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하고 싶은 일 - 3. 일과 공부 -
3. 다른 일(작가)
퇴사 후에 분명히 무슨 일을 하고 싶었을 텐데 나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동시에 그것들을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었다. 나는 말하는 것은 그렇게 잘하지 못하지만 글 쓰는 것은 좋아했다. 어릴 때는 컴퓨터 잡지를 많이 보았고 크면서 음악을 좋아해 음악잡지를 많이 보았는데 여기에 각종 평론이 많이 실려있었다. 지금 이름 난 가요평론가들이 대부분 그때 잡지에 기고하던 사람들이다.
글의 위력이 얼마나 크냐 하면 평론가, 기자는 글만 가지고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할 수 있다. 글에 있는 표현과 테크닉, 그리고 독자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까지 포함하면 글은 단순히 문자가 아니고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나 다름없다. 어떤 무기도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무기는 없다. 그러나 글은 타인의 생각을 움직이고 심지어 감정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며 글로 내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있었다. 원래 생각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것을 배출할 통로가 필요했다.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면 작곡가가 되었겠지만 그렇지 못해 글이 제일 좋은 도구가 되었다. 사람은 감정이나 생각을 표출할 도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된다.
대학 때는 문학책을 많이 읽었는데 도서관 구석으로 가면 먼지 묻은 고서들이 있었다. 고서라고 해도 , 7-80년대 출판된 책인데 누렇게 변한 종이에다 표지 안쪽에는 대출자 목록이 붙어있었다. 그때는 왠지 그런 책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남들 다 읽는 전공책이나 처세술 관련 책보다는 그런 책이 보고 싶었다.
지금은 지식이 되는 책들을 많이 보는데 글 쓰는 작업에 도움이 많이 된다. 내가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이유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이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엔 늘 입을 다물고 있어야 됐다. 내 이야기를 이해해줄 사람도 없었고 좋은 의도로 받아들여줄 사람도 많지 않았다. 지금 나는 에세이 형식의 책과 경제 사회 분석 책을 합쳐 3권 정도를 동시에 쓰고 있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이다.
회사에서는 왜 그랬을까? 사실 젊은 직원들끼리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일에 쩌든 그들이 입을 다물었고 나 혼자 그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같은 일도 정말 재미없게 일하는 게 내가 다닌 회사들이었다. '일을 즐겁게 창의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 내 생각이 반영되고 업무가 하나하나 개선되어가는 것을 볼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시킨 일만 해야 했고 건의하는 것들은 묵살되었다.
이런 상황을 사내정치를 통해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 나도 그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정치적인 사람이 못되었다. 사내정치를 잘하는 사람들이 쓴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정치는 표리 부동한 사람이거나 그럴 필요 없이 악한 사람들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떤 행사장에서 대중 연설 중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비난받은 사람도 곧바로 연설자로 나와 똑같이 갚아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웃는 표정에 서로 인사하고 악수까지 나누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웃으면서 칼을 들이미는 행위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 심리가 얼굴 표정에 나타난다.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해야 했고 불합리한 것은 고쳐야 속이 편했지만 그런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많은 젊은 직장인들은 이런 좌절에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좌절 속에 있는 청년들을 많이 봐왔고 안타까웠다. 조금만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지시는 Top-down, 의무는 Bottom-up이었다. 광고와 드라마에서 봤던 당당하고 세련된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론이 나를 퇴사로 이끌었다.
그래서 혼자 글을 쓸 때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자기 생각을 말하면 되니까 말이다. 나는 때때로 깊은 상상에 빠진다. 어떤 사람은 공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신호등을 기다릴 때나 음식을 주문하고 밥이 나올 때까지, 때로는 어떤 일을 하면서도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떠오른 생각들은 묻혀두기엔 너무 아까운 것들이다. 그래서 책을 쓰고 있다. 이 퇴사 일기를 쓰면서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회사들이 비슷하구나. 나보다 더 힘든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구나. 그래서 이 책을 더욱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나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책으로 쓰고 싶은 내용들은 많이 정리해두었다. 시간만 된다면 다 쓰고 싶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공부하고 책 쓰는 게 내 천직인 것 같다. 회사생활 10년을 넘게 하고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4개월 동안 하루도 안 쉬는 그런 업무강도가 아니었다면 우유부단한 내 성격상 아직도 회사에서 밤을 새우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을 것 같다. 하룻밤을 새고 다음날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볼 때의 공허감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는 대학교 교수도 아니고 박사학위도 없지만 삶에서 직접 겪은 현실적이고 눈치 보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길 바라고 퇴사도 하나의 선택 수단으로 생각해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영리한 퇴사를 통해 인생의 발전을 이뤘으면 좋겠다.
4. 공부
퇴사하면 공부를 좀 해보고 싶었다. 학교나 학원을 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야가 몇 군데 있었다. 일단 역사 분야이다.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삶의 이치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는 가장 큰 지식 중에 하나이다. 나는 이 분야에서 무지하다. 공대생이기도 했고 독서량도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 공부도 있지만 역사공부를 좀 하고 싶어서 책을 사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끝날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할 것이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 조금 뜻밖의 분야이긴 하지만 정신분석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책들을 읽어가고 있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신에 대해서는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알면 알수록 신기한 분야가 정신분석 분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와서야 정신의학,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이 심리적 요인의 질병을 많이 앓게 되는 것이 원인인 것 같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이런 이유로 클리닉이 발달해 개인 상담을 하는 곳이 많다. 원래 나는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주로 후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누구라도 내게 조언을 구하면 마치 내 일처럼 몰입해서 듣고 방법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내 주특기가 공감능력이라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 마치 내일처럼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같이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고 실제로 그들에겐 내가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 많은 부분 심리적 응어리가 해소되었다.
아마 내게도 한 사람만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동료가 있었다면 퇴사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동료들은 회사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그래서 나 혼자 광풍을 맞아야 될 상황이 닥쳤다. 그 바람을 맞고 광자가 되든 병자가 되든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10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면서 나는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는 존재하지 않고 나는 그것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옳아도 지금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독립하기로 했다. 혼자서 한번 해보기로. 하고 싶었던 일을 100% 쏟아부어서 해보자고.
그렇게 독립한 상황에서 나는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있다. 정신분석도 그 분야 중 하나이다. 사람의 심리, 정신 분야는 인류의 마지막 남은 미지의 세계라고 할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아무리 밝혀내더라도 그것이 100% 진실임을 증명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분야의 매력이다. 늘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회사일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지 말기 바란다.
회사는 법인격으로 직원은 그 세포와 같다. 세포는 죽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 우리는 그렇게 대체 가능한 존재로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회사를 다니더라도 필요한 요소이다. 공부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필요한 요소이다.
공부는 내가 책을 쓰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는 수십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끌리는 제목만 붙여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해야 될 이야기를 하고 불편한 진실이라도 인생에 도움이 되고 알아야 할 지식들을 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이다.
공부를 위해 대학원을 간다든가 유학을 가는 방법도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런 독학은 작은 것을 수도 있는데 퇴사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환경을 고려해서 선택해야 했다. 내게 다시 학업을 시작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걸 선택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것은 시기상 적합하지 않았다. 독립했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 속에서 어느 정도 기반이 된 후에 생각할 일이다.
대학에서부터 유학에 대해서 항상 생각이 있었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기회가 되면 나이에 관련 없이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그들의 삶과 문화를 배우고 싶다.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한국에서만 사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 마루 밑의 개미와 다를 게 없다. 지구 안에서라도 그 관점을 깨고 다른 세계를 배우고 싶다. 아마도 인간만이 오로지 배우기 위해 다른 세계로 떠날 것이다.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의 목록이 있다. 앞서 말한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을 비롯해 평생 한번 가보기 힘든 카리브해나 렌소이스 사막 같은 자연환경이 좋은 곳 그리고 이집트, 이스라엘 같은 고대 역사의 현장에도 가보고 싶다. 컴퓨터를 공부한다든가 동영상 편집기술을 배운다는 것 같은 것들은 이런 공부에 비하면 소소한 것들이다.
4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