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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Oct 15. 2023

7-1. 모세_물에서 건져낸

: 강가에서 모세를 발견하다


니콜라 사리치, <의로운 모세>, 2015-16년, 종이에 수채, 100 x 70cm


파도치는 물결을 가르고 중앙에 우뚝 선 남자는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머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손과 밝은 빛으로 연결된다. 노란 망토 아래 선 작은 남녀노소는 손을 들어 그를 반긴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받던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켜 하느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시나이 산에서 야훼에게 받은 율법을 기초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종교를 확립한 인물이다. 모세는 창세기 이후 탈출기에서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아우르는 구약의 주인공이자 신약 예수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영아 학살을 피해 버려진 모세는 우연히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이집트 궁정에서 자랐다. 모세는 40살에 동족을 무참히 괴롭히는 이집트 노예 감독관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목자의 딸과 결혼해 목자로 살아간다. 80살에 그는 호렙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케 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하느님이 주도한 여러 재앙들을 통해 모세는 백성을 탈출시켰고,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 율법을 전해받는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다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생을 마감한다.

  



요셉을 통해 이집트에 살게 된 이스라엘(야곱)의 자손들은 하느님의 약속처럼 400년의 시간 동안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에게 더욱 고된 일을 시키고 급기야는 태어나는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아기 모세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어머니는 역청과 송진을 바른 왕골상자에 아기를 뉘어 강가에 놓아두고, 누이 미리암은 이를 지켜보았다. 마침 나일 강에 목욕하러 나온 파라오의 딸과 시녀들이 바구니를 발견하고 히브리 아기를 가여워한다. 미리암은 기지를 발휘해 공주에게 유모를 구해오겠다고 자청했고, 결국 모세는 친엄마의 돌봄을 받은 후 이집트 궁정에서 자란다.


아기를 담은 바구니를 강에 띄우고 구조되는 내러티브는 고대 신화와 영웅 이야기에 종종 등장하는 유형이다. 모세의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의 군주 사르곤 왕의 일화와 특히 유사하다. 사르곤 왕의 어머니도 아기를 바구니 안에 넣어 강에 띄웠고 한 농부가 발견해 위대한 왕이 된다. 로마를 건국한 쌍둥이 로물로스와 레무스도 바구니에 담겨 티베리스 강에 버려졌지만, 암늑대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

 

파올로 베로네세, <모세를 발견함>, 1581-2년, 캔버스에 유채, 58 x 44.5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1588)는 이 주제로 수차례 다루었는데, 그 가운데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살펴보자. 멀리 도시가 보이는 자연을 배경으로 시녀들에 둘러싸인 화려한 차림의 여인이 눈에 띈다. 공주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그녀를 향해 바둥거리는 아이가 있다. 무릎을 꿇고 아이를 보여주는 소녀는 바구니를 지켜보다 달려온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고, 천으로 아이를 감싸려는 여인은 누이가 유모로 데려온 모세의 어머니일 것이다. 이후 공주는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이름을 모세라 지었다(창 2, 10). 흥미롭게도 이후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킨 모세는 홍해 앞에서 바다를 갈라 그들을 물에서 건져 내는 역할을 한다.


베로네세의 그림에는 무역의 중심지이자 화려한 귀족 문화가 꽃피웠던 당시 베네치아가 반영되었다. 공주는 하얀 피부에 왕관과 보석, 금은사로 수 놓인 드레스 차림으로, 파라오의 딸이 아닌 당시 귀족의 모습에 가깝다. 하단에 바구니를 든 흑인 하인과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난쟁이 광대도 당시 궁정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뛰어난 색채화가로 건축과 다양한 직물 묘사에 능했던 베로네세는 베네체아 사교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최상류 층의 저택을 장식하는 작업을 주로 맡았다. 종종 세속적인 사치와 쾌락을 담아내 한 때 그의 성서화는 이단 혐의를 받기도 했다.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모세를 발견함>, 1630년대 초반, 캔버스에 유채, 257 x 301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의 작품은 이 주제를 다룬 그림들 가운데 가장 장대하고 유명하다. 중앙에 바구니의 아이를 중심으로 9명의 여인들이 모여있다. 오른쪽에 목욕하던 시녀는 아기가 누워있는 바구니를 공주에게 보여준다. 손가락을 빨고 있는 포동포동한 아이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랑스럽다. 가장 화려한 노란 드레스를 입은 공주는 아이를 가리키며 왼쪽을 바라본다. 소박한 얼굴과 차림의 두 여인은 모세의 어머니와 누이일 것이다. 무릎 꿇은 소녀가 아기를 위해 유모를 데려온 것인데, 서 있는 여인의 옷이 흘러내린 것은 수유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마치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보이는 시녀들은 다양한 시선과 우아한 자세로 묘사되어 아기를 발견하는 극적인 순간이 강조되었다.    


젠틸레스키는 로마에서 카라바조에게 큰 영향을 받았지만, 점차 밝고 절제된 화풍을 구사했다. 그는 말년에 영국의 궁정화가로 12년을 일하다 생을 마감했는데, 이 작품은 찰스 1세가 곧 태어날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주문한 것이다. 이 그림은 그의 <롯과 그의 딸들>과 함께 그리니치에 있는 앙리에타 마리아 여왕의 기쁨을 집의 대연회장을 장식했다. 그림의 후경은 영국의 전원 풍경이고, 두 시녀가 가리킨 방향에는 실제 템즈강이 흘렀다고 한다. 아름다운 저택에서 여왕은 바구니 안의 모세처럼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찰스 2세의 탄생을 맞이했을 것이다. 미술 애호가였던 이들 부부는 대가들에게 주문한 위엄 있는 초상화의 주인공이지만, 이후 찰스 1세가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되며 슬픈 결말을 맞게 된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 1904년, <모세를 발견함>, 1904년, 캔버스에 유채, 137.5 x 213.4cm, 개인소장


로렌스 앨머 태디마(Lawrence Alma Tadema, 1836~1912)의 그림은 파라오의 딸이 나일강에서 아기를 발견하고 멤피스 궁정으로 데려가는 행차를 보여준다. 한눈에 보아도 이전과 다르게 고고학적인 발견에 기반해 모세의 이야기를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공주는 남자 일꾼들이 든 가마를 타고 꽃으로 장식된 바구니에 누운 아이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민머리에 샅바(loincloth) 차림의 남자 일꾼들은 어두운 피부를 가졌지만, 흥미롭게도 공주와 여성 하녀들은 미의 표준이기도 했던 하얀 피부로 묘사되었다. 공주가 탄 가마는 이집트 무덤의 그림을 참고한 것으로, 발밑 스툴에 묘사된 묶인 포로와 그녀가 든 도리깨는 왕족을 상징한다. 하인들이 들고 있는 커다란 공작 깃털 부채나 기타 같은 악기도 유적과 유물을 반영해 그린 것이다. 행렬 앞쪽에 있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기록된 조각상은 영국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멀리 강 건너편에는 피라미드와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집트의 노예로 벽돌을 만드는 고된 작업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일 것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1798~1801) 이후 고대 이집트의 언어·역사·문화 등을 연구하는 이집트학이 본격화되었다. 이어진 연구 서적 출판과 박물관의 개관(1858)으로 화가들도 이를 작업에 반영해 나갔다. 네덜란드 태생에 앨머 태디마는 영국으로 귀화에 주로 고대 문명을 정교하고 이상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모세를 발견함>은 말년의 대작으로 이집트에서 토목건축을 했던 사업가가 주문한 것이다. 덕분에 이집트를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던 화가는 2년여에 걸쳐 고대 의상과 조각품, 풍습을 공부하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 작업이 끝났을 때 아내는 모세가 이제 두 살이 되었으니 바구니는 더 이상 필요 없겠다며 화가를 놀렸다고 한다.



마르크 샤갈, <파라오의 딸과 모세>, 1966년, 석판화, 48.2 x 3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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