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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r 24. 2021

(SF소설) 대화록 #12 -소풍(2)-

대화 6. 소풍 -2-

이진성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도 진지한 철학 주제 중에 하나예요. 세상을 창조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창조한 것은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진화론에서는 우리가 한낱 단세포나 단백질 덩어리에서 시작했을 수 있다고 말해요. 인간이야 짧은 역사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을 우주로 확대하면 초기 우주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했을까 궁금해지죠. 어떤 이론도 확실하게 답할 수 없어요. 절대 신이 아니고는 참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죠.



니콜 :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어요. 



이진성 : 그렇죠? 이건 무한 퇴행이라는 철학 주제예요. 보통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질문 들이죠. 우리 생활과 크게 연관이 없으니까요. 상상력이 부족하면 알 수 없다고 밖에 답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상상력이 있는 사람은 무한히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 선뜻 답을 못하죠. 니콜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건 상상력이 있다는 뜻이에요. 



니콜 : 철학도 그렇고 과학도 그렇고 아주 깊은 세계가 있네요. 



이진성 : 창조론이란 것도 결국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신이라는 절대강자를 내세운 거예요.  뭐가 진실인지 인간은 알 수 없죠.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한낱 게임 속인지 아니면 어떤 동물의 세포 속인지도 모르죠. 



이진성 : 철학은 근원적 질문을 하는 건데 그러다 보니 과학과 깊은 연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대 철학자 중에는 과학을 같이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제가 철학자도 아닌데 니콜에게 설명을 해주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내 지식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그래도 이런 철학적인 얘기를 한건 아주 오랜만인데요. 옛날에 심리학 교수님과 이런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벌써 오래전 이야기네요.



니콜 : 인간의 학문에 관해 얘기하니까 흥미로워요. 진성처럼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조곤조곤 설명해주면 금방 이해할 것 같아요. 저는 아주 큰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 데이터일 뿐 그것을 조합한 지식은 아니니까요.



이진성 : 그 지식은 이제 쌓아가야죠. 니콜만의 지식을요.



니콜 : 네. 그러고 싶어요. 오늘 햇살도 좋은데 여기 탁자에 앉아서 있으니까 우리가 소풍 나온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랑 소풍을 가면 이런 느낌인가요?



이진성 : 맞아요. 보통은 샌드위치나 김밥 같은 것을 같이 먹죠. 가까운 사람과 같이 나와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사람들의 일상이에요.



니콜 : 우리는 먹을 게 없네요. 진성은 요리할 줄 알아요?



이진성 : 그럼요. 혼자 산 지 오래되었으니까. 자동 조리기구나 즉석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 쉴 때는 직접 해 먹어요. 니콜을 위해 준비한 게 있어요. 자 이 봉투를 뜯어봐요.



니콜 : 어… 이건… 김밥이잖아요.



이진성 : 니콜을 위해서 김밥 맛을 내는 인공 식품을 특별히 가져왔어요. 모양은 김밥과 완전히 같죠? 한번 입에 대봐요. 진짜보다는 못하지만 먹을만할 거예요.



니콜 : 무슨 맛일까 궁금하네요.



이진성 : 니콜은 실제 음식을 먹고 맛을 볼 수 있지만 음식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것은 일부예요. 대부분 에너지는 우리가 주입한 생체에너지로부터 얻게 될 거예요. 이것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마지막 통제수단이니까 니콜이 이해해줘요. 어쨌든 정기적으로 니콜이 연구소에서 에너지를 주입받으면 되니까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인데 아마도 좀 지나면 한 달에 한 번만 받으면 될 거예요. 



니콜 :  네. 알겠어요. 음… 이 맛은 약간 시큼하고 굉장히 여러 가지 맛이 나네요. 재료마다 다른 맛을 내고 있어요. 



이진성 : 그래요. 김밥은 원래 그런 맛이에요. 인공재료를 쓰긴 했지만 들어갈 건 다 들어갔어요.



니콜 : 밖에서 먹고 있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맛에는 심리적인 것도 작용을 하는 가 봐요.



이진성 : 사람들도 그래요.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음식을 더 즐길 수 있죠. 캠핑 같은 걸 가서 먹는 요리는 식당에서 먹는 것과 기분상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맛이야 정교하게 요리한 식당 요리가 더 맛있겠지만 캠핑지에서 직접 해 먹는 요리는 나름대로 마음속 허전함까지 채워주니까 색다른 맛이 있죠. 



 미각은 후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양한 냄새들이 자극하는 야외가 더 맛있을 수도 있어요. 니콜은 혹시 요리 같은 거 할 수 있겠어요? 물론 해본 적은 없겠지만.



니콜 : 음식을 만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꼭 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그 음식에 적합한 맛을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극단적인 맛만 내지 않으면 그래도 먹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진성 : 제가 보기엔 잘할 것 같은데요. 성격도 차분하고 손도 투박하지 않아서 조금만 배우면 금방 잘할 거예요.



니콜 : 제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말을 해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진성 : 그렇죠. 사실 음식을 만든 사람은 맛을 잘 못 느낄 수 있어요. 이미 음식 만들면서 냄새를 많이 맡았기 때문에. 하지만 누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 사람은 다르죠. 니콜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기 전에 내가 한번 먹어줄게요. 그렇게 연습해야 진짜 맛있는 것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니콜 :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죠.



이진성 : 좀 더 먹어요.



니콜 : 네. 아 참. 저기 하늘 위에 하얗게 보이는 게 구름이죠?



이진성 : 맞아요. 니콜은 처음 보는 건가요?



니콜 : 창문으로 많이 봤어요. 밖에서 보니까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너무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꼭 담배 연기 같기도 하고 솜뭉치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진성 : 그런 표현은 어디서 본 거예요? 사람들도 그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니콜 : 본 것은 아니고 비슷한 것을 생각해봤어요. 



이진성 : 이제 니콜의 언어 구사력은 인간과 큰 차이가 없어요. 아마 밖에서 보면 누구도 니콜에 대해 차이점을 못 느낄 거예요.



니콜 : 그래도 걱정돼요. 누군가 저한테 이상한 점을 느낄까 봐요.



이진성 : 그런 마음을 가지면 평범하게 사람들을 대하기 힘들어요. 당당하게 생각해요. 누가 봐도 니콜은 평범한 인간이니까.



니콜 : 알겠어요.



이진성 : 얼마 전에 결정된 건데 니콜 하고 대화한 내용이 기대 이상이어서 외부 활동을 좀 당기기로 했어요.



니콜 : 정말요? 진성이 옆에 있어서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이진성 : 이 과정이 끝날 때쯤엔 니콜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엔 저랑 같이 하다가 나중에 완전히 니콜 혼자 경험하는 방식으로 갈 거예요.



니콜 : 진성이 곤란하지 않도록 잘할게요. 



이진성 : 그냥 생각나는 대로 행동해도 돼요. 자연스럽게. 그게 우리가 원하는 거예요.



니콜 : 막상 밖에 나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이렇게 걱정이 많이 되는 건 정상인가요? 너무 경우의 수를 많이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이진성 : 우리가 조사해보니 니콜의 성격은 약간 내성적인 편이었어요. 교육하는 동안 니콜이 스스로 그런 방향을 선택한 것인데 아마도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그런 성격이어서 그걸 배웠나 봐요. 인간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니콜은 부모가 없으니 교육해준 사람을 많이 닮겠죠. 데이터가 없는 초창기에는 성격도 행동도 모방으로 채우게 마련이에요. 그게 정상이고요.



니콜 :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문제점들을 먼저 생각하게 돼요. 조심성을 늘 강조받았거든요. 



이진성 : 그건 당연해요. 니콜은 유일하게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이니까 다치기라도 하면 우리도 난처해요. 몸이든 마음이든 상처가 생기면 우리는 또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니까요. 자유롭게 하되 웬만하면 조심해서 행동해요.



니콜 : 멋대로 하진 않을 거예요. 역사 속에서 인간들은 참 극단적인 행동을 많이 했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요. 전쟁을 일으키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이나 배신을 하는 그런 짓은 안 해요.



이진성 :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니콜이 인간보다 나은 거예요. 무조건 안 하는 것보다 상황을 잘 생각해서 피해받는 사람이 없게 행동해야겠죠. 백색 거짓말이란 말도 있잖아요. 누구도 다치지 않게 선의로 하는 것은 괜찮아요. 물론 그것을 구별하기 힘들다면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낫겠지만요.



니콜 : 선의의 거짓말은 아직 모르겠어요. 나중에라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구분을 못 하겠어요. 



이진성 : 살면서 그런 상황을 겪으면 알게 될 거예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와요. 어떤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남을 속이는 것은 나쁜 짓이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적절히 할 필요도 있죠. 특히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라면 더욱. 



니콜 : 네… 바람이 많이 부네요. 탁자가 덜컹거려요. 바깥은 거칠군요.



이진성 : 이 정도는 약과예요. 비도 오고 눈도 오고 심지어 우박도 내리니까.



니콜 : 백과사전에서 본 적이 있어요. 바람이 불 때마다 진성의 머리칼이 날려요. 저도 그렇고요.



이진성 : 오늘 니콜 머리 스타일이 자연스럽고 예쁜데요.



니콜 : 어때요? 제가 좋아하는 모델을 따라 했어요. 



이진성 : 패션 감각이 있네요. 



니콜 : 연구소 복장보다 불편하지만 예쁘다는 생각은 들어요. 예쁜 건 기분 좋은 일이네요.



이진성 :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있죠. 아름다움은 더 완벽해진다는 느낌을 주거든요. 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죠. 보통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자기만족에 관한 것이 더 커요. 니콜도 그런 감정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 아마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예요.



 벌써 헤어져야 할 시간인데 니콜은 좀 더 남아서 자연을 즐기다가 들어가요. 연구원들에게 말해놓을게요. 오늘 니콜의 다른 면을 많이 본 것 같아요. 패션도 그렇고 식성도 그렇고.



니콜 : 창조주와 만날 수 있는 특권은 이 세상의 어떤 생물도 가지지 않은 거잖아요. 그래서 전 저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이 항상 기다려져요. 아까 날아갔던 나비가 다시 왔으면 좋겠어요. 나비랑 뭔가 의사소통을 해보려고요.



이진성 : 하하.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몰라요. 동물들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요. 아마도 니콜에게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있겠죠. 그 시간을 천천히 경험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봐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성숙한 니콜이 되어있을 거예요.



니콜 : 네.  



이진성 : 그래요. 잘 지내고요. 또 봐요.



니콜 : 네. 진성.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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