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인의 살해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 화가들은 형제의 제사보다 살인 장면에 더욱 집중한다. 많은 화가들이 폭력적인 형제 살인의 순간을 묘사했는데, 베네치아의 대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의 작품이 그 모범이 되었다. 몽둥이를 번쩍 든 카인은 아벨을 발로 차 언덕 밑으로 떨어뜨리려 한다. 아벨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와 발버둥 치는 그의 사지는 카인의 무자비한 폭력을 나타낸다. 성경에는 카인이 아우에게 덤벼들어 죽였다고 간략하게 쓰여 있지만, 화가의 상상력에 따라 당나귀 턱뼈, 막대기, 돌 등이 살인의 도구로 등장했다. 카인 뒤로는 불타는 두 개의 제단이 보인다. 먼 쪽에서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퍼지는 시커먼 연기는 카인의 어두운 폭력성을 강조한다. 반면 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앞쪽 제단은 하느님이 향기를 맡으신 아벨의 제단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원래 <다윗과 골리앗>, <이삭의 희생>과 함께 이솔라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천장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되었지만, 현재는 베네치아의 랜드마크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성구실에 걸려 있다. 세 작품은 모두 폭력이나 번제를 주제로 하는 데다가, 3m에 달하는 어두운 화면에 근육질 인물의 역동적인 몸짓을 아래에서 본 시점으로 담아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아래와 같이 시간이 흐를수록 화가들은 경쟁하듯이 형제 살인의 순간을 더욱더 잔혹하게 묘사했고, 때론 야릇한 분위기를 더해 관람자의 감각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치아노의 작품이 인물의 역동적인 몸짓과 간결한 구성, 암울한 색채로 절정의 순간을 가장 완벽하게 전달한다.
18세기 이래 계몽주의와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화가들의 관심은 종교와 성서화에서 더욱 멀어졌다. 하지만 특히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화가들과 문인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이 되었다. 이 주제를 판화와 유화로 여러 차례 시도한 두 화가의 작품을 보려고 한다. 먼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9-1916)의 판화는 긴 막대기를 든 카인이 바닥에 넘어져 뒷걸음질하는 아벨을 내리치려는 순간을 담고 있다. 아벨에게 드리워진 카인의 시커먼 그림자는 그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낸다. 카인의 펄럭이는 옷자락의 블랙홀도 보는 이를 그 속으로 빨아드린다. 흥미롭게도 긴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카인의 얼굴은 아벨의 뒷모습과 유사하다. 마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피해자이자 언젠가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게다가 가려진 얼굴, 익명이라면 폭력은 더 쉽고 강하게, 게다가 교묘하게 자행되고 있지 않는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단지 형제간의 질투와 불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회사에서,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 위기가 닥치거나 고통이 증가하면 특정인을 희생양 삼아 폭력을 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우리 주변에도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고통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기보다 주변의 형제, 이웃, 동료를 제거함으로써 위기를 넘어서려는 어두운 본성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르동은 작업 초기인 187, 80년대 이처럼 판화나 목탄을 사용하여 ‘검은색(Noirs)’이라 명명한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다. 음울하고 기괴한 환상의 검은 그림들은 어린 시절 버려진 기억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동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11살까지 외삼촌과 지냈는데, 병약하고 고독한 생활 속에서 음악과 미술,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에게 어두움이자 상상의 시간이었고, '슬픈 미술의 근원'이 되었다. 인상파가 득세하던 시대에 자신만의 내적 시각을 표현했던 르동의 작품들은 모호하면서도 몽환적이지만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인류 최초의 살인, 형제의 비극을 담아낸 이 판화도 손바닥만큼 작지만 흡인력이 있다.
독일의 화가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nth, 1858∼1925)도 유독 카인을 주제로 여러 버전의 판화와 유화를 남겼다. 판화에서 그는 동생을 죽인 카인을 마치 야만인 혹은 괴물로 묘사했다. 어두운 색채와 거친 붓질로 더욱 인상적인 코린트의 유화 <카인>을 보자. 화면의 반을 차지한 카인은 큰 돌을 들고 있는데, 무언가에 놀라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들의 울부짖음 때문일까, 아니면 아벨을 찾는 하느님의 목소리 때문일까. 카인은 아래 동생의 시체를 숨기기 위해 바쁘게 돌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거친 붓질로 직조된 옷에서 그를 사로잡은 분노와 두려움이 느껴진다. 바닥에 하늘로 향한 아벨의 핏빛으로 물든 두 팔은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하다. 마치 하느님이 카인에게 “들어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 4, 10)라고 말한 것처럼. 무엇보다 땅에 누운 무력한 희생자의 시선으로 포착된 이 장면은 까마귀로 뒤덮인 음산한 하늘과 거대한 살인자의 몸이 거칠게 표현되어 현장의 참혹함이 더욱 강렬하게 전해진다.
코린트는 평생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성화를 그리면서도,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과 폭력성, 고통을 겪는 인간의 육체성을 드러냈다. 1911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그의 그림은 이 작품처럼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였던 1917년, 독일의 패전을 앞두고 그린 <카인>은 수많은 사상자를 낸 참혹한 전쟁의 그림자도 반영되어 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창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