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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Sep 16. 2023

6-1. 요셉_하느님이 더하시는 자

: 요셉과 포티파르의 아내



니콜라 사리치, <의로운 요셉>, 2015-6년, 종이에 수채, 100x70cm


중앙에 이집트 재상처럼 보이는 이가 컵과 벼이삭을 쥔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황톳빛 세상에 그의 얼굴은 하느님의 손과 연결된다. 주변에는 여러 사내들이 그를 반기거나 감동의 제스처로 바라고 있다.   


요셉은 야곱이 라헬에게서 늘그막에 본 첫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요셉을 미워했던 배다른 형제들은 결국 우물 안에 그를 던져 넣고는 지나가는 상인에게 팔아넘겼다. 이집트 고관의 종이 된 요셉은 주인 아내의 유혹을 거부한 것이 화가 되어 옥에 갇힌다. 하지만 꿈을 해몽하는 재주로 파라오의 신임을 얻고 재상이 되어 이집트를 기근에서 구한다. 가나안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이집트에 식량을 구하러 와 극적으로 동생과 대면하고 화해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실한 자세로 하느님의 인도를 믿었던 요셉은 설교나 기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에 하나다. 또한 여러 면에서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창세기의 마지막 성조, 요셉의 이야기는 음모와 유혹, 신분상승, 극적인 화해까지 한 편의 영화처럼 전개되는데, 의외로 미술에서는 아버지 야곱만큼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야뽁강을 건넌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난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하여 긴 저고리를 입혔다. 요셉은 양을 치는 형들을 도와주는 심부름꾼으로 아버지에게 형들의 나쁜 이야기를 일러바치곤 했다. 어느 날 요셉이 형들에게 들려준 꿈 이야기로 인해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에블린 던바, <요셉의 꿈>, 1938-42년, 보드에 유채, 45 x 74cm, 개인소장


영국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에블린 던바(Evelyn Dunbar, 1906~1960)는 환상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요셉이 꿈을 묘사했다. 두 장면 모두 멀리 밭이 보이는 미지의 공간에 화려한 저고리를 입은 요셉이 등장한다. 야곱이 요셉에게 준 긴 저고리는 노동에는 거추장스러운 차림이기 때문에 부유함과 위엄을 드러낸다. 왼쪽에는 우뚝 선 큰 곡식단을 중심으로 주변에 형들이 묶은 11개의 작은 곡식단이 그것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요셉은 자기가 묶은 큰 곡식단을 바라보고 있다. 맞은편에서 요셉은 해와 달, 별들이 함께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본다.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큰절을 하더군요.”(창 37, 9)라는 요셉의 말에 아버지 야곱은 황당해 하지만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한다. 요셉의 인생에서 꿈은 여러 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 고대 근동에서 신은 꿈을 통해 소통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 야곱도 꿈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항상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깨닫지 않았던가. 여기서 요셉은 화려한 저고리 차림의 꼬마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듣는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그의 철없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닥에 놓인 종이에는 “저기 꿈쟁이가 오는구나.”(창 37, 19)라고 적혀 있다. 형들이 미운 동생을 죽이려 했던 미래의 일을 암시하는 것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야곱에게 요셉의 피 묻은 옷을 가져간 형제들>, 1630년, 캔버스에 유채 223 x 250cm,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

요셉이 양을 돌보고 있는 형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동생을 죽일 음모를 꾸민다. 요셉의 저고리를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가, 마음을 바꿔 이집트로 향하는 대상에게 은전 스무 닢에 요셉을 팔아넘긴다. 이것은 신약에서 유다가 은전 30냥에 예수를 판 것을 예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숫염소의 피를 요셉의 저고리에 적셔 아버지에게 가져간다.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Velázquez, 1599~1660)는 이 극적인 순간을 큰 캔버스에 담았다. 요셉의 피 묻은 옷을 가져간 형들은 아버지에게 요셉의 것인지 살펴보라며 내민다. 형들의 자세나 표정은 제각각이다. 아버지 옆에서 슬퍼하는 이는 요셉의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고 했던 르우벤이나 유다일 것이다. 뒤쪽에 선 형은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맨 왼쪽에 조각상 같은 뒷모습의 인물은 당시 이탈리아를 방문한 벨라스케스의 고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야곱은 요셉의 저고리를 알아보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구나. 요셉이 찢겨 죽은 게 틀림없다.”(창 37, 33)라며 망연자실한다. 그는 이 일로 옷을 찢고 허리에 자루옷을 두른 채 오랫동안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 앞에서 충실함의 상징인 개가 형들을 향해 사납게 짖고 있는 모습은 그들의 악행을 암시한다.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 <요셉과 포티파르의 아내>, 1520년대,  대리석, 산 페트로니오 성당 미술관, 볼로냐


이집트로 간 미디안 상인들은 요셉을 파라오의 경호대장인 포티파르(보디발)에게 팔아넘겼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 (창 39, 2) 포티파르도 그것을 알아보고 요셉을 관리인으로 세워 모든 재산을 관리하게 했다. 한편 포티파르의 아내는 “몸매와 모습이 아름다운”(창 39, 6) 요셉에게 빠져 그를 집요하게 유혹하는데, 요셉은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는 어느 날 부인은 요셉을 그야말로 덮쳤고, 요셉은 옷을 버려둔 채 밖으로 도망쳐 나온다.


미술에서 이 이야기는 요셉의 굴곡진 생애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 물론 악한 유혹을 뿌리치는 요셉의 도덕성을 교훈으로 전하지만, 세속적으로 보면 주인집 부인이 잘생긴 청년 하인을 유혹하는 장면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가운데 르네상스의 조각가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Properzia de Rossi, 1490~1530)의 대리석 부조는 놀랍도록 관능적으로 사건을 묘사했다. 침대에서 옷을 풀어헤치고 가슴을 드러낸 채 부인이 요셉의 옷을 붙잡고 “나와 함께 자요!” 하고 말하자, 요셉은 그녀를 피해 도망간다. 부인의 하늘거리는 의상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을, 요셉의 펄럭이는 옷자락은 그의 단호한 의지를 드러낸다.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인체와 우아한 인물 묘사는 르네상스의 대가인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영향을 보여준다. 푹신한 소파와 캐노피의 주름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무척 촉각적이면서 감각적인 조각이다.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 체리씨로 만든 펜던트, 1510-30년

이 대리석 부조는 볼로냐에 있는 산 페트로니오(San Petronio) 성당의 파사드(건물의 정면부)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데 로시는 서른 살 무렵 조각 공모전에 입상해 무녀와 천사들과 함께 여러 부조를 조각했다. 여성 미술가가 드문 시대에 그녀는 조르조 바사리가 쓴 『예술가의 생애』(1550)에 기록된 유일한 여성 미술가이기도 하다. 데 로시는 초기에 과일 씨앗을 활용한 극도의 세밀한 조각으로 기술을 연마하며 남성 미술가의 영역인 금속과 대리석 조각으로 확장해 나갔다. 안타깝게도 이 여성 조각가는 남성 경쟁자들과의 불화와 부당한 대우 속에서 평생을 고군분투하다가 40세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요셉과 포티파르의 아내> 1630-2년, 캔버스에 유채, 206 x 261.9cm, 로열 컬렉션, 런던


이탈리아의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요셉과 포티파르의 아내>는 이 주제를 다룬 그림들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작품이다. 여기서도 포티파르의 부인은 침대 위에서 옷을 풀어헤친 채 애타게 요셉을 유혹한다. 오른쪽에서 비치는 빛 때문에 그녀의 벗은 몸은 더 눈부시게 빛난다. 요셉은 유혹을 뿌리치고 노란 저고리를 그녀의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도망친다. 이 저고리를 빌미로 포티파르의 부인은 요셉에게 누명을 씌울 것이다. 독특하게 요셉은 하얀 블라우스와 진홍빛 겉옷, 스타킹과 머리에 깃털 장식까지, 하인이 아닌 멋쟁이 귀족차림이다. 게다가 도망치는 그의 모습도 여운을 남기는 듯 우아한 궁정풍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가 걷은 붉은 휘장은 부인의 불타는 성적 욕망은 물론 내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유혹을 강조한다. 바닥의 타일, 황동으로 조각된 침대와 호화로운 직물들은 화가의 관심은 물론 주문자의 취향과 부를 드러낸다. 정치에는 무능했지만 미술 후원에 열정적이었던 찰스 1세는 유명한 화가들을 궁정에 초대해 작업하게 했는데, 이 작품은 앙리에타 마리아 여왕(Queen Henrietta Maria)의 ‘기쁨의 집(House of Delights)’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젠틸레스키는 사건의 진정성이나 심리적인 긴장을 묘사하기보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를 표현했다.  


런던 그리니치에 있는 ‘기쁨의 집’은 회화와 도자기, 귀중품 등 다양한 컬렉션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CRJqnfov_k


비교를 위해 몇 점의 그림을 더 올려본다.


귀도 레니, <요셉과 포티파르의 아내> 1630년경, 128.9 x 170cm, 폴게티 센터/ 구에르치노, 1649년, 123.2 x 158cm, 워싱턴 국립미술관



렘브란트, <포티파르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는 요셉>, 1655년, 캔버스에 유채, 106 x 98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앞의 사건 이후, 포티파르 부인이 요셉을 모함하는 장면을 그렸다. 어두운 침실에서 삼자가 대면한다. 침대 옆 안락의자에 걸터앉은 부인은 억울한 듯 찡그린 표정으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녀의 한 손은 침대 끝에 걸려 있는 요셉의 붉은 외투를 가리킨다. “당신이 데려다 놓으신 저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목청을 높여 소리 질렀더니, 자기 옷을 내 곁에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쳤답니다.” (창 39, 17-18) 이집트 파라오의 경호대장인 포티파르는 몸을 숙여 부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그는 이집트의 의복이 아닌 터번과 카펫 같은 외투 차림에 긴 검을 차고 있는데, 렘브란트가 그림을 위해 수집했던 동방의 의상으로 보인다. 침대 맞은편에는 허리에 열쇠꾸러미를 찬 청년 요셉이 서 있다. 공손한 자세로 듣고 있는 충직한 요셉의 얼굴은 슬프면서도 담담하다. 어떤 변론을 해도 부인의 위증을 증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향한 곳, 흐트러지지 않은 반듯한 침대는 사건의 진실을 말해준다. 반면 어둠 속, 어리석은 주인은 아내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라 곧 요셉을 감옥에 처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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