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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Jun 03. 2023

1-2. 아담과 하와_신처럼 되고 싶었던 인간

 : 유혹과 타락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 하느님은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tree of life)’‘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를 자라게 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보통 ‘선악과’라 불리지만, 이는 선과 악의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정의와 불의, 미추와 가치 등을 직접 체험하고 판단하는 신적인 지식과 연관된다. 하느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데려가 일구고 돌보게 하면서, 다른 열매는 다 먹어도 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런데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 그 열매를 먹으면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 모든 지식을 알게 될 것이라고 유혹한다. 결국 하와는 탐스러운 그 열매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권한다. 그러자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창 3, 4-5)



알브레히트 뒤러, <아담과 하와>, 1504년, 인그레이빙, 25.1 x 20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르네상스 시대 전유럽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판화를 보자. 알몸의 아담과 하와는 정면을 향해 섰고 얼굴은 서로를 향해 있다. 둘 사이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휘감은 뱀은 하와에게 열매를 건넨다. 하와의 다른 손도 열매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열매를 먹기 전인 것 같다. 아담은 한 손으로 생명나무의 가지를 붙잡고 있지만, 하와 쪽에 뻗은 손으로 그녀가 건넬 열매를 받아먹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뱀은 공작새의 왕관을 쓰고 있는데, 왕관이 상징하는 교만은 유혹에 넘어가는 아담과 하와의 죄를 암시한다. 뱀은 고대 동방문화권에서 지혜와 풍요의 상징이자 유대 민족의 적국 바빌론의 주신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탄과 동일시되었다.


그런데 판화에서는 이 유혹의 이야기보다 독일의 깊고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남녀의 아름다운 몸이 눈길을 끈다. 뒤러의 아담과 하와는 15세기말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벨베데레의 아폴로 조각상과 메디치가의 컬렉션인 비너스 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독일 화가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문화를 접하고 4년여의 연구 끝에 가장 이상적인 비율과 형상의 인간을 판화에 새겨 넣었다. 하와의 푸근하고 자연스러운 몸에 비해 아담의 몸은 바디프로필 마냥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시공간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상적인 몸에 대한 미감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뒤러는 평생 다양한 사람과 동식물을 데생하고, 인체 비율과 원근법 등을 연구하며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끈 ‘북유럽의 다빈치’로도 불린다.


북유럽의 화가답게 뒤러는 주변에 풍경과 동물도 매우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묘사했다. 특히 아담과 하와 주변에 있는 고양이, 토끼, 큰 사슴(elk), 황소는 중세 이래 체액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4가지 기질, 즉 (성을 잘 내고 적극적인) 담즙질, (쾌활하고 기분이 날뛰는) 다혈질, (신중하고 비관적인) 우울질, (차분하고 냉정한) 점액질을 상징한다. 그래서 원죄 이후, 조화와 균형이 파괴된 상태를 예시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반면 아담과 하와의 균형 잡힌 자세와 평온한 표정은 타락 이전, 에덴동산에서의 이상적인 삶을 드러낸다.


아담이 잡은 나뭇가지에 걸린 현판에는 현대판 상표인 그의 모노그램(monogram)과 라틴어로 ‘알브레히트 뒤러가 1504년에 제작했다’고 쓰여있다. 뒤러는 평생 판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미지의 영향력을 넓히며 자신의 기량과 성과를 홍보했다. 복제 가능한 판화는 저렴하고 휴대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이미지가 유통되는 혁명적인 매체였다. 뒤러의 <아담과 하와>는 그의 손이 창조한 완벽한 인체와 내적 균형, 어떤 면에서 당시 북유럽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담고 있다. 인간에게 관심이 이동한 르네상스 시대에 이 주제는 남녀의 누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엄청나게 유행했다. 특히 뒤러의 판화는 북유럽의 수많은 아담과 하와의 기원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루카스 크라나흐, <아담과 하와>, 1526년, 목판에 유채, 117 x 80.5cm, 코톨드 미술관, 런던


뒤러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는 이 주제의 인기를 십분 활용해 평생 50여 점의 유화 <아담과 하와>를 남겼다. 그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1526년 작품은 풍요로운 동산에 온갖 동물과 최초의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뱀이 거주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붉은 사과는 성경의 표현처럼 보암직도 하고 소담스럽다(탐스럽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성경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보통 그 열매는 사과로 표현되었다. 열매가 결과적으로 불러올 죄악(malum)과 사과(mālum)가 라틴어로 동일한 발음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크라나흐의 아담과 하와는 근육질이 아닌 가늘고 우아한 몸을 가졌다. 무엇보다 하와의 요염한 얼굴과 긴 곱슬머리, 매혹적인 하얀 피부가 이 그림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열매를 먹은 하와는 아담에게 먹어보라고 건넨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가 주는 열매를 받는 아담은 주저하는 듯하다. 화가는 어리숙한 아담과 치명적인 유혹자인 하와를 대비시켰다. 주변에는 수사슴과 양, 사자, 돼지와 다양한 새들이 오밀조밀 평화롭게 모여있다. 해가 지는 아름다운 초원과 동물들, 우아한 인물 표현은 당시 화가의 주요 후원자였던 궁정 귀족들의 취향과 미감을 반영한 것이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는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을까. 몇몇 작품은 무척 에로틱한 색채를 띄기도 하는데, 종교개혁의 중심지에서 이런 성화가 다수 제작된 것이 의아스럽기도 하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친구이자 초상화도 그렸던 크라나흐는 사교계의 마당발로 작센 궁정에서 여러 귀족과 지식인들의 후원을 받았다. 루터는 수도사들의 삶을 통제하는 독신주의를 거부하고 수녀였던 여인과 결혼했으며, 창세기의 말씀대로 남녀의 결합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겼다. 크라나흐가 성경과 신화를 빌미로 에로틱한 요부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후원자인 귀족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지만, 성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의 변화 덕분에 가능했다.


유혹이 강조된 이 그림에는 종교적 상징도 숨어 있으니 자세히 살펴보자. 아담과 하와의 중요 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포도나무가 보인다. 예수는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했고, 전통적으로 포도주는 그리스도가 흘릴 피를 상징한다. 아담 뒤로 보이는 새하얀 어린양 또한 인간의 죄를 대속할 그리스도를 암시한다. 결과적으로 크라나흐의 <아담과 하와>는 첫 인간의 타락으로 시작된 인류의 원죄와 구원의 이야기까지도 품고 있다.



대 얀 브뤼헐과 루벤스, <인간의 타락과 에덴동산>, 1615년, 패널에 유채, 115.7 x 74.3cm, 마우리츠하위스, 헤이그


앤트워프 출신의 친구 사이였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대 얀 브뤼헐(Jan Brueghel the Elder, 1568〜1625)의 작품은 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낙원의 풍경에 가장 가깝다. 대 얀 브뤼헐은 풍경과 동물을, 루벤스는 왼편에 인물과 말을 그렸다. 이 작품의 주문자는 확실치 않지만, 볼거리로 가득한 두 대가의 합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에덴(eden)’은 수메르어로 나무가 무성한 비옥한 장소 혹은 이 그림의 분위기처럼 풍요로움을 의미한다. 그림의 에덴동산에는 풍성한 초목과 물줄기 주변에 100여 종이 넘는 가지각색의 동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온갖 새들과 집짐승, 들짐승이 맹수와 함께 이렇게 평화롭게 모여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양한 동물을 직접 보기도 힘든 시대였지만, 합스부르크 왕가를 위해 일했던 화가는 궁정 동물원에서 다양한 동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면, 기니피그나 칠면조 같은 이국적인 동물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묘사된 다채로운 새들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아래 박물관에서 소개하는 그림 설명과 세부를 살펴보면, 구석구석 생기발랄한 동물들의 모습이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농민 화가’로도 불린 유명한 피터르 브뤼헐의 둘째 아들이었던 얀 브뤼헐은 여행에서 꽃과 초목을 연구하며 이런 ‘낙원 풍경화(paradise landscape)’를 여럿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낙원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피조물은 인간이다. 바로크의 대가 루벤스가 완성한 아담과 하와는 생생하고 강렬한 필치로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이들의 반짝이는 피부와 머릿결, 풍성한 살과 근육은 에덴동산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드러낸다. 최초의 인간은 이처럼 아름다운 동산을 일구고 누리는 주인이자 온갖 동물을 돌보고 다스리는 자였다. 그런데 하와는 뱀이 거주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면서 아담에게도 건네고 있다. 하와의 발치에는 악을 상징하는 고양이가 관람자를 노려보고, 아담 옆에는 사악함을 상징하는 원숭이가 벌써 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있다. 아담의 머리 위쪽 나무 사이에 포도나무가 반짝인다. 아, 말리고 싶은 순간이다.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진정 이 낙원을 포기하려는 것일까.


그림 세부와 박물관의 설명을 듣고 싶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G5djT-KBGLo




렘브란트 반 레인, <아담과 하와>, 1638년, 에칭, 16.2 x 11.6cm, 시카고 미술관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은 역사상 가장 초라한 아담과 하와의 초상을 남겼다. 최초의 인간은 부스스한 머리와 수염에 울퉁불퉁 늘어진 살을 가진 원시인 같다. 이들은 저 멀리 보이는 코끼리와 별반 차이 없는 피조물일 뿐이다. 하와가 열매를 먹으려 하자 아담은 손으로 막고 하늘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명령을 상기시킨다. 여자는 고민하는 듯하지만 참기 어려운 눈치다.


오른쪽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위에서는 이들을 내려다보는 날개 달린 용이 불길한 기운을 더한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뱀은 이처럼 사탄을 형상화한 용이나 도마뱀 혹은 여인이나 아이의 머리를 한 뱀으로 표현되었다. 렘브란트는 르네상스의 대가들처럼 완벽한 인체 표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평생 지인이나 평범한 거리의 사람들을 모델로 한 성서화를 남겼다. 성서의 인물을 영웅시하거나 이상화하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으로 담았다. 그리고 그 상황에 놓인 미약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고민에 집중했다. 렘브란트의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의 첫 작품이었지만 조금 못나도 괜찮았다. 그들은 매일의 우리처럼 금기와 호기심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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