의 묶음이기도 하다. 로마제국의 모진 박해 속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는 313년 공인 이후 역설적이게도 제국의 종교로 급성장하며 점차 다양한 매체(건축, 조각, 회화, 모자이크, 채식 필사본, 공예, 판화 등)의 종교 미술이 제작되었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인 예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이 가장 많이 다루어졌지만, 구약에서는 예수를 예표(豫表)하는 인물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표현되었다. 간혹 어떤 일화는 중요한 내용이 아닌데 대중의 관심과 욕망을 반영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림은 문맹인 대중에게 성경을 알게 해주는 최상의 매체로 여겨졌다. 교회는 천년이 넘게 미술의 가장 큰 후원자였고, 영생과 구원을 바라는 군주와 귀족, 상인들도 점차 그 대열에 합류했다. 미술가들은 성경뿐 아니라 당대의 주석서, 관련 일화가 풍부한 외경(外經)과 성인전인 황금 전설 등을 참고했을 뿐만 아니라 각 시공간의 신학과 종교문화, 주문자의 요구, 미술가의 상상력과 창조력에 따라 그 결과물은 더욱 풍부하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우리가 유럽의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성화는 사실상 교회와 일상의 공간에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성경을 전파했던 매개체이자 기도와 묵상을 위한 도구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단순히 그림의 주제나 이야기를 알아차린다고 해서 그것을 다 파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경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미지화되었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은 물론 그림의 상징 언어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세부를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눈과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의 원본만이 존재한 곳에서 실제로 기능하는 성화를 마주했던 사람들이 느끼는 경험과 감동은, 언제 어디서나 이미지에 접속할 수 있는 우리와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화를 볼 때 그림의 크기와 위치했던 장소, 주문한 자와 그것을 바라보았을 이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약은 가톨릭(46권)과 개신교(39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다른 데다가 성화는 가톨릭 문화권에서 더욱 활발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성서는 2005년에 발행된 한국 천주교회 공용 번역본(https://bible.cbck.or.kr/Knb)을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개신교 성서에서 인명이나 지명이 다를 경우는 괄호 안에 표기했다. 미술은 성화가 활발하게 제작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중세 말부터 동시대까지 범위를 넓혀 살펴보고 선정했다. 각 장은 가능하면 동시대의 미술가 니콜라 사리치(Nikola Sarić, 1985〜)의  ‘증인(Witness)’ 시리즈로 문을 연다. 먼저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상상해 보면 좋겠다. 고향 세르비아의 동방 이콘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과 따듯한 감성을 녹여낸 사리치의 작품은 인물의 삶과 하느님의 이끄심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니콜라 사리치의 '증인' 시리즈, 2015-8년, 종이에 수채, 각각 100 x 70cm



이미지 출처: https://www.nikolasaric.de/portfolio/witnesses/?lang=en



성서와 미술,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하늘을 바라본 구약의 인물 하나하나를 만나는 여정은 예상을 뛰어넘어 설레면서도 흥미진진했다. 어린 시절의 나 또한 얼마나 자주 하늘을, 끝없는 우주의 사진을 바라보았던가. 고향과 친척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간 아브라함,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채고 도망과 귀향 중에 두려움에 떨던 야곱, 민족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적진으로 간 유딧, 하느님이 내린 소명을 외면하고 도망치던 요나, 이유 없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따져 묻던 욥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나는 몇천 년 전 거친 땅을 헤매던 그들이 된 것만 같았다. 한 명 한 명 성서의 인물이 되어 하느님과 대화하다 보니 마음에 떠오르는 수많은 물음이 나를 압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빈 구석이 신이 우리를 초대한 자리이며, 각자의 상상력과 성찰이 꽃피우는 자리이자 새로운 의미가 돋아나는 생성의 공간이(p.19)라고 얘기해 주신 주원준 선생님의 말이 은혜로 다가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하는 성서에 대한 나의 질문과 해석을 가능하면 최소화하고 그림에 집중했다. 성서화 또한 한 미술가가 특정한 시공간의 종교문화 속에서 성서라는 텍스트를 이해하고 나름의 해석으로, 또 여기에 종종 주문자의 입김까지 더해져 표현된 것임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이 시리즈가 끝날 때쯤엔 여러분도 성서와 성화 사이에서 차근차근 대화와 해석을 시도해 보시길 기대한다.     



**이야기 내용은 되도록 성경의 표현으로 요약했습니다. 신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성경 지식이 부족합니다. 계속 연구하면서 수정하고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주요 참고 도서>

고종희, 『명화로 읽는 성서: 성과 속을 넘나든 화가들』, 한길아트, 2000

김광현, 『성당, 빛의 성작: 전례와 공간』, 이유출판, 2022

김학철,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대한기독교서회, 2020

김현화, 『성서 미술을 만나다』, 한길사, 2008

박성은, 『기독교 미술사: 중세시대의 건축, 조각, 회화』, 대한기독교서회, 2008

배철현,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코바나콘텐츠, 2006

정은진, 『미술과 성서』, 예경, 2013

키아라 데 카포아, 김숙 역, 『구약성서,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6

헨드릭 빌렘 반 룬, 원재훈 역, 『명화로 보는 구약 성경 이야기』, 그린월드. 2019


기민석, 『구약의 뒷골목 풍경: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와 삶』, 예책, 2016

김근주, 『구약의 숲: 하나님 나라로 읽는 구약 이야기』, 대장간, 2014

레이첼 헬드 에반스, 칸엔메리 역,『 다시, 성경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2020

배철현, 『신의 위대한 질문: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1세기북스, 2015

에릭 사이버트, 이철민 역, 『구약 재미있게 읽는 법: 구약을 생동감 있게 만나고 싶은 당신에게』, IVP, 2023

이나미, 『성경으로 배우는 심리학: 분석심리학으로 읽는 성경의 사람들』, 이랑, 2017

장 피에르 이즈부츠, 이상원 역, 『성서 그리고 역사: 고고학과 유물, 사진과 지도로 복원해 낸 성서의 세계』, 황소자리, 2010

주원준,『구약의 사람들: 신과 인간의 서사를 만든 첫째 성경 인물 열전』, EBS BOOKS, 2023


*인터넷 자료

(굳뉴스 성경 자료_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https://pds.catholic.or.kr/pds/bbs_list.asp?menu=4797&PSIZE=10&searchkey=N&searchtext=%EC%84%B1%EA%B2%BD+%EC%9D%B8%EB%AC%BC&Page=1


* 구약 이해에 도움이 되었던 영상

(성경과외 해주는 신부) https://www.youtube.com/@studybible

(김근주의 구약의 진실 1-18) https://www.youtube.com/watch?v=Cc9GgwO10K8

(주원준의 구약의 사람들 1-15) https://www.youtube.com/watch?v=FIcyYaemUYI

(이나미 교수의 심리로 본 성경과 사람 1-55) https://www.youtube.com/watch?v=pJPitxPNxIU&list=PLpB9z9SOeZQfh7wqzX_nHv1-jnsBsNs5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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