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Feb 06. 2020

사랑의 근간을 다지는 시기

잠든 아이가 엥-하고 방안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설거지를 급히 멈추고 아이 방문을 열며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안심시킨다.

"해인아, 엄마 여기있어."


잠결에 엄마가 없어져 불안했던 아이는 일어나 앉아 울다가, 내가 같이 누우며 살결을 맞대자 울음이 금방 수그러든다. 다시 잠이 든 것 같아 내 몸에 닿아있는 팔 하나를 슬쩍 빼고, 다리 하나를 슬쩍 밀어내본다. 작은 뒤척임에도 실눈을 뜨며 내가 옆에 있는지 확인하던 아이는 불안했던지 급기야 내 몸 위로 기어올라온다. 웃음이 피식 나온다. 마무리하려던 집안일을 잊고 아이를 꼭 끌어안아준다. 품에서 안심이 된 아이는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만 16개월이 코앞인데 벌써 '재접근기'가 온 것 같다. 이도 4개월부터 빨리 나더니 보통 18개월 즈음 닥친다는 이 시기도 해인이는 빨리 겪는 것 같다. 엄마에게 의존하고 싶기도 하고, 독립적으로 혼자 하고 싶기도 하는, 두 마음이 공존하는 신기한 시기란다. 그 혼란스러움을 잠식시키는 아기들만의 방법이 '다시 엄마 껌딱지 모드로 돌아가기'인가보다. 


집에서도 어딜 가고자할 때 내 손을 잡고 졸졸 따라오게 하고, 잘 놀다가도 잠깐 내가 주방이나 화장실로 사라지면 눈썹이 휘날리도록 따라와 바짓가랑이 사이에 몸을 파묻고 있다. 평소 잘 안하던 "엄~마~" 소리도 하루 몇번씩 우렁차게 외치고, 퇴근 후에 아빠가 있으면 날 별로 찾지 않았는데 아빠랑 잘 놀다가도 갑자기 나에게 앵겨붙는다.


평소 한번 잠들면 깨지 않고 통잠자던 아이가 어제 새벽엔 불에 데인 것처럼 울며 깨서, 안아주고 달래주어도 한참을 진정을 못하기도 했다. 성장통이려나 싶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아이에게 어제 새벽에 왜 울었냐고 질문을 했더니 놀랍게도 손목과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아파"라는 대답에 깜짝 놀랐다. 재차 물어도 같은 대답이었다. 말귀를 알아들은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자기의 희노애락을 어느정도 말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컸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돌이 지나면서 이제 정말 키울만하다 (신생아 시절 육아가 제일 힘들었다ㅠ) 싶었는데 14개월 이후로 애교가 점점 물이 오르고 있어서 이런 시기도 아직까진 귀엽기만 하다. 심하게 칭얼거려서 짜증이 나려다가도 주위를 환기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장난치거나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난다. 하루하루 할줄 아는 행동과 말이 늘어나고 이제는 말귀도 제법 잘 알아들어 기저귀를 버린다든가, 무엇을 가져오라는 지시 등은 쉽게 따라한다. 상황에 대한 이해도 늘어 시키지 않아도 헤어질 때 빠빠이를 한다든지, 다같이 웃는 상황이거나 잘못해서 혼날 것 같은 상황이면 '사회적 웃음'을 지을 줄도 아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웬만한 말은 앞글자를 따서 말할 줄 알고 익숙한 단어들은 제법 정확한 단어로 말한다.



깊이 잠든 딸을 몸에서 떼어 눕히고 발걸음 소리 안나게 걸어나오면서 문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빛에 비친 아이의 작은 몸을 바라다본다. 품에 쏙 안기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인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 팔다리가 많이 길어졌다. 온 몸과 마음으로 엄마를 간절히 찾고 곁에 두고 싶어하는 이 시기도 금방 지나가버릴텐데. 아이가 내 손을 꼭 잡고 내 품에 파고들 때, 넉넉한 가슴으로 더 꼬옥 안아주자. 해인이의 평생 살아갈 힘이 되어줄, 사랑과 신뢰의 근간을 다지는 중요한 시기에 더욱 더 많이 사랑해주자, 다짐하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