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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Aug 27. 2023

5-3. 야곱_하느님과 싸워 이긴 자, 이스라엘 2

: 천사와 씨름한 야곱


레옹 보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76년, 종이에 연필과 초크 드로잉, 52.7 x 36.8cm, 다헤시 미술관, 뉴욕

레옹 보나(Léon Bonnat, 1833~1922)의 연필 드로잉은 이 주제를 다룬 작품들 가운데 아마 가장 세밀하고 아름다운 형상일 것이다. 한쪽 다리를 가랑이 사이에 넣어 천사를 들어 올린 야곱과 저항하는 천사의 대결이 한창이다. 싸움을 시작한 건 천사이지만, 동틀 때까지 야곱이 포기하지 않자 놓아달라며 그를 밀어내는 것 같다. 둘의 역동적인 자세와 긴장된 근육이 얼마나 정교하게 묘사되었는지, 눈은 구석구석을 훑게 된다. 단단한 몸과 대조되는 천사의 날개, 야곱의 털옷도 만져질 듯하다. 촉각적인 표현에 야릇한 포즈까지 꽤나 감각적인 그림이다.


보나는 아카데미즘과 인상파 화가가 대립하던 19세기 후반, 정통 아카데미즘의 중심에 있던 화가였다. 17세기에 설립된 프랑스의 왕립회화조각아카데미는 미술 교육과 전시를 지배해 왔는데, 가장 중요한 교육은 드로잉이었다. 학생들은 고대 조각상과 르네상스 거장들의 회화를 판화본으로 보면서 윤곽선과 명암법을 익혔다. 이어 고대 조각상을 모사하고, 마지막으로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리는 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아카데미 화가라면 역사화 속 위대한 영웅들의 이상적인 인체를 그릴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나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 로마상을 받았고, 결국 1888년 아카데미의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가 된다. 그는 고대에서 현대 미술까지 영원한 아름다움은 드로잉과 형태에서 온다고 강조했다. 조각상처럼 보이는 보나의 드로잉은 신기하게도 인물의 감정이나 사건의 의미에 대한 묵상으로 이끌지 않는다. 화가의 모든 관심이 형상의 아름다움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귀스타브 모로, <야곱과 천사>, 1874-78년, 캔버스에 유채, 254.7 x 145.3cm, 하버드 미술관, 보스턴

미술에서 다양한 사조가 출현한 19세기, 이 주제를 가장 많이 다룬 그룹은 상징주의 화가들일 것이다. 미술에서의 상징주의는 보이는 세계 이면의 초자연적인 세계나 내면, 관념 등을 주관적인 상징과 기호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그 선구자인 구스타브 모로(Gustav Moreau, 1826∼1898)는 이 주제를 연구하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야곱의 씨름을 묘사했다. 보름달이 뜬 밤, 중심에 선 야곱은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결하느라 온몸과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뒤쪽에는 긴 날개와 화려한 차림의 천사가 신비로운 빛을 발하며 서 있다. 그녀는 한 손은 자기 머리에, 다른 손은 야곱의 한쪽 팔에 올려놓았다. 모로는 화려한 장식성과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만의 신비로운 장면을 창조했다. 소장처의 설명에 따르면, 모로는 이 사건을 야곱과 천사의 육체적인 대결로 묘사한 들라크루아의 벽화를 비판했다. 그는 야곱의 상대를 보이지 않는 신적인 존재이자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로 여겼고, 결국 이 대결의 허무함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야곱과 천사의 싸움으로 그리지 않아 이 그림은 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형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야곱은 두려움에 떨며 기도했다. 그래서 상대를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싸웠던 형 에사우로 보기도 한다. 이 그림에선 야곱 내면의 고뇌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읽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야뽁강가에서 홀로 지세는 밤, 야곱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지난 20년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외적으로는 풍요롭고 성공했지만 삶의 회의와 허망함으로 괴로웠을 것이다. 즉 야곱의 싸움은 의식 속에서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를 낱낱이 마주하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형과의 만남을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신과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야곱은 신적인 존재가 축복을 주기 전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모로의 그림에서 천사는 마치 팔을 통해 야곱에게 힘과 축복을 전해주는 것 같다.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된 야곱은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폴 고갱, <설교 후의 환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88년, 73 x 92cm,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영국 에든버러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소재로 한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설교 후의 환영>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그리고 미술의 역사에서 분깃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나무를 경계로 전면에는 하얀 모자에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여인들이, 저편에는 야곱과 천사의 씨름이 작게 묘사되었다. 자세히 보면 여인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묵상하거나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오른쪽 끝에는 좀 전에 야곱과 천사의 이야기를 설교했을 사제가 보인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설교를 들은 여인들의 상상 속에서 야곱과 천사의 격렬한 씨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이 장면을 주시하는 중앙의 여인이 눈에 띈다.


주식중개인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고갱은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35세에 전업화가가 된다. 직장은 물론 아내와 다섯 아이까지 져버리고 파리에서 힘들게 작업하다가, 고갱은 1886년 시골 마을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으로 떠난다. 고유한 전통이 살아있는 이곳에서 그는 <설교 후의 환영>을 완성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브르타뉴의 여인들은 전통 의상 차림으로 생활했는데, 고갱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소박하고 미신에 가까운 단순성‘을 보여준다. 멀리 묘사된 소는 지역의 전통 씨름인 구렝(gouren)의 승자에게 돌아가는 상으로, 성경의 사건을 일상과 연결시켰음 알 수 있다. 같은 해 고갱이 (아를의 ‘노란 집’으로 가기 전에)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 썼듯이, 풍경과 씨름은 기도하는 여인들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고갱은 성서화가 아닌 성서를 묵상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그렸다. 이처럼 상징주의자들은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현대적이고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주제를 그림에 끌어들였다.


폴 고갱,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0-1년, 캔버스에 유채, 38 x 46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인상파 화가들이 보이는 세계의 ‘순간’을 묘사하는데 집중했을 때, 고갱은 현실과 상상의 영역이 공존하는 획기적인 작품을 남겼다. 특히 강렬한 붉은 배경은 이 공간을 현실 너머로 전환시켰다. 전반적으로 인물의 형상이나 풍경은 단순화되고 윤곽선이 드러나면서 크기는 왜곡되었다. 선명하고 평면적인 채색, 실험적인 구도는 당시 유럽을 매료시킨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Ukiyo-e, 17-19세기 일본 서민 계층에서 유행하던 채색 목판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또한 강렬하고 단순한 원시미술에 대한 화가의 갈망도 반영되어 있다. 고갱의 그림에서 특히 색채는 점차 고유의 언어로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고갱은 관찰된 현실너머의 사고와 상상, 경험을 종합하여 감추어진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비자연주의적으로 나아가는 20세기 미술의 초석을 놓았다. 그런데 고갱이 만족스럽게 제작한 이 작품을 동네 성당에 기증하려 했지만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다는 에피소드는 씁쓸한 웃음이 나오게도 하고 왠지 모를 용기도 준다.   


“자연에 너무 매달리지 말게. 예술은 일종의 추상이야. 자연 앞에서 꿈을 꾸면서 추상적 형상을 끌어내야 하는 거야. 그런 꿈에서 어떤 창조적 형상을 얻을 것인지 생각하게. 하나님을 향해 다가가는 최선의 방법이네. 우리를 창조한 하나님처럼 우리도 창조를 하는 거야.”  

- 고갱이 친구 슈페네커에게 보낸 편지(1888년 8월 14일, 퐁타방에서)



오딜롱 르동,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903년, 47 x 41.6cm, MoMA, 뉴욕

모로와 함께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도 말년에 이 주제를 여러 번 다루었다. 그 가운데 모마에 소장된 작은 그림은 더욱 자유로운 형상과 색채로 표현되었다. 해가 떠오르면서 어둠이 물러나고 각각의 색채가 드러난다. 나무 앞에서 씨름하는 두 인물 위로 천사의 하얀 날개가 드리워져 있다.

앞서 판화 <카인과 아벨>에서 언급한 것처럼, 르동은 젊은 시절 기괴하고 음울한 일련의 ‘검은색’ 판화와 드로잉을 남겼다. 흥미롭게도 50대인 1890년대가 되면서 그는 유화와 파스텔의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종교와 신화, 정물 등을 소재로 점차 평온하고 서정적인 작품을 남겼다. 인상주의 전시회(1886)에서 고갱의 작품을 보고 색채가 주는 놀라운 힘을 발견한 것이다. 뒤늦게 아들이 태어나고 안정된 삶이 작업에 반영되기도 했다. 그 또한 보이는 실재가 아니라 느껴진 실재에 집중했다. 게다가 성경의 이야기는 내면의 비전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말년의 르동은 야곱과 천사의 씨름 이야기를 힘겨루기나 어둠 속의 투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모호한 형상과 축복의 빛으로 빛나는 총천연색의 꿈처럼 묘사했다.



제이콥 엡스타인,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940-1년, 알라바스터(대리석의 일종), 214 x 110 x 92cm, 2500kg, 테이트, 런던


제이콥 엡스타인(Sir Jacob Epstein, 1880~1959)의 <천사와 씨름한 야곱>은 두리뭉실한 인체와 모호한 포즈 때문에 발표 직후부터 주목과 비판을 받았다. 실물 크기의 육중한 조각은 반투명한 대리석의 일종인 알라바스터로 제작된 것이다. 몸집이 조금 더 큰 천사는 쓰러질듯한 야곱을 두 팔로 포옹해 지탱하고 있다. 야곱은 눈이 감기고 머리가 뒤로 젖혀져 있어 거의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결국 천사에게 축복을 받고 야곱이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했음을 깨달은 순간일 것이다. 앞서 살펴본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천사의 포옹을 통해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이 전해진다.


미국 뉴욕 태생의 엡스타인은 한 때 프랑스에서 조각을 배우며 오귀스트 로댕(1840~1917)과도 교류했고, 1905년에 결국 영국에 정착했다. 표현적인 초상 조각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추상화된 조각도 시도했으며, 점차 종교와 알레고리를 주제로 다루었다. 1930년대, 50대의 엡스타인은 창세기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구약 이야기를 수채화 시리즈로 남겼다. 이후 제작한 위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과 <창세기>, <아담> 등은 이상적인 고전조각과는 먼 짧고 굵직한 몸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엡스타인도 고갱과 피카소처럼 박물관에서 본 아프리카나 인도의 원시조각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질감을 섞거나 좌우 비대칭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성스러운 종교 주제를 원시조각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당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천사와 야곱의 밀착된 몸이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겨 한때 조롱 속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작가들이 모두 레옹 보나처럼 이상적이고 분명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미술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엡스타인이 투박하고 묵직한 형상의 천사와 야곱을 조각함으로써 성경의 인물과 이야기의 상징성은 더욱 확장되었다. 유대인인 엡스타인의 이름이 야곱/제이콥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했지만, 야곱의 씨름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된 작가는 10년에 걸쳐 때때로 이 주제를 연구했다. 돌덩어리의 색조와 결도 한몫을 한다. 대결 후 천사와 야곱의 얼굴은 우윳빛의 평온함으로 빛난다. 반면 갈색 돌결의 흔적이 있는 이들의 몸은 밤새 기를 쓰고 씨름한 기운을 담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조각은 단단한 날개와 몸을 가진 천사가 쓰러질듯한 자기(야곱)를 붙들어 올린 형상이기도 했다.




다음 날 야곱은 야뽁강을 건너 드디어 형 에사우를 만난다. 뜻밖에도 에사우는 동생을 보자마자 달려와 안고 환대한다. 둘은 함께 운다. 야곱은 형에게 기어이 선물을 들려 보내고 각자의 길을 간다. 야곱이 걱정했던 문제는 잘 해결되었지만, 이스라엘로 새로 태어난 그의 인생에 불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평생 야곱은 과거의 잘못된 욕망과 속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외동딸 디나가 겁탈을 당하고,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벤야민을 낳다가 산고 끝에 죽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형제간의 갈등 끝에 노예로 팔려나가는 등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베텔과 프니엘에서 만난 하느님을 통해 야곱은 항상 그와 함께하며 그를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을 의지하게 된다.



마르크 샤갈,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931-56년, 에칭, 29.5 x 23.5cm, 로스앤젤레스 미술관,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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