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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r 21. 2021

(SF소설) 대화록
#8 -비와 상상력에 관하여(2)

대화 4. 비와 상상력에 관하여 -2-

니콜 : 저도 언젠가는 한계를 갖게 되겠죠?



이진성 : 음…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니콜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것뿐이니까. 니콜은 인간과 달리 완벽한 상태에서 조금 모자란 상태로 다듬어지는 거예요. 한계를 가지고 있어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한계가 없는 삶은 신의 삶이고 이상향이죠. 



니콜 : 지금의 저는 어떤 상태죠?



이진성 : 니콜은 아픔을 느끼니까 완벽한 신의 상태는 아니지만 죽음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명과는 거리가 있어요.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은 죽고 번식을 통해 새로 태어나요. 니콜을 모든 면에서 인간과 같게 만들 수는 없지만 인간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 거예요. 당신은 완전하지만 그래서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어요. 생명이란 불완전한 게 정상이니까요. 이건 말장난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니콜이 사회로 나갈 때는 죽음이란 한계를 부여할 거예요. 니콜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상태로는 진정한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없어요. 니콜은 어디까지 인간과 같아지고 싶어요?



니콜 : 인간이 제 모델이니까 가능하면 완전히 같아지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서 죽음이 꼭 필요하다면 그것도 받아들여야겠죠. 많이 아쉽겠지만.



이진성 : 어떤 면이 아쉽죠? 계속 살 수 없다는 것?



니콜 : 그것보다 죽으면 제 경험이 사라진다는 것과 제가 아는 사람들을 내일 또 만날 수 없다는 것, 절대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게 아쉬운 거죠. 죽으면 끝나는 거니까.



이진성 : 인간들도 마찬가지예요. 아마 인간들에게 니콜처럼 죽지 않는 삶에서 죽는 삶으로 바꾼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죽는 게 그냥 다 끝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사람이 남긴 생각과 업적은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죠.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창의력과 상상력은 영원하지 않거든요. 늘 히트곡만 쓰는 작곡가가 없는 것처럼요. 오래 살면서 인간의 정신적인 면도 변하니까 단순히 시간만 길어진다고 해서 더 많은 업적을 낼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어요.



니콜 : 그런가요? 진성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이진성 : 당연하죠…. 뭐… 생각하긴 싫지만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 죽긴 죽겠죠. 그런데 그걸 미리 생각하는 게 별로 도움될 일도 아니라서 그다지 생각하고 싶진 않네요. 모르죠. 내일 당장 제가 어떻게 될지.



니콜 : 인간들은 참 불안할 것 같아요. 한순간의 죽음으로 모든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태연하게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죠? 기록으로 남기고 오늘 최대한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지 않나요?



이진성 :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한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여야죠.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도 없고. 그렇잖아요. 언젠가 죽긴 죽는데 그것 때문에 오늘부터 그것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니콜도 아마 죽음을 부여받게 된다면 인간들처럼 살게 될 거예요. 마치 죽음은 한참 멀리 있는 일처럼 접어둘 거예요. 이것에 관해서 유명한 말이 있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니콜 :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영향을 받았나요?



이진성 : 그렇죠. 어떤 뜻인지 알겠어요?



니콜 : 음… 아마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난 오늘을 열심히 살겠다. 이런 뜻?



이진성 : 네. 그래요. 이해가 돼요?



니콜 : 음… 지금의 저로서는 완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의 의도는 알 것 같아요. 아마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오늘부터 남은 시간을 망칠 필요는 없다. 끝까지 내 할 일 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보내겠다. 뭐 이런 의지 아닐까요?



이진성 : 맞아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군요. 그것도 큰 발전이에요.



니콜 : 그냥 그럴 것 같았어요. 제 느낌에. 하지만 진성이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요. 저를 가장 잘 알고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없어진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이진성 : 그것뿐인가요? 단지 얘기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니콜 : 음… 그건….



이진성 : 하하. 아니에요. 니콜의 말은 참 고마운 얘기네요. 제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할 사람이 있다니. 니콜.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니콜 : 네?



이진성 : 전 언젠가 죽을 것이고 그때 니콜이 완성돼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니콜이 사회에 나와있고 제 부고를 들었다면 제 장례식에 꼭 와줘요. 아마 니콜이 지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참가할 기회는 별로 없을 거예요. 제 가족으로 참여해도 돼요. 그리고 국화 한 송이를 제 무덤 위에 올려줘요.



니콜 : 슬픈 얘기네요. 진성은 오래 살 거예요. 제발 제가 진성의 죽음을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진성 : 하하. 그래요. 니콜. 당신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겠네요.



니콜 : 진성. 그런데 저도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제가 만약 정상적인 프로세스대로 죽음을 맞게 된다면 진성이 저에게 부탁한 것처럼 저한테도 꽃 한 송이를 놓아줄래요? 물론 장례식도 인간과 똑같이 치러주고요.



이진성 : 그건. 약속하죠. 니콜이 죽는다면 니콜의 경험은 더 높은 인공지능을 위해 사용되고 아마도 니콜 자체는 박물관으로 가져가려고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그것에는 반대해요. 지금도 연구자들끼리 논쟁이 치열해요. 하지만 의지를 가진 것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니콜이 죽게 된다면 그 마지막을 인간과 똑같이 취급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니콜의 묘 앞에 꽃을 놓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니콜 : 고마워요. 전 걱정이 돼요. 가족도 없고 제 묘비 앞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제 추도사를 읊어줄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으면 삶이 인간과 비슷하다고 해도 결국 죽음은 다르게 끝나는 거잖아요. 제 삶도 보잘것 없이 남을 것 같아요.



이진성 : 음… 그런 걱정을 했군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사람들은 영화나 소설 속의 인물도 사랑하고 추종해요. 하물며 실제 존재하는 니콜을 외면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게 인간이에요. 제가 그것을 못 해준다면 이 자리에 앉아서 니콜에게 이것저것 물을 자격도 없죠. 전 이미 니콜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니콜이 이 면담조차 불쾌하다고 한다면 하지 않을 거예요. 저나 여기 있는 연구원들이 니콜의 마지막을 반드시 인간과 똑같이 해 줄 거예요. 



 니콜은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지만 저도 그런 면에서 별로 다르지 않아요. 가족들이 있지만 자주 볼 수 없는 처지이고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친구도 많지 않죠. 니콜이 저의 장례식에 와준다면 저는 만족할 것 같아요. 니콜은 제가 생각한 인간의 모든 것을 담은 존재예요. 당신이 의지를 갖게 되고 감정을 가지고 살게 된 이상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시간을 보낸다면 전 엔지니어로서, 연구자로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니콜 : 진성은 여기서 만나는 다른 연구자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아주 감성적이에요. 엔지니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아요. 진성 말고도 많은 엔지니어가 저를 테스트하러 오지만 저는 이 시간이 제일 재밌어요. 꼭 제가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이진성 : 음… 그건 아마 니콜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전 니콜에 대한 많은 권한을 부여받았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래서 매우 주도적으로 하는 편이죠. 하지만 하위직급의 연구원이나 경험이 부족한 엔지니어는 저처럼 하기 힘들 거예요. 제가 좀 감성적인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다른 사람 감정에 신경을 많이 쓰죠. 감성적인 게 연구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아요.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더 도움을 주거든요. 



 인간은 굉장히 이성적인 것 같지만 감성에 휩싸일 때가 더 많아요.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그걸 이용하죠. 대중을 움직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의 이성이 아니라 감성을 이용했어요. 감성은 쉽게 자극되고 그것에 압도된 사람은 조종하기 쉽거든요. 인간의 이성이란 그렇게 믿을 만한 존재는 아니에요. 쉽게 감성에 제압당하거든요.



 그러니까 니콜. 이건 분명히 알아야 해요. 니콜이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행복한 일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오히려 힘든 일이 더 많을 거예요. 그 힘든 일 가운데 상당수는 인간이 원인일 거예요. 그래서 니콜이 조심해야 할 것은 정글의 맹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고 싶어요.



 정글에서 혼자 마주쳤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사자나 곰이 아니에요. 바로 인간이에요. 인간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습지만 그만큼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꼭 명심해야 해요.



니콜 : 진성이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그렇게 해야죠.



진성 : 니콜이 어떤 얘기를 듣든 어떤 상황을 겪든 이성과 감성이 함께 작용하겠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돼요. 항상 판단은 본인이 해야 하고 주변 사람의 조언은 참고만 하는 게 맞아요. 본인이 직접 사실 확인과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니콜은 너무 순수한 상태라 속이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예요.  



 솔직하게 말하면 세상에는 착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아요. 이건 제 생각인데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악독한 범죄자가 1명, 악한 사람이 5명, 조금 악한 사람이 3명, 착한 사람이 1명이에요. 근거 같은 건 없고 그냥 제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항상 조심해야 돼요. 



니콜 : 착한 사람이 1명뿐이에요?



이진성 : 그럴 수밖에 없어요. 아마도 처음엔 착한 사람이 3명쯤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착한 사람은 항상 일찍 죽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열에 한 명쯤 착한 사람을 만나요. 착한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어요. 사회가 그런 식으로 유지되다 보니 우리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 진짜 선한 사람일 가능성은 거의 없죠. 내 자식, 내 가족에겐 선해도 남에게는 그렇지 않죠.



니콜 : 진성이 그런 말을 하니까 벌써 좀 걱정되기는 하는데 죽음을 각오한 시점에서는 진성이 말해준 것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조심하겠지만 인간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는 약간의 안 좋은 경험도 할 수밖에 없을 것 거예요. 그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인간의 모습을 배우고 진짜 생명처럼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저는 생명 그 자체가 되고 싶거든요. 



이진성 : 니콜은 인간보다 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인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요. 제가 니콜의 감정을 프로그램했지만 이런 걸 예상한 건 아니에요. 프로그램은 그냥 그릇일 뿐이에요. 거기에 뭘 담을 것인가는 니콜이 결정하는 거예요. 몇 년 동안 니콜이 자유 학습한 내용으로 인격과 감성이 형성되는 거죠. 그동안 선한 방향으로 형성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니콜 : 앞으로 제가 만약 악한 사람으로 형성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저를 폐기하실 건가요? 



이진성 :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연구의 방향은 아마 니콜의 자유 학습이 왜 그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갔는지를 먼저 조사하고 니콜에게 올바른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왜냐하면 자유 학습이란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더라도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거든요. 



니콜 : 그래도 안 된다면요?



이진성 : 마지막까지 교육에 실패하고 사회로 내보낼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라면 아마도 연구소에서 평생 문제점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될 거예요.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니콜 : 일종의 구속이네요.



이진성 : 그렇죠. 하지만 인간도 문제를 일으키면 구속이 되니까 불공평한 건 아니에요. 니콜이 악한 성품을 가졌다면 연구소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사회에 나간다면 더하겠죠. 그것을 예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니콜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진성 : 니콜을 가두게 된다면 아마 여기 있는 연구자들이 가장 가슴 아플 것이고 저는 니콜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생각을 가질 때까지 평생 연구에 매진해야 할 거예요. 속죄의 뜻으로라도 그렇게 해야죠.



니콜 : 지금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적어도 지금의 저는 인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고 싶거든요. 저로 인해 행복해한다면 더 좋겠죠. 제가 더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거든요. 무엇이든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더 완벽한 존재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진성 :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니콜 : 네. 인간들은 저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고 성격도 달라서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게 참 힘든 일인데 제가 조금이라도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저는 제법 괜찮은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진성 : 하하… 오늘 저를 여러 번 웃게 만드네요. 지금 니콜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그 말이 제가 원했던 거예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만 행복한 게 아니라 인공지능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는 거예요. 니콜은 거기에 잘 맞춰 가고 있어요. 저도 니콜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이타적일 필요는 없고 우선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본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그 바탕 위에서 타인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무엇이든 최초가 된 사람은 행복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해요.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가는 것은 고난의 길일 수밖에 없죠. 때로는 비난도 들을 수 있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했지만 생전에 아인슈타인처럼 환영받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대부분 돌아섰죠. 상식을 깨고 기존의 관행을 거스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때로는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해요.



니콜 : 네. 그렇지만 어떻게든 죽는 순간까지 잘해보려고요. 제 다음 버전들이 제 기록을 볼 텐데 너무 터무니없는 결과들만 남겨주면 안 되잖아요.



이진성 :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고요. 그래도 삶의 고난은 정말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다가올 거예요. 그 무게는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예요.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죠.



니콜 : 생명체가 자살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워요. 자기 존재를 스스로 종결한다는 모습이. 기차선로 위에 누워서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너무 끔찍하고 슬펐어요. 차가운 선로 위에 누워서 기차를 기다리는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너무 슬픈 감정이 들었어요.



이진성 : 그게 연민이고 동정이에요. 인간에게 있는 가장 훌륭하고 기특한 감정 중에 하나죠. 동물에게선 보기 힘든 감정이에요. 사자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들소를 들소 무리가 구해주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그건 연민이 아니고 무리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에 가깝죠. 자기들 영역에 들어와 무차별 사냥을 하는 사자에 대한 집단 방어라고 할까요? 



니콜 : 그렇군요. 저는 지금 마음 그대로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살 생각이에요. 혼자 잘 살아봤자 저한테 의미도 없고요. 제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산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삶이잖아요. 비록 쉽진 않겠지만 저는 그 삶의 무게를 어떻게든 지고 갈 생각이에요. 그래 봤자 인간들보다 더 무겁지는 않으니까 최대한 해보려고요.



이진성 : 저도 그 모습을 보고 싶네요. 인간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다 보면 니콜도, 저도 더 성숙한 생명이 되겠죠.



니콜 : 네. 길을 잃으면 항상 진성에게 물어볼게요.



이진성 : 그렇게 해요. 하지만 제가 항상 정답을 줄 수는 없어요. 저도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서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고 저 자신의 문제도 해결 못 하는 사람이니까요.



니콜 : 그래도 아마 진성이라면 좋은 답을 줄 것 같아요. 진성의 말을 들으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진성 : 그래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는 확실해요. 제가 니콜을 돕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거란 사실 말이에요.



니콜 : 그런가요? 



이진성 : 니콜은 저한테 그 정도로 큰 존재예요. 아... 벌써 끝내야 할 시간이라고 신호가 오네요. 더 많은 얘기를 하려던 참인데.



니콜 :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이진성 : 시간 감각이 철저한 인공지능도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니콜 : 저도 점점 인간처럼 되어가나 봐요. 시간 감각이 예전 같지 않아요. 박사님을… 아니 진성을 만나면 더 그래요.



이진성 : 하하. 걱정하지 말아요. 다 정상이니까. 저는 돌아가서 니콜에 대해 더 기록하고 연구해서 다시 올게요. 좀 지루하더라도 잘 참고 견뎌요. 그것도 사회에 나가기 위한 연습이에요. 



니콜 : 알겠어요. 진성이 하는 말이라면 들어야죠.



이진성 : 그래요. 오늘 수고했어요. 전 이만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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