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하고 싶은 일 - 2. 취미 Part I -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다른 사람보다 취미가 좀 많은 편이다. 게다가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뭐든 배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어렵게 틈을 내서 여기저기 배우러 갔고 대표적인 것인 커피, 사진, 요리 등이었다. 쉴 시간도 부족한 데 이런 걸 했던 건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일단 수영부터 시작했다. 내가 못하지만 꼭 배워보고 싶은 것 세 가지가 운전, 수영, 피아노였다. 운전은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로 있을 때 배웠다. 직장 다니면서는 도저히 못 배웠을 것 같다. 만약 시간 여유가 있는 대학생들은 면허부터 따길 바란다. 회사에 들어가면 이런 걸 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
이 나이에 수영도 못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술인데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회사를 다닐 때도 수영 학원에 다니려고 시도했지만 잦은 야근과 시간적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다.
회사 다니며 수영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은 오전에만 가능했는데 대략 7시~8시였다. 그래야 끝나고 출근할 수 있었다. 수영을 하려면 오전 7시 전에 수영장에 와서 옷도 갈아입어야 하므로 6시 4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그러면 씻고 지하철 타는 시간을 감안해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대략 오전 5시 30분이어야 했다. 일주일에 3일만 하더라도 쉽지 않았다. 저녁시간은 퇴근시간이 보장되지 않아서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야근이 워낙 잦아서 그다음 날 수영 가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한 달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퇴사하고 나서는 8시~ 9시 시간에 수영을 등록했고 8개월간 수업에 참여했다. 4개 영법을 모두 익혔고 의외로 내가 물에서 잘 적응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어렸을 때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대는 회사원은 거의 없고 주부들과 일부 학생뿐이었다. 특히 남자들은 거의 없었는데 배우는 입장에서 다소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즐겁게 참여했다.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취미 중에 하나가 카메라 촬영인데 혼자 할 수 있고 여행과 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시작했다. 카메라 한대만 사서 시작했는데 회사생활이 바빠지니 그것도 시들해졌다. 사진도 찍고 짤막한 영상도 만들어서 집에서 편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 데 기회가 없었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찍어온 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묶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여행을 가서 사진을 많이 찍지만 그 엄청난 양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시 보기엔 양이 많아서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이걸 3분짜리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놓으니까 언제든지 그때 생각이 나면 꺼내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엔 동영상 편집도 쉬워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퇴사 후에 의욕적으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배우러 다녔다. 사진 강좌에 참석에 이론도 듣고 야외 촬영에도 참여했다.
모르고 찍는 것과 알고 찍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리고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론적으로 얼마나 아느냐보다 사진 찍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싼 카메라에 흠이라도 생길까 봐 조심스레 들고 다녔던 나였는데 그렇게 해서는 사진 촬영을 즐길 수 없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언제든지 찍을 수 있는 상태로 가방에도 넣지 말고 끼고 다녀야 한다고 배웠다.
사진 촬영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동영상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는데 기왕 배우는 것 거기까지 배워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이용한 동영상 촬영부터 카메라를 이용한 취미 촬영까지 강좌를 찾아다니며 수업을 들었다. 그러자 영화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구도와 앵글을 알고 보게 되면서 그전에 보이지 않던 감독의 의도나 스타일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취미이긴 해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추석에 고향에 갔을 때 부모님과 꽃이 핀 공원에 가서 찍은 사진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 방송을 거의 보지 않고 유튜브만 보게 되었는데 틀에 박힌 공중파에서 볼 수 없는 좋은 지식과 재미난 영상들이 많았다. 공중파에서도 보기 힘든 전문가들이 자기 채널을 개설해서 시간제한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니 굳이 공중파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채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까지나 취미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 애니메이션 리뷰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채널을 만들었는데 조회수는 별로 안 나왔지만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리뷰를 만들고 편집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가끔 밤늦게 까지 작업할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기 싫던 야근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하고 있었다. 이것이 자발적 동기의 힘이다.
-자발적 동기의 힘이란...-
퇴사 후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정해놓는데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내가 계획한 일이므로 저녁 6시까지 못하면 늦게까지 해도 억울한 게 없었다. 심지어 즐거울 정도였다. 하고 나면 뿌듯했다.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시키는 데로 하던 시절과는 달랐다. 요즘엔 평균 8시까지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당자라고 해도 상사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자기 일을 남의 일처럼 해야 할 때가 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개입하는 것을 좋아하는 상사를 만나면 나는 거의 수족일 뿐 실제 생각은 상사가 하고 나는 그냥 실행하는 로봇일 뿐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일을 왜 해야 되는 지를 알 수가 없다. 물어봐도 합리적인 이유는 들을 수 없다. 자기가 그렇게 해왔다거나 이해가 안 가는 자기만의 생각을 말한다. 그들이 실무를 했을 때와 내가 일을 하는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모든 환경이 변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인식 못한다.
지금은 훨씬 더 복잡해지고 규정도 많아져서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심지어 담당자인 내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일해야 할 때가 많다. 이쯤 되면 결과물이야 뻔하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부서장이 결정하고 담당자는 그냥 실무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담당자가 실무를 하고 의사결정에 실무자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되야한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과 보상도 같이 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윗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면 부서장이 담당자를 설득해야 한다. 보통은 실무자가 부서장을 설득하도록 되어있는데 부서장은 자존심 때문이라도 설득되지 않는다. 그게 실제 회사생활이다. 내 말이 다 맞다고 하면서도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한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상황이다. 무슨 현실적으로 할 수 없다던가 때가 아니라든가 이상한 이유를 내세운다.
실무를 가장 잘 아는 담당자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 옳은 결정일 리 없다. 물론 정치분야로 가면 조금 다르다. 정치적 결단이라는 것은 이성적, 합리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일반 회사의 업무를 말하는 것이다.
대개 망하는 기업들은 실무자들이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실무자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그렇게 된 경우가 많다. 담당자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물론 천재적인 경영자가 와서 그 카리스마에 모두가 따라간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그가 계속 성공만 한다면야 실무자가 무슨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경우는 드물고 영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작은 기업이 아니라 큰 기업으로 갈수록 의사결정은 합리적이고 상향식이 돼야 한다. 하향식이 효율은 좋지만 합리성은 떨어진다. 합리성 떨어지는 지시가 내려올 때 실무자는 괴로울 수밖에 없고 고급인재일수록 자괴감을 느낀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권한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좌절하는 것이다.
이것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근무환경인데 고급인재일수록 돈보다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데 가치를 둔다. 억대 연봉을 받아도 매일 상사가 집어던지는 서류를 줍고 10개가 넘는 화분에 물을 주다가 하나가 죽었다고 핀잔을 들어야 한다면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이런데 관심이나 가졌을까?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회사이다. 그런데 현장에 가면 다르다. 배운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는 부분도 배운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론이 틀려서 그런 게 아니고 현장은 항상 현장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설계를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공학을 배웠다. 어느 학교나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그런데 회사에 가서 일해보면 설계를 ‘시간 나면 하는 것’, ’ 잘하면 좋지만 최대한 단축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어느 회사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아예 설계를 건너뛰고 만들면서 설계하라는 식으로 지시하는 곳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마감시간을 던져주면서 ‘사람이 하는 게 안 되는 게 어디 있어?’라고 하는데 그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었다. 차라리 한 대 맞는 것보다 더 머리가 아팠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