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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Jul 15. 2023

당신의 회사는 상향식입니까 하향식입니까?

 예전에 회사에서 팀원들과 티타임을 하던 중 상향식 구조가 좋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팀장이 나한테 우리 팀은 상향식이냐 하향식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고함을 들었던 나로서는 당연히 하향식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독재라고 말하고 싶은걸 많이 순화해서 말한 것이었다. 팀장의 표정은 차갑게 변했고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회사와 안 맞는 놈이었던 것 같다. 거기서 “당연히 상향식이죠. 팀장님은 우리 모두의 의견을 잘 들어주시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주십니다.”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몰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팀장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너무 확실하게 보였다. 그래서 더 그 말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뻔히 하향식으로 제왕적 팀장질을 하고 있으면서 말은 상향식이란 걸 듣고 싶다니. 나는 철없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도저히 그가 원하는 소리를 해줄 수가 없었다. 물론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직원도 있었다. 알아서 기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래도 난 도저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여러분의 회사는 어떤가? 상향식인가 하향식인가? 우리나라 많은 회사들이 대외적으로 상향식, 수평화된 구조를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를 보면 다르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 팀장과 팀원이 서로 다리 꼬고 토론하기란 무척 어렵다. 나는 예전에 술자리에서 잠시 팔짱을 끼었다가 건방지다며 한소리 들었던 적도 있었다. 


 많은 회사들이 상향식을 주장하고 직급파괴를 하며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한다. 그러나 여기엔 핵심이 빠져있다. 바로 누가 평가를 하느냐이다. 만약 팀장이 평가를 한다면 아무리 직급이 없다한들 수직구조는 바꾸기 어렵다. 물론 팀장을 돌아가며 한다면 달라질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유교문화상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회사는 정해진 풀(Pool) 안에서 팀장이 정해지고 그들만의 리그가 유지된다. 그들은 아랫사람 눈치 봐야 할 이유도 없고 합리적일 필요도 없다. 그저 임원들에게 잘 보이고 아랫사람 쥐어짜서 성과만 내면 그만이다. 회사도 내심 이런 것을 원한다. 가끔 정말 성질은 개차반인데 쥐어짜는 걸 잘해서 부서장을 오래 하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 때문에 젊은 인재 몇 명이 나가도 회사는 꿈쩍도 안 한다. 애초에 회사가 퇴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점을 살펴보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게 왜 그럴까? 바로 하향식 구조 때문이고 더 근본적인 원인은 경직된 평가방식 때문이다. 이걸 깨기 위해 도입된 게 다면평가인데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상급자뿐만 아니라 동료, 하급자 심지어 다른 팀원까지 참여하는 개념이다.


이 제도는 이미 20년 전부터 도입되어 많은 기업에서 운영 중이다. 그런데 제대로 운영하는 곳보다는 생색만 내고 실질적인 근무평정은 부서장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면평가는 10%만 반영하고 90%를 상급자 평가로 반영한다면 다면평가는 희석되어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다면평가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편차가 크지 않다. 하지만 부서장은 다르다.


 왜 이걸 놓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상급자들이 기득권을 유지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부서장이 한 사람을 살리고 죽일 권한이 있어야 팀 내에서 지위가 확보된다. 논리나 실력으로 누를 생각은 못한다. 지금의 팀장세대는 대부분 586이나 근접한 세대일 텐데 이들은 현세대에 비하면 경쟁력이 없다. 물론 획일화할 순 없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교육 수준도 달라지니 대체로 그렇다. 그들은 이 권력마저 놓치게 되면 아예 말의 힘 자체가 사라진다. 

 이건 내가 실제로 많은 직장에서 봤던 사람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직장에서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X세대까지만 내려와도 이보다는 낫다. X세대는 낀 세대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본세대이다. IMF로 직격을 맞은 데다 위에는 586이 잔뜩 버티고 있어서 진급도 안 되는 세대다. 이들은 위에서는 짓눌리고 아래에서는 기어올라오는 형국에 몰려있다.


 권위적인 면은 그 윗세대보다는 덜한 편이다(물론 젊은 놈이 더 권위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이른바 학부세대로 넘어오면서 선후배 관계가 약해지고 개인화가 더 강해진 세대라 수직화된 유교문화의 마지막 세대라 볼 수 있다. X세대는 어떤 사안에 대해 아닌 걸 알면서도 윗세대에게 반발을 못한다. 그러면서 MZ세대에겐 기득권 주장을 못하고 반론제기도 받아준다. MZ세대는 X세대가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는 세대다. 


 아무튼 경제적, 사회적 구도로 볼 때 X세대는 낀세대로 윗세대 수발만 들다가 사라지고 586에서 MZ세대로 바로 중심축이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최근 MZ세대와 마찰이 더 큰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에서는 왜 소위 꼰대들의 기득권을 보장해 줄까? 


 이것은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수직적 구조에 의존한 업무방식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구조가 빨리빨리 결과를 얻고 일처리 자체가 쉽다. 그저 찍어 누르고 결과를 짜내면 되는 거지 차근차근 가르치고 합리적으로 분석해 결과를 내는 건 번거롭게 생각한다.


많은 회사를 다녀봤지만 대기업부터 공기업 할 것 없이 매뉴얼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는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업무 이론이나 규정을 마련해 놓은 경우는 있다. 그러나 실무는 이것과 다르다. 아침에 출근해서 무엇부터 해야 하고 고객응대는 어떻게 하고 회계처리는 어떻게 해야는지 개인 매뉴얼이 필요한데 이런 게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입사해서 매뉴얼만 보면 바로 업무처리를 할 수 있게 한 곳이 몇 곳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나는 보지 못했다. 

 대부분 회사는 이를 도제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바로 이 도제식 교육에서 수직적 문화는 강고해지고 가뜩이나 선후배, 기수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것은 하나의 관습이자 법칙이 되어버린다. 예전에 나는 다른 팀으로 발령 난 사람을 대신해 업무를 맡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발령되어 가서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하는데 나를 가르쳐줄 상황이 아니었다. 업무를 인수인계할 시간은 따로 배정하지 않는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나는 전임자의 문서를 받았지만 문서만 보고 업무를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빠진 것도 많았고 애초에 수많은 문서 중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정말 개고생 끝에 거의 독학으로 업무를 파악했지만 행정적인 건 그렇다 쳐도 업무의 히스토리까지는 내가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전임자에게 물어보면 그는 귀찮다는 듯 문서 줬으니까 보면 된다고 말만 한다. 이게 그 전임자의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도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나한테 업무를 가르쳐주면 딴일한다고 그 부서장에게 욕을 먹는다. 이게 한국식 업무처리다.


 하향식은 이렇게 위에서 지시만 하고 같이 고민하거나 나누려고 하지 않는 문화도 포함한다. 여러분의 회사는 상향식인가 하향식인가? 상향식은 어떤 걸 말하는 걸까? 상향식이 되기 위해서는 상급자와 하급자가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돼야 한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많은 회사들이 이미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아닌 경우가 많다.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테스트 방법이 있는데 바로 3의 법칙이다. 이건 내가 만든 건데 상급자와 어떤 사안을 말할 때 최소 3번 이상 티키타카(주고받는 것)가 가능한지이다. 다음 경우를 보자. 예를 드는 거니까 어느 의견이 맞냐는 생각하지 말자.

 1.

 팀장: 팀에서 카메라가 필요한데 DSLR로 하나 주문해.

 팀원: 네. 바로 주문하겠습니다. / 팀장님. 어차피 주문하실 거면 가볍고 성능 좋은 미러리스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여기까지가 1이다. 귄위적인 회사는 팀장의 의견이 곧 결론이므로 여기서 대화가 끝난다. 하지만 상향식회사에선 팀원이 자기 의견을 내고 다음 대화로 이어진다.


  2.

 팀장: 그래도 카메라 하면 DSLR 아니야? 미러리스는 뭔가 느낌이 너무 차가워서.

 팀원: 팀장님 말씀이니 따라야죠. / 제가 평소 사진에 관심이 있어서 사진기능사 자격증도 있는데 미러리스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사진상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장점이 더 많습니다. 


 2번에서는 팀장이 같은 말을 두 번 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걸 또 반박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상향식인가 하향식인가 판단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팀원이 팀장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사실상 논파하고 있다. 팀원이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지 않다. 하향식인 회사는 2번까지 오면 찍힌다고 보면 된다. 갈굼이 시작될 것이다. 


 3. 

 팀장: 그래? 그거 한때 유행 아니야? 검증된 걸 써야지.

 팀원: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 지금 제일 많이 팔리고 있고 큰 문제가 나온 것도 없습니다. 가격도 많이 싸졌고요. 


3번에서 팀원이 팀장을 거의 구석으로 몰고 있다. 팀장은 불확실한 논리로 3번 연속 고집을 세웠지만 계속 논파되면서 팀원이 전혀 배려하지 않고 논리로 깨고 있다.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고 다방면에서 발생해야 상향식 회사다. 실제 업무에도 반영이 돼야 하는 건 물론이다.


 이 대화는 실제 내가 회사에서 겪은 대화중 일부를 각색한 것이다. 후배의 건의를 들었는데 솔직히 기분은 좀 나빴지만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근거가 확실하고 나보다 많이 아는 게 분명했으니까. 만약 나보다 윗세대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건의한 적이 있는데 2번에서 끊겼다. 3번까지 가려면 뭔가 논리적인 대화가 돼야 하는데 2번에서 이미 부서장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3번에 와서는 어깃장을 놓거나 화를 내니 대화가 아예 안 된다. 만약 3번 같은 상황이면 꼰대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그렇게 많이 알아?”

 “선배가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 해야지.”

 “그렇게 많이 알면 네가 하면 되겠네. 앞으로 사진 찍는 일은 다 네가 해.”


 후배가 나보다 뛰어난 건 물론 긴장해야 할 일이지만 회사를 위해 좋은 일이고 건강한 발전이다. 옛말에도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이 있다. 후배가 뛰어난 건 두렵지만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찰이 일어날 일이 없다. 그러나 하향식의 회사에선 후배의 건의를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후배가 잘나면 내가 밀릴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권위는 오로지 나의 권력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찍어 누르고 입을 막아버린다. 이게 하향식 회사의 전형이다.


 최근 모든 회사들이 상향식, 수평구조를 자랑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짜라고 본다. 진짜 상향식은 회장이나 간부들이 말하는 게 아니라 제일 밑의 직원들이 말해야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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