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 매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매각 가격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단돈 1만 루블(14만 원가량)이었습니다. 이 공장이 현재처럼 만들어지는데 투자된 금액은 4100억 원이었습니다(출처: 조선일보, 2023.12.20, https://www.chosun.com/economy/auto/2023/12/19/25VDWGTAQFEMPCMCCMFX6O6QG4/).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오해가 난무하고 있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1. 러시아 공장 가동이 중단된 이유는 한국과 러시아가 불편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게 가장 큰 오해인데 일부에서는 우리가 무기를 지원해서 푸틴에게 찍혀서 그렇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합니다. 푸틴에게 잘 보이는 게 그렇게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실도 아니라서 좀 더 조사해 보았습니다.
일단 우리나라는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고 헬맷이나 기타 보급품위주로 지원하였습니다. 포탄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포탄을 넘긴 곳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를 받아서 자기 창고를 채우고 원래 있던 포탄으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이죠.
이게 잘못되었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방산물자를 수출하지 말고 방산 수출사업을 접어야죠.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무슨 방산사업을 합니까. 그리고 이렇게 러시아 눈치를 보는데 유럽에서 누가 무기를 사주겠습니까. 우리나라와 방산 자웅을 겨루고 있는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공급하고 있죠.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 편을 들어서 러시아가 정부가 보복한 것 때문이 아닙니다. 실제로 가동 중단 시점을 보면 2022년 3월부터입니다(출처:연합뉴스, 2022.12.21, https://www.yna.co.kr/view/AKR20221221034500009). 2022년 2월 24일 전쟁이 터졌으니 전쟁 직후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포탄을 보내기 전인 건 물론이고 우리나라 정권이 바뀌기도 전이죠.
그럼 공장 가동이 중단된 이유는 뭘까요? 바로 부품공급 중단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후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은 러시아에 제재조치를 취했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이 수입되지 못했습니다. 공장과 사람이 있어도 부품이 없으면 공장은 돌아갈 수 없는 것이죠. 이것은 현대차의 의지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러시아에 잘하고 말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란 것이죠.
그런데도 일부 유튜버나 기자들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마치 러시아와 사이가 나빠져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중국만 좋은 일하고 현대차는 막대한 타격만 입었다?
실제로 현대차 공장을 인수한 아트파이낸스 측은 남아있는 자재로 곧바로 공장을 가동해 현대차를 생산하겠다고 나선 상태입니다(출처: 더구루, 2023.12.26, https://www.theguru.co.kr/news/article.html?no=64349). 인수한 측에서는 현대차 AS라인은 살아있으니 문제가 없습니다고 주장합니다.
서방기업들이 떠난 자리를 중국기업이 차지하고 독무대를 펼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 서방기업은 공장을 못 돌리는데 중국은 가능할까요? 중국은 실질적인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눈치 때문에 대놓고 러시아에 부품 수출은 못하지만 암암리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는 붙어있는 나라라서 밀무역도 가능하죠.
중국이 1위를 한다고 해도 그렇게 부러워할 일이 아닌 것이 2022년 러시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62만 대가량으로 전년대비 58% 이상 감소한 상태입니다(출처: 코트라 해외시장뉴스, 2023.02.28,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SITE_NO=3&MENU_ID=180&CONTENTS_NO=1&bbsGbn=243&bbsSn=243&pNttSn=200511). 이 정도면 말레이시아 정도 규모로 한국 자동차 시장(165만 대)의 37% 정도 수준입니다.
현대기아차가 러시아 시장에서 1위라서 엄청 많이 파는 것 같지만 현대차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3%에 불과합니다(출처: 연합인포맥스, 2022.03.17,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03939). 현대차만 따지면 2%입니다(출처: 한겨레, 2023.05.24, https://www.hani.co.kr/arti/economy/car/1093041.html). 여기서 2022년 58% 감소했다고 치면 현대기아차의 매출손해량은 거의 2%대였을 것입니다.
만약 한국이 모든 제재를 무시하고 러시아 시장을 붙잡았다고 치죠. 알량한 중립을 지킨다고 해도 대수로는 17만 대(2021년 현대차 점유율인 28.7%*62만 대)입니다. 17만 대 잡겠다고 나홀로 깃발을 들겠다는 것입니까?
미국과 유럽의 반발과 2차 제재는 상관없는 것인가요? 그게 아니더라도 현대차는 혼자 차를 만드는 게 아니고 그 안에는 유럽부품도 있을 것입니다. 유럽부품은 어떻게 러시아로 가져오겠다는 거죠? 유럽이 아예 한국으로 수출도 안 해버리면 전체 수출에 문제가 생기겠죠.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일입니다. EU가 나서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죠. 이런 상황인데 유럽의 안보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어떻게 유럽에 차를 팔겠다는 것입니까? 현대/기아차는 유럽에서 연간 100만 대 이상을 팔고 있습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걸 버리고 러시아 시장을 지킬 이유는 없죠.
중국은 고작 60만 대를 먹으면서 유럽에 낙인찍힌 상태입니다. 워낙 큰 나라라 서로 싸움을 피하고 있지만 중국의 이미지는 평화, 인류애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냥 전범국 러시아의 최대 지지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지금은 티가 안나도 장기적으로 중국브랜드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돈만 벌려고 하지 세계평화에는 관심이 없는 기업이 되었으니까요.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세계정세를 흔들어놓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힘을 빼고 동시에 러시아를 완전히 자기 밑으로 두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국에 개방하고 같이 사용하는데 합의했습니다(출처: KBS, 2023.05.1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77286). 러시아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중국은 한번 들어오면 잘 안 나가고 그곳을 중국화 시켜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물며 블라디보스토크는 베이징 조약으로 넘어간 원래 중국땅으로 지금은 협력이지만 중국이 압도적인 인구로 중국화 시켜버린 뒤 중국땅으로 선언하면 러시아가 되돌릴 길이 있을까요?
아무튼 중국은 국가적 이익에 의해 러시아 시장에 들어간 것입니다. 중국 기업은 중국국가의 하수인에 불과하니 국가정책에 따라 들어간 것이고요. 다 나가고 중국차만 남은 상황에서 선택권이 없으니 중국차들이 러시아 사람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할 일도 없습니다. 중국 기업끼리 경쟁하거나 담합하겠죠. 이것은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3. 러시아가 서방기업들의 자산을 팔아서 엄청난 전쟁자금을 얻게 된다?
이것도 정말 헛소리입니다. 서방기업들의 자산을 몰취한 액수가 얼마인지에 대한 집계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습니다. 유럽기업들의 손실액은 144조 정도로 추산되는데(아시아경제, 2023.08.07,https://www.asiae.co.kr/article/2023080709303188349) 이게 곧 자산의 액수는 아닙니다. 아마 수십 년간 투자한 액수를 모두 합산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냥 그동안 들어갔던 돈을 합치고 장부가와 더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걸 100% 인정한다고 치고 논리를 전개해 보겠습니다.
이게 이제 다 러시아 돈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산을 러시아 정부가 불하해 줄 텐데 살 사람은 모두 러시아기업일 것입니다. 물론 중국기업이 불하받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알토란 같은 자산을 외국기업에 줄 가능성은 높지 않고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적산을 불하받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는 것이 러시아 기업이 이 자산을 불하받더라도 안에서 돈이 도는 것이라 러시아가 벌어들인 돈은 없습니다. 이걸 외국에 팔 수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는데 그런 게 없습니다.
물론 공장을 다 뜯어서 중고로 내다 팔 수도 있겠으나 그러면 자산가치는 폭락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마저 지금은 암시장에서나 가능할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자산이 늘어난 게 전혀 없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게 없는데 어떻게 부자가 되죠? 아버지 돈이 내 돈이 된다고 해서 우리 가족 자산이 늘어난 게 될까요?
4. 서방기업 공장을 돌려서 똑같은 제품을 생산한다?
이것도 자본주의를 전혀 모르는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누가 저한테 현대차 공장만 덜렁 주면 제가 현대차를 생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직원들 월급 주느라 당장 파산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4만 원에 현대차를 인수한 측이 직원들 월급을 다 주면서 운영할 수 있을까요? 이미 현대차 판매망은 다 죽었을 텐데 누가 팔아주죠? 2022년 전쟁이 나고 공장생산을 중단하자 곧바로 현대차 판매량이 줄었는데 왜겠습니까? AS도 곧 철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누가 산단 말입니까?
러시아 정부나 재벌들이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국민들만 속이면 된다는 식입니다. 물론 그들 국민들이나 지식이 짧은 사람들은 그렇구나 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아는 사람에겐 씨도 안 먹힐 얘기입니다. 사업 철수한 회사 차를 누가 산단 말입니까? 지금 닛산이 한국에서 철수했는데 닛산 차를 사시겠습니까?
설사 AS가 된다고 해도 생산설비가 없으니 재고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부품 가격이 치솟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차 공장에는 약 7만 대를 생산할 재고가 있다는데 이걸 다 생산해서 판다고 해도 그다음엔 어쩔 것입니까? 연 23만 대 생산규모의 공장이니 불과 4개월 일감입니다. 다 팔면 2천 명이 넘는 직원들은 어떻게 될까요? 징집당하고 2천 명이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오늘만 눈속임하면 된다는 러시아 정부의 의지가 눈에 보입니다.
공장은 계속 감가상각되어 기술과 제품이 진부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최신화하고 있는 중국산만 살아남을 겁니다. 결국 불하받은 자산은 애물단지가 될 뿐입니다. 땅값이 그나마 남는 차액이겠지만 러시아에서 땅값이 그렇게 큰 가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정책의 최대승자는 푸틴 혼자이고 최대 피해자는 러시아 국민전체입니다. 푸틴도 단기적 승리일 뿐 장기적으로는 똑같이 망하는 길입니다. 물론 유럽과 미국이 바보같이 제재를 풀고 다시 거액을 들여 그 자산을 사준다면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냄비공장이나 양말공장은 주인이 없어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첨단 자동차 공장입니다. 주인 없이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간단한 논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조회수만 올리려고 하는 걸까요?
게다가 러시아는 징병으로 인해 생산인력이 급속히 감소할 것이고 전시경제로 사회 자본이 모두 전쟁에 집중될 것입니다. 공장을 돌리려고 해도 부품뿐만 아니라 사람도 없을 지경입니다. 일부공장들은 군용으로 전용도 예상됩니다. 안 그래도 러시아는 전차, 드론등 무기생산시설을 늘리고 있으며 최우선적으로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 여기서 자동차를 만든다고요?
현대는 잘 철수했고 좀 더 빨리 철수했었어야 했습니다. 크림반도 침공으로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했던 2014년하고는 경우가 다릅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왜 러시아를 떠날까요? 그것은 단순히 제재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업은 인류의 번영을 지향해야 하는 게 기본이고 그 번영에는 평화와 인간존중이 필수입니다. 이것이 러시아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데 거기서 제품을 몇 개 더 파는 게 소비자들에게 뭘 어필할 수 있을까요? 인간도 그렇지만 기업도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물건만 많이 팔면 장땡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기업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현대는 가장 늦게 철수함으로써 그만큼 철학이 빈곤함을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는 무엇을 위해 차를 팔고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기업인이라면 항상 그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