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하고 싶은 일 -2. 취미 Part 2-
배운 대로 일할 수 없는 곳이 우리나라 회사이다. 이것은 내가 충분히 결론 내릴 자격이 있고 그만큼 경험했다고 자부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퇴사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정은 위에서 하고 책임은 내가지는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을 내가 이해 못한다면 나는 이 일에서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밥만 먹으면 밭을 일구는 소도 아니고 시키는 데로만 하는 로봇도 아니다.
생각할 수 있는데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문이다. 부서장이 담당자와 큰 틀에서 의견이 다르다면 담당자를 이해시켜서 일을 하게 하든지 아니면 담당자를 교체하든지 하는 게 정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상위직급의 사람이 넓게 보고 경험이 많으므로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상위직급의 사람들이 겪은 경험은 오래전 일이고 환경과 상황은 언제나 바뀐다.
그들이 넓게 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 그렇게 넓게 보았으면 왜 담당자를 설득하지 못하는가? 논리적인 토론으로 설득하면 될 일이다. 담당자가 이해 못하는 것을 오로지 넓게 본다는 추상적 권위로 찍어 누르려는 것인가? 애초에 우리나라 회사 문화에서 토론이 없긴 하다. 지시하면 항상 YES로 답이 정해져 있으니까.
10년 넘게 회사를 다녔지만 한 번도 직장상사와 일에 대해 진지하게 개선점을 토론한 적이 없다.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였다. 뭔가 아이디어를 내면 철없다는 듯이 씩 웃으며 넘기거나 도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자세도 되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문제점을 말하고 개선방법을 건의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거나 알았다고 한 뒤 무시였다.
나뿐만 아니라 내 후배들도 새로운 생각을 건의했다가 무시당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젊고 통통 튀는 생각을 가진 신입사원들이 들어오면 회사에 활기가 돈다. 그런데 불과 1년이 지나면 신입사원들도 철저히 상명 하복의 회사 문화에 좌절해 자기 생각을 접는다.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그런 장면을 수없이 보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들의 좋은 아이디어, 새로운 방식이 회사에 수혈되어 새로운 피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혁신이 잘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수평적 토론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이다 보니 상하관계가 없을 수는 없고 불합리성도 조직의 규모에 비례해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찍어 누르면 만사가 되는 방식은 아니다. 예전에 애플에서 소프트웨어 부문 최고 수장을 맡았던 사람은 불과 40세였다. 잡스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 밑에서 그렇게 젊은 사람이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 그건 그의 실적과 아이디어가 반영되었고 회사를 성장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신입사원을 받는 이유가 뭘까? 단순히 인력 충원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게 우리나라 회사들의 생각이지만 본래 의미는 그렇지 않다. 신입사원이라는 것은 인력의 충원을 넘어서 새로운 문화와 바뀐 시대의 새로운 수혈이다. 낡은 조직과 생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다. 신입사원의 역할은 일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젊은 마인드로 기존에 생각지 못했던 눈에서 업무를 바라보고 회사를 새롭게 바꿔가는 것이다. 물론 결정권은 없지만 기성세대들이 당연한 줄 만 알고 있었던 낡고 비합리적인 문화를 깨고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라고 알려 줄 수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실현되는 회사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전근대적인 상명하복의 우리 회사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다.
야근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논의가 진전되었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면 당연히 자기희생도 감수하고 일을 할 것이다. 좋은 인재라면 반드시 그렇게 한다. 오로지 시킨 것만 해야 되는 로봇들이 넘쳐나는 회사에서는 일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없고 그것이 곧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퇴사 후 집에서 일할 때가 많은 데 오늘 정해진 일이 끝나야 비로소 휴식으로 들어간다. 사실 퇴사하고 나서는 주말도 없었다. 주말에 쉬면 더 불안했다. 월급도 없는데 맘 편히 쉴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즐거웠다. 매일 계획대로 일을 하면 자기 전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피곤함도 훨씬 줄었다. 내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돈을 많이 번 것도 아직 일이 성공한 것도 아닌데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내 생각대로 일하고 결과대로 책임지는 이 상태가 내가 원하는 일터였다.
나는 더 이상 추상적으로 지시하는 상사의 구미에 맞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독심술을 써서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되고 속으론 반대하면서 동의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행복은 찾아왔다. 사실 행복이란 게 어찌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월급을 올려주지 않아도, 빨리 승진시켜주지 않아도 욕만 하지 않았으면, 이유 없이 야근하지 않았으면, 딱 한 번만 칭찬해주었다면 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몇 년간 끊었던 피아노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냥 독학이다. 전 회사에서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학원을 3년 가까이 다닌 적이 있다. 어차피 퇴근은 불가능하니 저녁 먹고 잠깐씩 피아노를 배우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퇴근시간을 12시로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마침 학원이 회사 바로 앞에 있어서 가능했다. 나이 들어서 배우는 피아노는 정말 어려웠다. 3개월만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3년까지 갔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결국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했었는데 퇴사하고 나서 다시 시작했다. 하루에 잠깐 시간을 내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책 읽기도 좋은 취미인데 그동안 출근길 지하철에서 많이 읽고 회사에 도착해서 근무시간 전에 읽었었다. 회사생활에 묻혀서 점점 세상모르는 바보가 되어가는 게 싫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게 된다. 서점에 가는 것도 내 낛인데 서점 안에 그렇게 많은 책이 있고 매일 새책이 나오는데 과연 나는 그중 얼마나 알고 있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아는 게 늘어갈까?
그 질문에 나는 답할 수 없었고 내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가든 책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내 머리가 바보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차라리 돈을 내고 하루 쉬고 싶었다. 매일 책 읽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눈치 볼 일도 없이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만큼 읽으면 된다.
퇴사하고 나서 약 일주일간 시간표를 짰다. 연습장에 볼펜으로 적었는데 보기 쉽게 정리해보았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나만 보기 편하면 그만이다. 이런데 이기주의를 아끼지 말자.
내가 앞으로 뭘 할 건지 월간, 주간, 일간으로 계획을 짜보았다. 일단 마인드맵 형식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줄기 쳐 가면서 정리했다. 이렇게나 하고 싶은 게 많았나 싶기도 하고 다 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하였다. 하고 싶은 것을 정리했으면 그걸 가지고 월간부터 시간표를 짜야한다. 일간이 아니라 월간부터 해야 한다. 큰 시간부터 짜야 전체 계획의 짜임새가 있다. 어떤 일은 금방 끝나고 어떤 일을 장기간 해야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일은 먼저 해야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계획을 짜보았다. 초기에는 주로 공부하러 다니는 데 시간을 많이 썼고 수영, 전시회, 작업용 장비 구매에도 신경을 썼다. 아무리 계획을 잘 짜고 나와도 몇 달 동안은 시행착오로 보내기 쉬웠다. 초기에는 일단 계획표가 있는 게 중요하다. 실천을 강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차피 몸에 익어서 계획표가 없어도 머릿속에 계획을 그려놓고 생활할 수 있다.
출근을 안 하므로 생활리듬도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많이 늦어졌는데 이것은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은 회사 다닐 때와 유사하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밤에 일하는 게 집중이 잘 되긴 하지만 몸에 피로도가 높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 지금은 시간대를 많이 조정해서 회사 다닐 때와 비슷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출근 부담이 없으니 훨씬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다.
식사가 문제인데 혼자 먹을 수 있는 데도 만만치 않고 해서 처음엔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요리실력은 둘째치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돈은 절약되지만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데 드는 시간이 상당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하다가 가까운 곳에 구내식당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평일에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주말에는 반찬가게에서 만들어진 반찬을 사 먹는 것으로 바꾸었다.
시간이 훨씬 절약되었다. 사 먹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회사에 다닐 때도 어차피 만들어먹지는 않았으니까 차이는 없었다. 요리를 안 하니 일에 집중도 더 잘되었다. 요리하는 것도 체력이 드는 일이라 하고 나면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월간 시간표를 일단 짜두고 그것에 맞게 주간 시간표를 짜고 일간까지 맞춰서 만들었다. 처음엔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수정했다. 실제로 해보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오전 시간이 적당한 경우도 있고 오후에 해도 무방한 일이 있다. 그런 것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수정하면 된다.
퇴사 후 몇 달간 바쁘게 지낸 덕분에 계획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계획대로 한다고 해서 돈이 벌리는 것은 아니었다. 수입이 생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어쨌거나 한 발을 내디딘 건 잘했다.
돈 쓰는 문제는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닌데 회사를 다닐 때야 부담 없이 썼지만 잠시라도 쉴 때는 그럴 수 없다. 외모 가꾸는 비용부터 절감이 필요했다. 옷, 미용실 등에서도 절약이 되고 식사도 가능하면 싼 곳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회사 근처는 기본적으로 밥값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있다. 그러나 주택가에서는 싼 곳도 찾을 수 있었다.
계절마다 사야 하는 옷과 한 달에 한 번씩 가야 하는 미용실만 절약해도 상당한 돈이 절약되었고 회사 때문에 비싼 월세를 물며 살아야 했던 곳에서 떠나 임대료가 비교적 싼 곳으로 옮겼다. 이렇게 하면 분명 슬퍼야 하는 데 기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마치 창업하는 느낌으로 큰 희망을 안고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한숨 쉬면서 출근하고 한숨 쉬면서 퇴근하는 하루보다는 나은 하루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보니 내 예상은 맞았다. 몸과 마음이 내가 가장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항상 화가 나있고 가시가 돋쳐있었던 괴물 같은 나를 벗어버리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매일 야근하고 쫓기듯이 살다 보면 사람이 자꾸 좁아지고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화가 난 상태가 된다. 그게 내 삶이었다. 회사생활 10년 동안 적어도 6년은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매일 전화하는 부모님도 내 전화 목소리만 듣고서도 힘들다는 것을 아셨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광야에 나와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을 허락해주셨고 응원해 주셨다.
좀 늦은 나이지만 제2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내가 바라왔던 삶이...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