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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Dec 14. 2019

단유

만 14개월간 이어오던 모유수유의 대장정의 막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젖을 물어야만 잠드는 해인이였기에 큰 결단이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단유 후에 올 상실감과 공허함이 두려웠던 내가 용기를 낼 시간이 필요했던걸지도.


단유 이틀째, 남편은 아이가 젖 생각이 나지 않도록 내가 아이와 떨어져있는 게 좋을 것 같으니 혼자 외출을 하면 어떻겠냐 제안했다. 나간 김에 하고싶은 것 맘대로 하면서 기분 전환도 하고 오라며. 막상 제안을 수락하고보니 혼자 뭘하면 좋을지 한참 생각이 나질 않았다. 집에서 아이와 있으면서는 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았는데... '해인이 엄마'가 아닌 '박서영'으로 시간을 보내려니 꽤 낯설었다. 간만에 마사지를 받고, 보고싶던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오랜만에 글을 쓰기로 한다.



단유 첫날.

낮잠 전에도, 밤잠 전에도 한시간 반씩 악을 쓰며 울다 탈진해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집안을 하염없이 서성였다.


아이가 뱃속에서 나와 첫 울음을 내뱉고 내 품에 안기자마자 반사적으로 젖을 찾던 모습이 아직 너무 생생하다.

갓 태어난 아이가 젖을 빨던 힘이 어찌나 센지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살짝 아이를 밀치던 기억도. 곁에 있던 조산사한테 원래 아기가 이렇게 빠는 힘이 강하냐며 놀라 물을 정도였다.


해인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유수유에 대한 욕심이 있던 나는, 출산 직후 입원해있던 3일동안 잘 나오지 않는 젖만 빨렸다. 퇴원할 때서야 보통 처음엔 엄마 젖이 잘 안나오기 때문에 분유와 혼합수유를 한다고, 그러지 않았던 해인이는 출생 직후 0.2kg나 빠졌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미안했던지. 내 욕심과 무지가 아이에게 혹여나 해가 되지는 않을까. 그 때를 시작으로 이후로 이어진 수많은 선택의 순간 앞에서 늘 망설이고 고민하게 되는 쫄보 엄마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기에게 가장 완벽하고 좋다는 모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신생아 황달과 처음에 부족했던 모유양 때문에 첫 한두달은 혼합수유를 했지만 그 후에는 완모 직수(완전 모유수유, 직접수유)의 편리함 때문에 분유를 주지 않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꼬물거리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생존하기 위해 오롯이 나만 의지하고 있는 아이를 향한 모성애가 절로 생겼다. 나라는 나무에서 영양을 받아먹고 자라는 아이를 위해 내가 건강해져야한다고, 늘 좋은 것만 주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좁은 방 한켠 수유의자에서 젖을 물린 후 잠든 아이를 안아 아기 침대에 살며시 눕히길 몇 달. 더 넓은 침대에서 아기와 함께 누울 수 있게 되자 '눕수'의 신세계가 열렸다. 젖을 물면서 아기가 잠든다는 부작용이 생겼지만 젖을 찾아 내 품 깊숙이 파고드는 아이를 보듬어 안는 순간엔 아무래도 좋았다.



젖을 문 채 나를 올려다보고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입맞추던 그 순간들을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겨 사진으로만 꺼내봐야한다는 사실이 깨달아지자, 눈에 열감이 차오르더니 눈물이 맺혔다. 성장을 위해 동반되는 고통은 필연임을 알지만, 젖을 떼는 과정은 해인이한테도, 나한테도 아직은 낯설다.


우는 아이를 달래 재우고 늦은 밤, 이제는 목적을 잃고 단단히 차오른 젖을 손으로 짜낸다. 언젠가는 겪어야하는 과정이지만 공허함이 너무 크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잠시. 젖이 비워진 그 자리에 마음 깊은 곳에서 확신이 차오른다. 이 과정을 겪고 나면 해인이도, 나도 한 단계 더 도약해있을거라고. 더 강하게 성장해 있을거라고. 나와 다르게 독립적인 성향도 강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커, 겁없이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 아가.


젖을 못 먹는 게 못내 서러운지, 긴 울음 끝에 한참을 히끅거리다 잠들어서 아침에 시무룩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느 때와 똑같이 방긋 웃으며 일어난 해인이. 허기진 탓인지 단유 후 식사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렇게 단유한지 3일째 되던 날, 잠자기 전 책을 읽어주자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해인이는 혼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제는 말귀를 알아듣는 우리 딸아이는 내 오랜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스스로 잘 견뎌냈다.


수면교육을 시도하다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했던 무수한 밤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으로 스쳐간다. 올 것 같지 않던 순간이 현실로 다가오자 언제 아이가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다가, 앞으로 더 큰 난관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더욱 단단해진다. 여느 때와 똑같이 나를 보며 환히 웃어주는 딸아이를 품에 안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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