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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Jun 02. 2023

1-1. 아담과 하와_하느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 인간의 창조



니콜라 사리치, <의로운 아담>, 2015-6년, 종이에 수채, 100x70cm


하늘빛 배경에 우뚝 선 알몸의 남자, 두 팔과 머리가 하늘을 향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손과 그의 얼굴이 따듯한 빛으로 연결된다. 얼굴 좌우에는 해와 별과 달이 반짝이고, 그 아래 두 천사가 그에게 천을 내민다. 하늘에는 나비와 새가, 지상에는 공작새와 수사슴이, 얕은 물엔 물고기가 남자를 향해 있다. 바닥 저만치엔 붉은 열매가 눈에 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nikolasaric.de/portfolio/witnesses/?lang=en


창세기(Genesis)는 그 의미대로 우주와 인간의 ‘기원’으로 시작한다. 천지창조의 이야기는 창세기 1, 2장에서 다르게 전개되지만, 둘 다 창조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 성경은 최초의 인간을 ‘아담(Adam)’이라 불렀는데, 이 단어는 신이 인간을 만든 재료인 ‘붉은 흙’ 또는 일반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고 그 코에 숨결(혹은 영)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 유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영이 없다면 사람은 먼지에 불과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느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데려가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그리고 그를 위해 여자를 창조하신다. 그런데 여자 ‘하와(이브)’는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아담에게도 그 열매를 건넨다.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후의 이야기는 현재 인간의 삶과 운명이 이 원죄의 결과임을 알려준다.



13세기 시편서 필사본 삽화

인쇄술의 발명 이전 책도 이미지도 귀했던 중세 시대에 필사본의 채식 화가가 묘사한 천지창조의 드라마를 살펴보자. 13세기 초 귀족의 결혼 선물로 제작된 시편서(Psalter)의 성경은 이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편서는 개인 묵상과 예배를 위한 전례력, 성경의 주요 내용과 시편으로 구성된 책이다. 삽화는 화려한 배경에 여섯 장면으로 구성된다.


첫날 십자가 후광을 한 하느님은 심연의 어둠에서 환한 빛을, 이어 위아래로 물을 분리해 궁창(하늘)을 만든다. 사흗날 땅을 드러내 초목이 자라게 하고, 다음 날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두신다. 닷샛날 물속의 물고기와 하늘을 나는 새를, 마지막으로 땅의 동물과 인간,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다. 창조한 모든 것이 가장 좋아 보였던 이날,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에게 창조한 모든 것을 다스리는 특권을 주신다(창 1, 26). 


삽화에는 없지만, 이렛날에 하느님은 쉼으로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인간의 첫날은 유대교의 안식일이 의미하듯 거룩한 쉼의 날이었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무수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을 천지창조의 과정은 완전한 수로 여겨진 7일의 사건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하나하나 손으로 쓰고 그린 필사본은 상류층만이 접할 수 있는 보물에 가까웠고,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기에, 삽화는 성경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측량하기 어려운 길고도 광활한 창조의 드라마가 신의 형상을 한 인간 존재를 위해 진행되었다는 것, 인간의 착각처럼 들리는 이 과정은 여전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 다가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 26)


이 시편서를 둘러보고 싶다면,

https://www.digitale-sammlungen.de/en/view/bsb00012920?page=20,21



 <아담의 창조>, 12세기, 모자이크, 몬레알레 대성당, 시칠리아


창세기 2장의 천지창조는 땅을 배경으로 온전히 인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느님이 마치 조각가처럼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자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칠리아에 있는 몬레알레 대성당을 장식한 모자이크는 하느님의 숨결이 그가 빚은 사람에게 빛처럼 이르는 순간을 보여준다. 오른쪽 성당 내부 사진을 보면 이 모자이크가 얼마나 높이, 크게 제작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알몸의 사람은 생기를 얻어 언덕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뒤쪽에는 같은 날 창조된 다양한 동물의 무리도 보인다. 하느님이 앉아 있는 구체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임을, 한 손에 쥔 두루마리는 말씀으로 이루신 창조를 강조한다. 자세히 보면 성령의 빛으로 연결된 하느님과 아담의 얼굴이 무척 닮았다. 그런데 창조주와 피조물의 거리와 관계는 아직 멀어 보인다.      


12세기 시칠리아에 건축된 몬레알레 대성당(Monreale Cathedral)은 로마네스크, 비잔틴, 아랍의 건축 요소가 혼합된 독특한 분위기의 성당이다. 무엇보다 성당 내부 전체가 천지창조와 구약의 인물들, 예수의 생애로 구성된 거대한 황금빛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어 내부에 들어서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예배의 공간이자 문맹인 대중에게 성경을 전달하는 매체이기도 했다. 성당 내부를 포함해 특히 파사드(건물 정면)은 세심하게 고안된 성경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가끔 이 장면처럼 관련 구절이 삽입되기도 했다. 중세의 미술은 정교한 형상은 아니지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단순한 표현 때문에 그림 읽기가 더 쉬운 편이다. 언젠가 천상의 빛으로 반짝이는 이 성당 안에서 그림으로 된 성경책을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 2, 7)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담의 창조>, 1511년, 270 x 580cm,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내부, 바티칸

이제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아담의 창조>로 가보자. 바티칸의 교황 전용 예배실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을 장식한 이 프레스코화는 천지창조와 인간 창조, 타락과 추방, 노아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아홉 장면 가운데 정점에 위치한다. 하늘에서 천사들에 둘러싸여 다가오는 하느님은 손을 뻗어 사람을 가리킨다. 언덕에 기댄 채 그를 바라보며 한쪽 팔을 겨우 든 아담의 손은 신을 향해 있다. 이제 창조주와 피조물의 거리는 무척 가까워졌다. 두 손은 결국 만나게 될까? 닿을 듯 닿지 않는 이 간격, 그 사이로 전달되는 그 무엇이 그림을 특별하게 만든다. 


미켈란젤로는 독특하게 숨결이 아닌 창조주의 손가락을 통해 영이 전달되어 사람이 생명체가 되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것은 연약한 인간의 육신에 하느님의 손가락이 닿아 활력을 얻는다고 노래한 중세의 유명한 성가, “영혼의 창조자여 오소서(Veni Creator Spiritus)”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을 화가가 아닌 ‘조각가’로 여겼던 미켈란젤로는 평생 죽은 돌덩이에 잠들어 있는 생명을 불러내기를 열망하며 작업했다. 마치 위의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사람에게 손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듯이.  


막 깨어나 몸에 힘이 없는 아담은 보디빌더처럼 완벽한 몸을 가진 미남 청년이다. 미켈란젤로가 활동했던 피렌체는 고대의 인문주의가 부활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다. 그는 비밀리에 여러 시체를 해부하며 인체를 연구했고, 메디치 가문의 조각 학교에 다니며 아름다운 고대 조각상을 접할 수 있었다. 메디치궁전에서 인문주의자들이 추구한 신플라톤주의는 보이는 현실 너머의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을 예술의 목표로 보았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평생 젊은 남성의 아름다운 얼굴과 육체를 표현하는데 몰두했는데, 그 열망은 작가의 영감과 창조력의 근원이자 고통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하느님이 당신의 모습으로 만든 최초의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를 떠올려보면, 미켈란젤로의 해석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창조주의 손이 빚어낸 아름다운 인체는 미켈란젤로가 추구했던 미학의 요체다.     


“훌륭한 그림은 하느님의 완벽한 창조 행위의 반영이며 그분의 그림 그리기를 모방하는 일입니다. 좋은 그림은 고결한 영혼만이 느낄 수 있는 엄청난 공을 들인 음악이며 멜로디입니다.” - 미켈란젤로


분홍 튜닉을 걸친 성부 하느님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지만 건장한 몸과 강렬한 카리스마로 화면을 지배한다. 프레스코화의 천지창조 장면에서도 하느님은 이렇듯 근엄한 얼굴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압도적인 힘과 경외감을 표현한 미켈란젤로만의 스타일은 ‘테리빌리타(terribilita)’라 불린다. 하느님을 둘러싼 날개 없는 천사들, 특히 팔에 안긴 어여쁜 천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아담에게 시선을 보내는 그녀를 이후에 창조될 하와로 봐야 할까, 아니면 그녀를 지나 하느님의 손가락이 가리킨 한 아이와 연결해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로 볼 수 있을까. 후자의 측면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자 예수를 통한 인류 구원 드라마의 시작점이 된다.



베트람 폰 민덴, <하와의 창조>, 1379-83년, 패널에 템페라,  80 x 57cm, 함부르크 미술관

창조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하느님 보시기에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은 혼자 있는 아담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동물과 새를 흙으로 빚어 데려갔지만 아담은 만족하지 못했다. 성경은 이로써 여자가 창조되었다고 한다. 14세기의 성당 제단화에 묘사된 것처럼, 하느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 후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 여자를 만드신다(창 2, 22). 아담의 갈빗대 위로 여자가 마치 주를 찬양하듯 두 팔을 벌리고 나온다. 이 발상은 무척 독특해 보이지만, 고대 근동의 문명권에서 갈비뼈는 주요 장기를 보호하는 울타리로 생명(존재의 본질)이라는 단어와 어원을 공유한다. 아담이 깨어나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 2, 23)라고 말한 것처럼, 남자와 여자는 생명을 나눈 존재였다. 하와는 아담을 돕는 동등하고 ‘알맞은 협력자’(창 2,20)로 창조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며, 최초의 관계는 남녀의 결합임을 말해준다. 그림의 상단에서 천사들도 악기를 연주하며 이 관계가 불러올 기쁨과 풍요를 노래한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 2, 18)



윌리엄 블레이크, <동물의 이름을 짓는 아담>, <새의 이름을 짓는 하와>, 1810년, 캔버스에 템페라, 74.9 x 61.6cm, 폴록 하우스,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가장 천진난만한 아담과 하와의 초상을 남겼다. 제목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은 배경에 있는 동물과 새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 곱슬머리에 동그란 눈망울로 정면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는 알몸이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상황극을 하는 아이 같다. 성경에는 하와의 창조 이전, 하느님이 아담에게 동물과 새를 빚어 데려갔을 때 그가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창 2, 19)고 한다. 자신의 시각과 해석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블레이크는 이를 아담과 하와의 공동작업으로 그렸다. 게다가 하와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 3, 20)가 아닌가. 


이름을 부르고 이름대로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고대 근동에서 이름 짓기는 그 역할과 제자리를 아는 지혜와 연결되며 통제권을 갖는 것을 뜻했다. 오랜 세월 유랑의 삶을 살았던 히브리인에게 이름은 존재이자 정체성, 운명을 의미하는 중요한 단서다. 다시 말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온갖 피조물의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다스리는 자였다. 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 임을 나타낸다. 인간은 외형뿐만 아니라 신과 같은 창조적 지혜를 소유한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 나라를 다스리는 노동의 거룩한 사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복을 받았다(김근주, pp.62-67).


흥미롭게도 아담이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다른 손으로 뱀을 어루만진다. 블레이크는 이후 하와를 유혹하고 타락으로 이끈 그 교활한 뱀을 만든 자가 아담 자신임을 말하는 것 같다. 긴 역사 속의 인간이 창조한 무수히 많은 유무형의 것들을 떠올려본다. 인간의 욕망에 따라 자연과 생태계는 교란되어 왔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최신 기술이 우리와 세상을 항상 이롭게만 하지 않는다는 것과도 이 그림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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