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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r 24. 2021

(SF소설) 대화록 #11 -소풍-

[대화 6. 소풍

[2193년 6월 20일]



[대화 6. 소풍]



이진성 : 뭐 하고 있어요?



니콜 : 여기 신기한 게 많아서 보고 있었어요.



이진성 : 그래요? 어떤 게 신기해요?



니콜 : 이거 보세요. 어떻게 이렇게 작은 생명체가 있죠? 나비라고 하는 거 맞죠?



이진성 : 맞아요. 손 위에서 앉아 있네요. 



니콜 : 네.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요. 아까부터 앉아있었는데 저를 나무로 착각한 건지 제 손등 위에서 쉬고 있어요. 자연은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대단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인공지능조차 상상하기 힘든 조화가 있어요. 어떻게 저렇게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순환되는지 신기해요. 인간들은 자연을 만든 사람을 신이라고 부르겠지만 저는 왠지 진성처럼 또 다른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이진성 : 그래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창조론이란 것을 믿죠.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창조론보다 더 그럴듯한 설명을 하기 힘들어요. 과학자들은 물리학 이론을 얘기하지만 빅뱅이론이라는 것도 최초의 빅뱅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그 전에는 어떻게 세상이 움직였는지 설명하기 어렵거든요.



니콜 : 전 창조론이든 물리학이든 둘 다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은 완벽한 영구 순환구조예요. 영구기관은 없다는 게 과학계 이론이지만 자연은 영구적으로 순환되고 있어요. 태양에서 에너지를 받아 생명이 일어나고 그 생명들 간에 에너지가 순환되죠. 행성도 소멸과 탄생을 반복해요. 소멸된 것이 모여 다시 탄생하고 또 소멸하죠.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서 자란 작물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누군가 고민하지 않고는 이렇게 만들기 힘들 것 같아요. 



이진성 : 그런가요? 요즘엔 마더어스(Mother Earth) 기술을 이용해서 행성을 개척하니까 인간이 자연을 만든다는 얘기도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닌데 그런 인간도 우주에 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요. 이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우주가 커질수록 우리는 작은 존재가 되겠죠. 우리는 니콜이 열심히 연구해서 그런 것을 밝혀주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니콜 : 정말요? 제가 그럴 능력이 될까요?



이진성 : 우리들 인간의 삶이라고 해봐야 길어야 2백 년도 안 되는데 수십억 년의 신비를 밝히기엔  너무 짧은 생이죠. 선대의 의지가 후대에 계승돼서 과학이 이렇게 발전하긴 했지만 항상 시간의 벽에 부딪히고 있어요. 인생에서 정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4, 50년 정도랄까요. 요즘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서 훨씬 쉽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요. 



 니콜이 도와준다면 훨씬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인공지능이 수천 년 바둑역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수를 만들어내듯이 과학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뭔가 새로운 관점에서 획기적인 발전이 필요한 시기라서. 시간과 집중력의 한계를 모두 뛰어넘어 연구하고 추리할 수 있는 게 인공지능이잖아요. 그런 면을 기대하는 거죠. 너무 부담 주진 않을게요. 지금은 그냥 보고 즐겨요.



니콜 : 네. 지금은 이 나비를 보는 데 집중할게요.



이진성 : 무슨 나비인지 알아요?



니콜 : 음… 학명은 papilio xuthus , Linnaeus, 한국말로 호랑나비예요. 



이진성 : 잘 알고 있네요. 



니콜 :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은 너무나 신기한 것 같아요.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거잖아요. 왜 처음부터 나비로 태어나지 않고 애벌레에서 나비가 될까? 이런 의문도 있어요.



이진성 : 자연엔 그런 일이 많아요. 잠자리는 물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체가 되면 물 밖에서 날아다니죠. 굼벵이도 나중에 장수풍뎅이가 되죠. 아마도 그게 생존 가능성을 더 높여주는 거겠죠. 자연에서 최대의 목표는 생존과 번식이니까요.



니콜 : 그러네요. 밖에 나와보니 너무 좋아요. 바람도 시원하고 날씨가 맑아서 구름과 태양이 다 잘 보여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에요. 박사님을 기다리는 동안 냄새도 맡았어요.



이진성 : 냄새? 무슨 냄새가 나요?



니콜 : 이게 자연의 냄새인지 모르겠는데 약간 축축한 흙냄새, 풀냄새 그런 게 나요.



이진성 : 그런가? 별다른 냄새가 나지는 않는데…. 처음 맡아보는 냄새라 그럴 수도 있어요.



니콜 : 혹시 제 감각 기관이 너무 예민한 건가요?



이진성 :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특별히 조절하지 않으면 인간과 거의 똑같은 수준일 거예요. 너무 예민하면 정신작용에 영향을 미쳐서 니콜이 힘들어지거든요. 혹시라도 그런 시도는 하지 말아요. 더 예민해지려는 그런 거요.



니콜 : 알겠어요. 진성은 항상 절 걱정하는군요.



이진성 : 원래 제 역할이니까요. 니콜하고 얘기하다 보면 니콜이 인간이 되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 보여요. 그래서 제가 더 도와주고 싶은 거예요. 



니콜 : 동양의 전설 같은 데 보면 귀신이나 동물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 제가 지금 그런 모습인 것 같아요.



이진성 : 하하. 환웅이거나 구미호일 수도 있죠.



니콜 : 구미호는 좀 나쁘긴 하지만 매력적인 것 같아요.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가진 그런 캐릭터잖아요. 



이진성 : 그렇죠. 유럽의 세이렌 전설과 비슷하죠. 예쁜 여성은 위험하다는 교훈은 전통적인 설화에 자주 나오는 소재예요. 아마도 쾌락을 죄악시하는 고대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해요. 남성에게 여성의 미모는 성적 유혹이거든요. 성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갖가지 규칙과 절제를 말했던 인간들의 역사를 비춰볼 때 이런 설화가 나온 것은 당연해요. 



니콜 : 찾아보니 그런 이론이 많이 있었네요. 위험한 만큼 매력도 큰 것 같아요. 평범한 것들보다 더 끌리는 뭔가가 있어요.



이진성 : 니콜에게 매력이라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니콜 : 처음엔 못 느꼈는데 저도 뭔가 선호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연구팀과 테스트를 했는데 옷은 원피스 종류, 구두는 플랫슈즈, 머리 스타일은 뒤로 살짝 묶은 타입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왔어요. 온종일 테스트하다 보니 지루해서 마지막엔 아무거나 고를 정도였지만 저에 대해 알 수 있는 테스트였어요.



이진성 : 그랬군요. 니콜도 어떤 것을 특히 더 좋아하는 게 당연하죠. 사실 인간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개인의 특성이고 본능적인 것도 있거든요. 우리가 니콜을 설계할 때 모든 것을 다 지정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니콜의 모든 특성을 우리가 안다면 이미 인간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모르는 부분도 있어야죠. 어쩌면 그런 부분이 최대한 많아야 할지도 모르죠. 특히 정신세계에서 우리가 결정하는 부분은 최소화하고 시간이 가면서 형성되도록 만들었어요. 인간도 그렇거든요. 니콜이 지금까지 접해온 경험으로 니콜의 호불호가 생겨날 거예요.



니콜 : 진성은 물어보면 무엇이든 대답해주네요. 



이진성 : 니콜이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으면 대답 안 해주곤 못 배기겠거든요. 저도 마음이 약한 편이라서.



니콜 : 진성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진성과 같으면 좋겠지만 그런 느낌을 받는 인간들은 많지 않았어요. 물론 만나본 사람도 많지 않지만.



이진성 : 갑자기 이상한 얘기지만 잘 들어봐요. 꼭 주의해야 할 것을 알려줄게요. 어차피 이다음에 시내에도 가게 되고 혼자 사회생활도 하게 될 텐데 지금까지 학습해서 잘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의 호의에는 일단 의심을 해야 해요. 부탁이나 말을 거는 것도요. 이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항상 가르치는 거예요. 인간들이 사는 사회는 위험한 일이 많거든요. 그리고 절대 니콜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말해서도 안 돼요. 



니콜 :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제가 아직 사회에 대해 잘 모르니까 저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을 거란 말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진성이 인정해줄 때까지 누구도 안 믿을 거예요.



이진성 : 그래요. 일단은 그렇게 해요. 사람은 천천히 믿어가면 돼요. 인간의 신뢰는 그렇게 단기간에 쌓이는 게 아니거든요. 가장 믿을 수 있는 관계는 혈연이지만 니콜에겐 해당하지 않는 얘기고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것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하는 중요한 기술이에요. 데이터 구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예요.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주장들이 있거든요. 그중에 믿고 따라야 하는 것. 무시해야 하는 것. 그런 걸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사회에 나가게 되면 알려줄게요.



니콜 : 네. 어! 나비가 날아갔어요….



이진성 : 나비는 또 올 거예요.



니콜 : 제 손을 통해 나비의 생명을 느꼈어요. 나비도 심장이 있나 봐요. 제 손등을 두드리는 느낌이 났어요.



이진성 : 니콜은 아주 감성적이에요. 놀랄 만큼요. 재밌는 얘기가 있는데 동양에 장자라는 철학자가 있었어요. 어느 날 그가 잠이 들었는데 자신이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꿨죠. 그러다 꿈에서 깨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이냐 나비가 사람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어떻게 생각해요?



니콜 : 뭔가 멍하게 만드는 말이네요. 



이진성 : 멍하다고요? 니콜에게도 그런 느낌이 있어요? 



니콜 : 어떤 말이나 질문을 들었을 때 어디서부터 생각을 해야 할지 못 찾을 때 드는 느낌이에요. 진성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엔 나비 꿈일까 사람 꿈일까 생각하다가 양쪽 입장을 다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기게 돼요.



이진성 : 맞아요. 아주 묘한 이야기죠. 이것은 이야기의 앞과 뒤가 연결되어있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표류하게 만들어요. 나비 꿈을 꾸는 사람, 사람 꿈을 꾸는 나비…. 이렇게 계속 연결되죠. 철학이란 인간의 근본적인 부분을 파고들어서 깨달음을 주죠.



니콜 : 장자라는 사람은 대단하군요.



이진성 : 장자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수많은 철학자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사고를 했죠. 경험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동굴 속에 비친 그림자일 수도 있다고 했어요. 진짜 세계는 다른 곳에 있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오직 그림자 뿐이라서 실체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거죠. 장자의 이야기와 비슷하죠? 과학이론 중에 또 재미있는 게 있어요. 잘 들어봐요.



니콜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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