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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Apr 30. 2023

주 52시간, 69시간 둘 다 틀렸다 -1-

 최근 주 69시간 근무제로 인한 논쟁이 뜨겁다. 도대체 주당 몇 시간 일을 해야 맞는 것인지 찬반 양측이 극한대립하고 있는데 정작 본질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럼 본질적인 사안은 무엇인가? 바로 현재 주 52시간제는 지켜지고 있는가이다. 주 52시간제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  69시간은 논할 필요도 없다. 


 주 52시간제는 지켜지고 있나?


 나는 주 52시간제도 안 지켜지고 있다고 본다. 민간은 물론이고 공공 쪽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문화나 인력구조등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 법만 개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안 지켜지는데 52시간이든 69시간이든 노동자에게 무슨 상관이냐는 얘기다.


 자 그럼 현 상황에 대해 먼저 진단해 보자.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후 우리 삶은 어떤가? 정말 주 52시간 일하고 있는가? 삶은 좀 나아졌는가? 자료가 있나 해서 찾아봤더니 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22년 내놓은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가 있었다. 여기 보면 전체 평균 계약상 일하는 시간은 39.80시간, 실제 일하는 시간은 40.81시간이었다. 계층을 막론하고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근무시간이 적다고?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연차 사용률을 보니 평균 17.03일을 연차로 받았고 이중 11.63일을 사용한 것(사용률:68.3%)으로 나왔다. 약 5일 정도를 못쓴 것으로 나오는데 주변에서 듣고 체감하는 것과 너무 다른 얘기라 믿기가 어려웠다. 좀 이상해서 다른 자료를 찾아보았다. 고용노동부에서 나온 2021년 일 가정 양립실태조사가 있었다. 여기는 보육관점의 조사이기 때문에 세세한 자료는 없는데 퇴근 후 연장근로에 대해 거의 없다가 46.6%, 바쁠 때만 한다가 40.3%. 휴일근로는 거의 없다가 78.1%였다. 연차사용률은 58.7%로 나왔다. 


 여기서도 그렇게 나쁜 수치는 아니었다. 이게 진짜일까? 

 두 여론조사 모두 아주 나쁜 수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난 이 조사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계약직이나 육체노동 근로자등 시간당 수당을 받는 근로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과근무가 많은 직종은 사무직, 연구직등 노조가 약하고 근무시간을 측정하지 않는 곳이다. 거기에 50인 미만의 소규모 회사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 사람들만 조사했을 때는 다를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들은 초과근무를 일종의 수당으로 생각해 매달 10시간 이상 초과근무하는 게 관습처럼 굳어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공공기관 근로시간이 평균 주 40.96시간으로 나와있는데 납득이 되질 않는다. 생산직들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잔업과 야근, 특근등을 하기도 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건 아마도 지나치게 많은 직종이 섞여있기 때문 일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초과근무가 많을 것 같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이런 곳은 대부분 근무시간을 측정한다. 사무직들은 근무시간을 측정하지 않기 때문에 초과근무를 밥먹듯이 해도 항의할 수가 없다. 소위 건설근로자만 해도 일찍 출근하긴 해도 칼같이 근무를 끝낸다. 가끔 초과근무할 때마다 역시 칼같이 수당을 받는다. 사무직은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도 없다.


 앞의 조사와 상반되는 조사가 하나 나왔는데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에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한 결과이다(출처: 글로벌경제신문, 20230402, https://www.g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2168). 여기서는 초과근무를 하느냐는 물음에 50.9%가 한다고 했다. 초과 근무시간은 주 6시간 미만이 53.2%, 주 6시간 초과 12시간 이하도 33.2%나 되었다. 초과근무수당을 못 받는다는 응답이 58.7%나 되었다.

 정부의 조사와 시민단체의 조사가 왜 이렇게 차이를 보일까. 여기서 가장 심각한 건 근무시간보다 초과근무를 하고도 수당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 한 것이 더 과학적 기법이겠지만 현실에 가까운 것은 시민단체의 조사이다. 나는 현실이 이 조사결과보다도 훨씬 심각하다고 본다. 이걸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여론조사보다는 직접 무작위로 샘플링하는 것이 낫다. 즉 서울시내 등록된 기업 중에서 아무 곳이나 저녁에 찾아가서 초과근무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6시 이후 강남 한 복판에 가서 빌딩들을 보라. 불 꺼진 곳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주 52시간제부터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급하게 추진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동시간은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게 맞고 칼퇴근이 노동부의 목표가 돼야 한다. 나는 칼퇴근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밤샘근무에 시달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억지로 시키면 꼼수만 늘지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직들은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데 갑자기 52시간만 근무하라고 하면 이게 될까?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이다. 억지로 근무시간 단축을 강요하면 일은 숨어서 하고 야근 수당만 못 받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낡은 직장문화, 경직된 조직구조, 경영진의 낡은 사고 때문이다. 이걸 같이 해결해야 한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노동시간이 줄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

 1. 낡은 직장문화

 낡은 직장문화는 수직적인 위계구조를 말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윗사람 눈치를 보거나 잘 보이기 위해서 앞다투어 근무시간을 늘린다. 내가 그럴 생각이 없어도 직장동료가 늦게 퇴근하면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나도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럴 때 직장상사가 따끔하게 지적하고 잔업하는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분위기를 잡아줘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부서장 본인들부터 퇴근을 하지 않는 데다가 빨리빨리만 요구한다. 


 오늘 못 마친 업무는 내일 한다가 아니라 안 끝났는데 왜 집에 가냐는 식이다. 이러면 날 새고 밤새는 문화가 사라질 수 없다. 예전에 내가 3개월짜리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시작한 지 1, 2주 된 날 퇴근시간에 나가려고 일어나자 직장상사가 왜 집에 가냐고 물었다.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일은 어차피 3개월 내내 할 것이고 오늘 아니라 내일까지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내일이 마감이라면 몰라도 오늘부터 야근해야 될 이유가 뭔가. 그 상사의 논리대로면 3개월 내내 야근을 해야 한다. 불행히도 이게 현실이다. 


주 52시간제라고 해도 야근 기록 안 하고 자발적 야근의 모양새를 갖추면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주 69시간제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 같다. 어차피 일할 거 가짜 서류 만들지 말고 수당이라도 받자는 것이다. 근데 이것도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수당 받으면서 일하는 것도 눈치 보이긴 마찬가지이다. 공짜 야근을 해야 충성스러운 직원으로 인정받는 게 현실이다. 팀장한테 잘 보여야 하는 현실에서 칼퇴근이란 있을 수 없다.


 요즘엔 수평적 조직을 위해 직함을 없애는 게 유행인데 그래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어차피 팀장 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진짜 수평적인 조직은 한번 팀장이 되면 계속 팀장인 게 아니라 어떨 때는 팀장이었다가 어떨 때는 팀원도 될 수 있는 그런 조직이어야 한다. 물론 팀장이 되기 위한 자격은 갖춘 상태에서 말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는 모두가 리더의 눈치만 보고 있다. 여기서 자기 권리를 희생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래서는 어떤 법을 만들어도 될 리가 없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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