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와 씨름한 야곱
하란으로 가는 길에 야곱은 우물가에서 양 떼를 몰고 온 외숙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만난다. 요제프 폰 퓌리히(Joseph von Führich, 1800~1876)는 야곱이 우물을 막은 돌을 굴려 그녀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라헬에게 입 맞추는 순간을 담았다. 황량한 중동에서 우물가는 사람과 가축이 모이는 곳이자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몸매도 예쁘고 모습도 아름다웠던’(창 29, 17) 라헬과 다정하게 포옹하며 입 맞추는 야곱은 무척 감미롭게 묘사되었다. 화가는 19세기 초 독일 낭만파 화가 그룹인 ‘나자레파’에 속했는데, 이들은 로마의 수도원에서 수도사처럼 생활하고 작업하며 미술의 순수성과 영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입맞춤 후 야곱이 목 놓아 울었다(창 29, 11)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집을 떠나 950km에 달하는 고생스러운 여정 끝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핏줄이자 자신의 짝을 찾았다는 감격 때문이었을까.
야곱은 외숙 라반의 집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라헬을 얻기 위해 가축을 돌보며 7년을 일했다. 하지만 술책이 뛰어난 라반은 결혼식날 못난 첫째 딸 레아를 들여보낸다.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야곱은 7년을 더 일해야 했다. 레아와 라헬은 몸종을 동원해서까지 야곱의 아이를 낳기 위한 노력을 펼쳤고, 결국 이들이 낳은 12명의 아들이 이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형성한다. 라반은 이전보다 부유해진 것이 주님이 야곱에게 복을 내려주셨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그는 품삯을 제안했는데, 흥미롭게도 야곱은 새끼로 태어날 가능성이 낮은 점박이 양과 염소를 요구했다. 후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 1591∼1652)는 라반의 양 떼를 돌보는 야곱의 초상을 남겼다. 목자의 지팡이를 쥔 그는 아기 염소를 쓰다듬으며 간절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20년간 교활한 외숙의 양치기로 일하면서 야곱이 진정 의지하게 된 것은 하느님뿐이었을 것이다. 왼쪽 하단에 껍질이 벗겨진 나뭇가지가 냇물에 담가져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앞에서 짝짓기를 한 염소와 양들은 그의 품삯인 점박이를 낳았다. 야곱의 품에 안긴 점박이 염소는 우리를 향해 묻는 것 같다. 당신도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믿느냐고.
야곱의 재산이 불어나자 라반의 태도가 싸늘해진다. 드디어 야곱은 라반의 속임수와 휘둘림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20년 하란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대가족과 종들, 가축과 재산을 챙겨 아버지가 있는 가나안으로 향하지만, 야곱의 마음은 편치 않다. 미리 보낸 정탐꾼에 의하면 형 에사우가 부하 400명을 이끌고 그를 만나러 오고 있다. 과거에 속임수로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일로, 야곱은 형의 분노와 복수가 몹시 두려웠다. 게다가 아버지와 하느님에게서 받은 축복이 계속 이어질지도 불안했다. 야곱은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해 좋은 가축을 골라 앞서 선물로 보낸다. 아내와 자식들,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야뽁강 건너로 보내고, 캄캄한 밤 야곱은 홀로 남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다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가 놓아달라고 했지만 야곱은 끈질기게 축복을 요구한다. 그는 야곱의 이름을 물었고,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지어준다. 야곱도 그의 이름을 알고자 했지만 그는 답하지 않고 복을 내려 준다. 야곱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했음을 깨닫는다. 해가 떠올랐고, 야곱은 엉덩이뼈를 다쳐 절뚝거렸다.
강렬하면서도 상징적인 이 사건은 미술가는 물론 음악가, 작가들에게 영감이 되어 수많은 예술을 탄생시켰다. 화가들은 야곱과 씨름한 그 사람을 보통 천사로 묘사했다. 앞서 ‘아브라함과 세 천사’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성경에서 ‘사람’, ‘천사’, ‘주님(야훼)’은 구분하기 어렵고 명칭이 변하기도 한다. 외적인 성공을 이룬 야곱이 그 순간 원했던 축복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가 야곱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데 야곱은 왜 이스라엘이 아닌 이전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까. 각자의 질문을 품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두 그림을 먼저 감상해 보자.
이탈리아의 화가 루카 지오르다노(Luca Giordano, 1634∼1705)의 작품은 야곱과 천사의 대결을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화가는 야곱과 천사를 자기 나이의 앳된 청년으로 묘사했다. 하얀 얼굴에 화려한 날개가 돋보이는 천사는 야곱과 씨름하고 있지만 여유로워 보인다. 반면 야곱은 밤새 누군지도 모르는 자와 씨름하느라 힘에 겨워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붉어진 얼굴과 휘날리는 붉은 옷자락, 천사의 허리를 감싼 팔에 선 핏줄까지, 온 힘을 다해 쏟아붓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저 멀리 동이 트려고 한다. 이 그림은 축복을 사모하는 야곱의 끈질긴 집념과 에너지를 보여준다.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창 32:27-29)
싸움을 먼저 건 정체불명의 남자는 누구일까. 처음에 ‘사람’으로 묘사된 그는 이후에 야곱에게 자신을 하느님으로 가리키고, 야곱 또한 축복을 받은 후에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창 32, 31)고 말한다. 게다가 하느님만이 야곱의 이름, 즉 그의 소명과 운명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 분이다. 고대 근동인들은 이름에 존재의 본질이 담겨 있으며, 이름을 알면 그 존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느님은 야곱이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신다. 야곱의 승리가 강조되었지만, 원래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싸우신다’ 혹은 ‘하느님이 일하신다’를 의미한다. 사람이 신과 얼굴을 마주하면 죽는다고 여겨졌던 시대에 야곱은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을까. 그것은 야곱 자신의 힘과 의지가 아닌, 함께하시는 하느님이 일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야곱이 하느님을 자기 삶의 주체로 받아들였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 단락은 함원식 신부님의 <야곱> 글을 다수 참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그림은 앞의 그림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으로 제목이 같지만 둘 간의 대결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온통 갈색으로 된 혼돈의 공간에서 정면을 향한 천사의 온화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우아한 얼굴에 날개를 활짝 편 천사는 지친 기색도 없다. 아무리 보아도 천사는 야곱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애처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안아주는 것 같다. 반면 붉은 옷에 수염이 덥수룩한 야곱은 밤샌 몸싸움으로 힘이 빠진 데다 눈도 거의 감겨 쓰러질 듯하다.
렘브란트는 보통 화가들처럼 야곱과 천사의 육체적인 대결을 그리지 않았다. 동이 틀 무렵, 결국 천사의 축복을 받은 후, 즉 모든 것이 성취된 순간을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야곱은 오랜 싸움과 집요한 투쟁 끝에 탈진되어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자세히 보면 천사는 돌 위에 발을 올리고 야곱이 쓰러지지 않도록 그의 몸을 다리로 지탱하고 있다! 하느님의 긍휼과 사랑이 야곱에게, 그리고 보는 이에게 따듯하게 전달된다. 고뇌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어둠의 순간, 야곱이 원했던 것은 자신과 가족이 살아남아 이전의 축복이 계속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신다. 그는 더 이상 뒤에서 속이는 자, 빼앗는 자가 아니다. 야곱은 하느님이 싸우시고 일하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는다. 존재의 본질이 변화되자 야곱은 과거의 이기적인 자신, 두려움에 떠는 현재의 자기를 극복하게 된다. 그리고 언약의 계승자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시조가 된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이사야 41, 14)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살았던 렘브란트는 야곱처럼 욕망과 성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젊은 나이에 암스테르담에서 잘 나가는 초상화가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면서, 대출로 큰 집을 사고 진귀한 물건들로 채웠다. 흥미롭게도 이때 화가는 방탕하게 노는 탕자와 아낙네로 분한 부부 초상화(1635)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아이들과 아내를 하나둘 떠나보내고, 재산도 탕진하고 추문까지 더해져 시민사회에서 점차 잊혀갔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그리기 몇 년 전 파산해(1656) 빈민가로 이사해 말년을 은둔하며 살았다. 그래도 아직 사랑하는 여인과 아들과 함께하던 시절이었다. 저 위의 천사는 화가가 종종 그렸던 아들 티투스를 닮았다. 안타깝게도 렘브란트는 이후 아내와 아들도 먼저 떠나보낸다. 성화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던 개신교 사회에서 렘브란트는 죽는 날까지 성서화를 연구하며 작업을 지속했다. 성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해석, 인간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과 탁월한 심리 묘사로 렘브란트는 보통 화가들과는 다른 차원의 성서화를 남겼다. 그의 성화는 들여다보고 곱씹을수록 새록새록 전해지는 의미와 감동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누군가 렘브란트를 좋아한다면 그는 하느님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사실을 분명하게 믿게 될 것이다.” - 빈센트 반 고흐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는 가장 크고 인상적인 야곱과 천사의 씨름 장면을 남겼다. 7, 5m에 달하는 거대한 벽화는 파리에 있는 생 쉴피스 성당(Eglise St. Sulpice)의 생장주 예배당을 장식하고 있다. 상단에 우뚝 솟은 풍성한 나무들을 배경으로 야뽁강가에서 야곱과 천사의 대결이 펼쳐진다. 두 남자의 대결은 조각 같은 몸의 격렬한 움직임과 긴장된 근육을 통해 드러난다. 곱슬머리를 휘날리는 아름다운 천사는 꼿꼿한 회색 날개에 보랏빛 드레스 차림이다. 야곱은 온 힘을 다해 대항하며 한쪽 무릎으로 천사의 허벅지를 가격한다. 자세히 보면 야곱의 얼굴에 상처가 있고, 허리춤엔 이불로 덮었던 동물 털가죽이 떨어지고 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몇 가지 의문을 일으킨다. 먼저 성경에서는 천사가 야곱의 엉덩이뼈를 차는데, 화가는 야곱이 천사의 허벅지를 치는 것으로 묘사했다. 밤의 이야기라 보통은 어둡게 묘사되는데, 밝은 시점인 것도 특이하다. 그림자로 보면 해는 창이 위치한 오른쪽으로 져가고, 야곱이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아 둘의 싸움이 시작된 순간으로 보인다. 오른쪽 하단에 야곱의 옷가지와 무기 등이 꽤 비중 있게 표현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의복은 경제적 수준이나 신분을 드러내고, 무기는 힘을 과시한다. 게다가 야뽁강 너머 야곱의 무리와 가축까지 묘사되었다. 지금 야곱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심지어 검도 그의 발아래 놓여 있다. 결국 들라크루아는 야곱이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분리된 야곱의 투쟁을 강조했다. 화가가 예배당 오프닝 초대장에 썼듯이, “이 투쟁은 성경에서 신이 그가 선택한 사람에게 가끔 보내는 시험의 상징”이기도 했다.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들라크루아는 상류층 출신으로 부모님과 형제를 떠나보내며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술을 배우면서 특히 루브르 미술관에서 대가들의 작품을 수없이 모사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고전과 문학에 조회가 깊었던 들라크루아는 위의 벽화처럼 자기만의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장면을 색다르게 표현했다. 소문난 멋쟁이이자 화술에도 능했던 댄디였는데, 그의 세련된 취향과 미감은 등장인물의 차림과 스타일에도 반영되어 있다. 질서 정연한 구도와 완벽한 마무리가 특징적인 신고전주의가 득세하던 시대에 들라크루아는 극적인 구성과 힘찬 움직임,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로 표현한 낭만주의 회화를 창시했다. 게다가 그는 많은 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최고의 색채화가였지만, 당대 미술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1857년 뒤늦게 8번의 시도 끝에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신고전주의자 앵그르는 들라크루아를 ‘양 떼들 사이의 늑대’로 칭하기도 했다. 말년에 여러 공공 프로젝트로 맡았지만, 살롱전에서의 혹평에 괴로워하며 더 이상 작품을 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들라크루아가 묘사한 야곱의 싸움은 현대 화가의 예술적 투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조형 언어가 만들어지고 인정받기까지, 예술가는 대중과 비평계의 무시와 비판, 심지어 두려운 자기 자신과의 지난한 씨름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생 쉴피스 성당은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바로크 양식의 교회다.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빅토르 위고가 결혼한 장소이자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되는 교회로도 유명하다. 들라크루아는 1849년 이 성당의 한 예배당 장식을 주문받고 벽화 프로그램과 구성, 재료와 색채 등을 연구하며, 10여 년에 걸쳐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일과를 반복하면서도, 무척 몰입하여 즐겁게 작업했던 프로젝트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의 맞은편에는 <사원에서 쫓겨난 헬리오도로스>가, 천장에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인 <악마를 물리치는 성 미카엘>로 장식되었다. 모두 하느님의 신적인 개입을 통한 변화 혹은 선의 승리를 주제로 하고, 역동적으로 싸우는 천사가 등장한다.
이미지 출처, 생 쉴피스 성당과 들라크루아의 벽화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https://smarthistory.org/delacroix-sulp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