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퇴사일기

퇴사하면 하고 싶은 일 1 -여행-

퇴사하면 하고 싶은 일 - 1. 여행 -

by 키르히아이스

퇴사의 유혹을 더욱 크게 느낄 때가 업무와 관련 없는 일에 관심이 생겼을 때이다. 그것이 취미일 수도 있고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회사라는 틀에 묶여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라면 퇴사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된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퇴사 후 하고 싶었던 일 베스트 5를 뽑아보고 그것을 실천했을 때의 느낌을 알려주고 싶다.


내 개인의 이야기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퇴사를 생각하면서 제일 궁금한 것이 퇴사 후 나는 어떻게 될까이다. 한 번도 퇴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계획 세운 것은 제대로 될까?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 있을까? 그런 의문점들은 아무리 퇴사 전에 생각해도 답이 없다. 그래서 먼저 퇴사한 내가 경험한 것들을 알려주고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산지석이라고 하지 않는가? 남의 경험이지만 실제 퇴사를 해보지 않고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는 그런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의 상황과 잘 맞추어서 대입해보기 바란다.


1. 여행


나는 퇴사하게 되면 꼭 여행을 가고 싶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퇴사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일 것이다. 여행이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준다는 차원에서 모두들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퇴사 후 긴 시간이 생긴 만큼 주로 해외여행을 고려할 텐데 나도 그랬다. 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보류했다. 회사 그만 두면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막상 그만두고 나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성격 탓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내 성격이 원래 뭘 마무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다른 일도 못하는 그런 성가신(?) 성격이다. 퇴사 후 다양한 일을 벌여놓았는데 그중에 궤도에 올라간 것이 없어 여행을 떠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세부일정을 다 짜 놓고도 실행을 미뤘다. 그렇지만 여행은 가서 좋은 것보다 가기 전의 설렘이 더 좋다고 하지 않는가? 꿈꾸던 여행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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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휴가기간에 엮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돈만 있다면 한 달도 갈 수 있고 시기도 여름 성수기가 아니라 봄이나 겨울에도 갈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이익이 되는데 비성수기 각종 숙박, 교통 요금이 싼 것을 물론이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 관광지를 한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기업 같은 경우 회사 전체가 한꺼번에 정해진 날 휴가를 가기 때문에 개인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크다. 가장 성수기일 때 표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들은 그나마 시기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지만 연속해서 갈 수 있는 휴가일이 길어야 3일 정도이다. 공공부문에서는 좀 더 자유로워서 일주일간 휴가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세월이 흘러 많이 좋아진 케이스이다. 지금 간부직급에 있는 사람들은 휴가 안 쓰고 일하는 게 미덕이었던 때 사람들이라 일주일 휴가 내겠다고 하면 결혼이라도 하는 줄 안다.


프랑스 같은 곳은 법정휴가가 5주나 된다고 하는데 그 정도 돼야 어디를 가든 제대로 보고 올 것 같다. 일 년에 얼마나 많이 쉬느냐도 중요하지만 연속으로 얼마나 쉴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내가 공공분야에서 일할 때는 일주일씩 여름휴가를 갔었는데 일본 정도는 몰라도 유럽으로 가기엔 다소 빡빡하다. 항공료도 비싼데 일주일이면 많아야 두세 나라 정도 볼 수 있는 시간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해외를 나가면 무조건 많이 보기 위해서 쉴틈 없이 돌아다니는데 내가 원하는 여행은 어디를 가든 현지 사람처럼 살아보고 그곳의 정수를 맞보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 이사를 가더라도 며칠 만에 그 동네를 아는 것이 불가능한데 하물며 여행으로 가서 몇 시간 만에 그 나라의 진짜 모습을 안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서 여러 나라, 여러 지역을 가는 게 아니라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완전히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을 계획했다. 직장인일 때 2박 3일 동안 홋카이도를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힐링 여행이었다. 일단 한국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가 왠지 자유를 느끼게 했다. 연예인도 아닌데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 편했다. 내 차림새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조심할 이유도 없었다.

IMG_1262.JPG 퇴사 전 삿포로 여행중 맥주박물관에서 마신 맥주. 보기보다 작은 잔인데 핑 돌던 생각이 난다. 자유 자체가 맛있었다

혼자라서 다소 심심한 감은 있었지만 맥주 한잔을 마셔도 짜릿한 여유의 맛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가 없다.

피 튀기는 전쟁터에서 휴가 나온 병사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퇴사 후 유럽여행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에서도 영국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오로지 영국만 가지고 보름간의 일정을 짰다. 영국은 의외로 자료가 없었는데 런던에 대해서는 문헌이 좀 있지만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실하고 직접 인터넷을 뒤져야 나오는 자료도 많았다.


보름 동안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서 웨일스, 스코틀랜드까지 가는 경로를 짜보았는데 웨일스, 스코틀랜드 자료는 별로 없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다른 책들도 구해서 15일 일정을 완성했고 비행기와 숙박만 정하면 되었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좋아해서 아스널 경기를 볼 수 있는 일정으로 해보았는데 8월부터 시즌이 시작이라 성수기와 겹쳤다.

Screenshot_2019_04_02_16_23_55.png 당시에 러프하게 짜놓은 영국여행 계획표, 시간은 확정되지 않아 기입하지 않았다.

정확히 일정을 맞추려면 9월로 넘어가야 했다. 이렇게 되면 각 여행지 성수기가 끝나서 행사, 축제 등이 같이 끝나버리므로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했는데 퇴사 후 준비하던 일도 자리 잡지 않았는데 첫 수익이 나면 가자는 생각으로 일단 여행 계획을 보류했다.


보통 사람들이 꿈꾸던 퇴사 후 장기간 해외여행의 현실은 이렇게 달랐다. 퇴사 후 이직이라면 그 기간 동안 어딜 가든 편한 마음이겠지만 퇴사 후 자기 힘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면 일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여행 가는 것이 마음 편하지가 않다. 지극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이것은 마인드의 문제보다 양심의 문제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성과가 보이기 전까지 여행을 갈 수 없었다.


영국 여행 계획안은 그대로 내 엑셀 파일 속에 있다. 영국에 가서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을 견학하고 마치 그곳 대학생인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금전적 문제로 유학을 가지 못했지만 항상 꿈은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이가 들더라도 해외에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


내가 미국에 잠시 갔을 때 어떤 대학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이 제일 부러웠다. 지금은 몇 달만 모으면 갈 수 있는 유학비를 그때는 왜 그렇게 마련하기 힘들었는지. 그런 아쉬움이 있어 영국에 가면 최고의 대학이라고 일컫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를 가보고 싶었다. 사전조사를 통해 역사와 건물 위치 등은 모두 파악해두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지금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떳떳한 마음이 들 때 여행 갈 생각이다. 회사에서 나온 것도 그런 날을 위한 것이다. 더 이상 회사에 묶여서 내가 진짜로 경험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긴 싫었다. 언제까지나 골방에서 회사 명함만 보고 만족할 수는 없다. 평생 가보기 힘든 나라들에 가보고 깨달음의 폭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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