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하고 싶은 일 - 4. 가족과의 시간 -
5. 가족과 시간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고향에 있는 가족을 만날 시간이 적었다는 것이다. 일 년에 두 번, 많으면 서너 번 정도였는데 한번 갈 때 불과 3,4일에 불과했다. 갈 때마다 부쩍 쇠약해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더 자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금방 또 와야지 생각해도 어느새 5,6개월이 흐르는 게 보통이었다.
어떨 때는 회사 상사의 상갓집에 가느라 못 간 적도 있다. 참 웃지 못할 일인데 기차역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내 지인은 그날 소개팅 첫 만남을 갑작스레 미루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샐러리맨이었다. 퇴사를 하면 가족과 오랜 시간 같이 보내야지 생각했지만 이것은 내 예상을 빛나갔다.
일단은 돈이 없었다. 얼마나 길게 갈지 모르는 도전에 생활비를 절약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고향에 가더라도 부모님께 용돈도 제대로 드릴 수 없으니 그것도 죄송한 일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만 있으면 자주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복병이 바로 돈이었다. 부모님에게는 사실 뭘 갖고 오는 게 필요 없고 얼굴 한번 더 보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나는 집에서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자주 하는데 전화할 때마다 첫사랑 만난 것처럼 활짝 웃으시며 반겨주셨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부모님 말고 또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직장마저 버리고 나온 나에게 말이다.
사실 자주 가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매번 내려가는 차비도 부담인 데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기 전까지 잠시라도 멈추는 게 마음에 걸렸다. 고향에 내려가 있으면 몸은 편하고 좋지만 남겨놓고 온 하다만 일들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일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마음이 더 편했다.
결혼문제도 중요한 요소이다. 만약 내가 지금 결혼을 했다면 그만둔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록 회사의 압박에 암이 걸릴지언정 사표 던질 생각은 접었을 것이다. 그게 샐러리맨이다. 그만둔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빨리 돈 벌 수 있는 일을 찾느라 열중했을 것이다. 결혼이 아닌 연애만 하고 있어도 퇴사는 쉽지 않은 일이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 여자 친구가 있는데 퇴사해도 되는지, 아내가 있는데 퇴사를 할 수 있겠는지 말이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퇴사 후에는 바뀌는 것이 분명히 있을 거란 것이다.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 똑같은 연애와 똑같은 마음가짐은 절대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한쪽은 분명히 바뀔 것이며 두 사람이 변화하는 폭이 차이가 날 수록 관계는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남자 입장과 여자 입장이 좀 다른 면이 있다. 보통 퇴사 후 빨리 수입을 만들지 못하면 남자는 위태로워진다. 아무리 좋은 여자를 만나도 마찬가지이다. 늘 자신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줄 거란 막연한 기대보다는 실질적인 것을 보여줘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기회를 잡기 위해 공백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오로지 기다려 주는 시간이므로 마음이 급하다. 여자들은 대체로 안정된 가정을 꿈꾼다. 성공을 꿈꾸는 남자와 입장 차이가 있다. 여자의 입장에서 나이가 먹어가고 자신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남자가 뭔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실망하고 조급함을 느낄 수 있다.
관계는 발전해가야 한다. 10년 연애를 하더라도 결혼한 사이와는 다르다. 형식적이라도 진전이 없는 관계는 지루하고 30세를 넘어가면서는 조바심이 날 수 있다. 이것은 남자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 있지만 알고 있어야 하는 면이다. 가능성을 눈으로 보여줄 수단이 있다면 여자 친구가 있어도 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관계가 끝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공공분야에 취직해서 잘 다니다가 어느 날 은사로부터 해외유학 제의를 받았다. 그는 일단 결혼을 하고 유학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 역시 유학을 가라고 조언했지만 만약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은 그런 면에서는 강력한 힘이 있는 제도이다. 법적인 힘뿐만 아니라 정신자세까지 새롭게 한다. 여자 친구로서는 따라갈 수도 없었겠지만 간다고 하더라도 아내로서 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물론 유학하는 동안 수입이 변변치 않을 테니 아내와 고생을 많이 할 것이다. 그러나 가정을 갖게 된 두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 자체가 바뀔 것이다. 운명공동체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여자 입장에서 남자 친구가 있는데 퇴사를 하면 어떨까? 여성들도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남자 친구에게 내가 회사를 그만두어도 되는지 말이다. 요즘엔 남자들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일하는 여성을 많이 원한다. 수입이 많아야 생활수준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걸 원한다고 하면 어떤 여성들은 많이 실망한다. 어떤 대답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솔직함이 정답일 것이다.
남자 친구가 있는 경우 여자 입장에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계의 주도권이 남자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있다. 우월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학생도 아니고 성인의 연애라는 것이 돈문제를 벗어날 수없기 때문이다. 밥을 먹어도 그렇고 당장 외모를 가꾸는 데에도 돈이 들어간다.
남자가 여자에게 돈 쓰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오로지 쓰기만 해야 한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싫증이 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냉정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사랑이라고 해도 인간은 인간이다. 그들에게 그것을 뛰어넘는 양심과 사랑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럴수록 상처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부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여있지만 마냥 백수생활을 한다면 그것도 한계가 있다. 결혼생활이라고 해도 계속 진전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가진다든지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든지 하는 생활의 발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처음엔 사랑이 모든 것을 눈멀게 해도 결국 지루함이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올 것이다.
물론 헌신적인 남자, 여자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 파트너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다. 그런 것을 맹신하고 섣불리 결정했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떠났다고 해서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예측 가능한 두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더 기다려주고 이해해줬으면 좋았겠지만 사람에겐 저마다의 한계가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결코 녹록하지 않은 삶의 전쟁터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성적 판단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것까지 각오가 되어있다면 결정을 내려도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겪고 연인과 헤어지는데 그것을 에너지로 삼아 다시 일어서서 더 큰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 삶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얘기는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실패 속에서 기회는 찾아온다. 실패하고 버림받았지만 더 강한 사람이 되고 더 깊은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성공이 찾아올 가능성이 더 높다.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퇴사와 가족이라면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이고 퇴사와 사랑이라면 퇴사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와 아내가 있는데 무조건 퇴사할 수는 없다. 비교적 나은 직장을 찾든가 아니면 더 완벽한 준비를 하고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사실상 회사 다니는 동안 이미 수익구조가 완성되고 나서 나와야 한다. 가정에 대한 책임은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건강에 관련된 문제라면 어떤 경우도 양보는 없다. 건강이 우선이다. 일은 어떤 일이든 다시 찾으면 된다.
퇴사와 사랑이라면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퇴사를 택하라. 사랑은 너무나 큰 기쁨을 주지만 인생 전체를 볼 때 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내가 퇴사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견뎠는데 다른 이유로 헤어짐을 당할 수도 있다. 내 결정의 관점을 타인에게 둬서는 안 된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다. 내가 가장 행복한 길을 우선 생각하고 그 행복을 나눠줄 고민을 하는 게 필요하다. 내가 퇴사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므로 이것은 양심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여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을 받아들여 준다면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아무 탈 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살다 보면 한쪽이 아플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으며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고비를 넘겨가며 사랑은 깊어지는 것이다. 숨기거나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고 상대방의 판단을 기다려보는 것이 옳다.
결론적으로 퇴사 후에도 가족과의 시간은 길어지지 않았다. 다만 전화 횟수도 늘어나고 가족들의 사정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한참 바쁠 때는 형제들과 몇 달에 한번 통화할 때도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돈은 행복을 보장해주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기본가치를 딛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족을 무시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으려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늘 성공만 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다시 일어서려고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이 주는 사랑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늘 그 자리에 있다. 용돈을 몇 십만 원씩 드릴 때에도 몇만 원 밖에 못 드릴 때에도 부모님은 내가 오길 아침부터 기다리신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흔들림 없이 사표를 던질 수 있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퇴사를 결정하라. 가족을 위해 일할 수 없다면 퇴사하는 것이 맞다. 가족이 배제된 생활 속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당신의 인생은 빈껍데기일 뿐일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의 틀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당장의 성공에 집착하지 말고 언제나 나를 위해 옆에 있어줄 것은 가족이란 생각으로 접근하라. 그것이 내가 얻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