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서 출시한 새로운 야심작 비전프로가 정식 출시되었다. 출시하자마자 20만 개가 나갔고 유튜브에는 각종 사용기가 올라오고 있다. 여기서 무겁다, 앱이 적다, 기존 VR기기와 차별점이 없다는 둥 각종 부정적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는 애플 제품이 나올 때마다 늘 있어왔던 흠집내기여서 익숙하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국내 한 대기업이 휴대폰에 너무 많은 기능을 넣으면 고장이 잘 난다고 코웃음을 쳤었다. 그랬던 회사가 누구보다 스마트폰에 열심히 하는 걸보고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무슨 경영을 하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는 아이폰을 늘렸을 뿐인데 무슨 혁신이냐고 했고 맥북에어가 나왔을 때는 CD드라이브가 없어 불편하고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했었다. 애플워치가 나왔을 때는 앱이 적고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살필요가 있냐고 했다. 이번엔 비전프로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언제까지 반복해야 끝나는 것일까?
혁신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은 생활에 변혁을 가져다 주는가이다. 획기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자연적으로 좋아지는 개선이 아닌 개벽 수준의 개선이어야 한다.
우리가 휴대폰 통신에서 2G에서 3G로 갈 때는 혁명 같은 변화라고 느꼈지만 4G, 5G로 갈 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 5G라고 하지만 사실상 쓰는 곳이 없고 통신이 약한 곳은 3G도 잡힌다. 선형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선되는 기술발전은 혁신이 아니다. 즉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컴퓨터 CPU가 점점 빨라지고 메모리 용량이 늘어나는 건 혁신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문명은 다소 우여곡절은 있어도 우상향하게 되어있다. 길게 보면 뒤로 가는 것은 없다. 초창기 PC시장에서 286에서 486까지는 매우 혁신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멀티 코어가 들어가는 등 나름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 20, 30% 정도의 성능개선을 가지고 혁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혁신이란 이름을 함부로 쓰면 안 되고 생활의 변혁을 가져다주는 것에 써야 한다. 그런 면에서 비전프로는 확실한 혁신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공간 컴퓨팅으로 설명했는데 기자나 학자나 이걸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허공에 화면을 많이 띄울 수 있어 좋다는 수준이었다. 애플이 그거 하려고 12개의 카메라와 5개의 센서, 6개의 마이크를 달았겠는가? 그것도 7년이나 걸려서?
그게 아니다. 공간 컴퓨팅은 비전프로를 다른 VR기기와 확실한 구분을 짓는 요소이기도 한데 메타의 퀘스트3가 훨씬 싸고 다양한 앱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간 컴퓨팅은 나보고 이름 지으라고 했으면 3D컴퓨팅이라고 했을 것이다. 즉 지금까지 2차원 화면의 교감 없는 인터페이스에 익숙했던 사용자들에게 3차원 공간에서 교감하면서 컴퓨팅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점이 다른 VR기기나 안경형 AR기기와도 차별되는 점인데 무슨 얘기냐면 비전프로는 단순히 허공에 컴퓨터 화면을 띄우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인식한다. 내가 있는 사각형 방, 거기서 연결된 거실, 화장실, 밖으로 나가면 넓은 공터, 자동차 안. 이런 공간을 말이다. 메타 퀘스트도 공간을 인식은 하는데 이걸 활용은 거의 못하고 단순 영역(Area) 정도로 생각한다.
공간을 인식한다는 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구조를 인식해 두고 냉장고에는 냉장고 온도를 보여주게 만들 수 있다. 창문에는 오늘의 날씨, 텔레비전에는 편성표, 탁자에는 배달앱, 거실에는 거대 스크린, 작업실에는 작업용 화면을 띄워놓는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띄워놓는 게 아니라 포스트잇처럼 그 공간 고정해 두는 것이다.
다른 곳에 갔다가 오면 그 자리에 화면이 계속 띄워져 있다. 이건 공간을 인식해야가능한 기능이다. 아직은 어렵지만 기기들 간 통신만 가능해지면 모든 기기에서 디스플레이가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이건 혁신 정도가 아니라 혁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 되면 차에도 디스플레이가 필요 없어진다. 차에 타서 비전프로를 쓰는 순간 모든 디스플레이 창이 뜨기 때문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요즘 유행하는 대형 디스플레이 계기반이 필요 없고 옵션에 비싼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게 되면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에겐 사형선고 같은 일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교감까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벽을 인식하고 벽에 대고 스쿼시를 할 수 있다. 벽을 인식할 수 있다면 4면에 튕겨 반사되는 게 가능해지고 이걸 응용하면 집에서 당구도 칠 수 있다.
만들어진 화면 안에서 당구치는 게 아니라 우리 집 식탁에서 당구를 치는 것이다. 집에 있는 월패드가 필요 없어지고 밖에 나가면 길안내와 각 상점의 메뉴, 가격까지 들어가 보지 않고 알 수 있다. 이건 우리의 눈 안에 보조컴퓨터를 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이걸 다른 IT회사에서 못하는 이유는 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걸 하려면 많은 카메라와 센서 그리고 엄청난 연산력이 필요하다. 게임만 하겠다면 상관없지만 공간을 이용하고 싶다면 이런 장치들이 필요하다.
나는 싼 가격에도 메타 퀘스트의 실패를 예상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싸기 때문이다. 어떤 시장을 열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대량생산을 먼저 생각하고 싸게 내놓을 생각을 한다. 이게 고정관념이자 평범한 생각이다. 원래 어떤 제품을 만들려면 그것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첫 번째다. 싸게 만들려고 하니까 기능과 성능을 희생하고 결국에는 생색만 낸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소나무를 만들려다가 이쑤시개가 되었다고나 할까?
예전에 그러다 실패한 것들이 많았다. 컬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휴대폰이 나왔는데 저장할 수 있는 사진이 불과 10여 장이라든가 MP3폰인데 저장할 수 있는 곡수는 몇 개 안 된다든지 이런 거다.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OLED가 나왔을 때 그걸 전면에 내세운 제품을 출시하려고 했는데 최대 단점이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해결책을 썼냐면 모든 인터페이스를 흑백으로 만들었다. 이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OLED를 안 쓰면 안 썼지 그걸 한다고 모든 인터페이스를 희생시킨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이런 게 먹히는 게 기존 업계이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동안 애플에서 새로울 것도 없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채택해 대박을 터뜨렸다. 어떤 상품을 만들었을 때는 그것을 최대한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게 우선이지 싸게 만드는 게 우선이 아니다.
최대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가격이나 기능은 거기서 차츰 빼거나 개선해 나가면 된다. 이렇게 하면 고가 시장이 형성되고 돈 있는 사람들이나 얼리어답터가 먼저 쓰게 된다. 아마 이 단계에서 수익이 나진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 많은 기술들이 개발되고 그다음에 원가절감의 기회도 열리게 되는 것이다. 시장이 없으면 이런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테슬라는 모델 S부터 내놓고 전기차가 갈 수 있는 최고의 지향점을 먼저 선보였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고 비싸긴 하지만 최소한 돈값은 했다. 만약 테슬라가 모델 Y부터 내놓았다면 아무도 거들더 보지 않았을 것이고 불편한 데다 성능까지 안 되는 차를 왜 사야 되냐고 물었을 것이다.
메타는 굉장히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여러분에게 메타 퀘스트와 애플 비전프로를 줄 테니 어떤 것을 쓰겠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퀘스트를 가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바보 아닌가?
메타가 VR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런 상태로는 게임유저 말고는 VR을 할 사람이 없다. 애플은 휴대폰 시장과 시계시장에 접근할 때도 모두 컴퓨터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테슬라가 자동차 시장에 자동차를 컴퓨터로 보고 접근한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나 기존업체는 카테고리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삼성이 만들었던 옴니아는 휴대폰 관점에서 스마트폰을 만들다 보니 결국 스마트폰이 되지 못했고 지금도 많은 전기차들이 나오지만 차라는 카테고리에서 못 빠져나오니 테슬라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현대가 진짜 SDV(Software Defined Vehicle)을 실천하고 싶으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 자동차 안에서 다 돼야 한다. 슈퍼컴퓨터도 세계최대 규모로 확장하고 자체 AI도 개발하고 한국에서 가장 큰 데이터 센터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개발자가 부회장 정도 하고 있어야 된다. 그것도 안 하고 무슨 SDV인가?
카테고리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관점 자체를 이동해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
그리고 디자인을 한번 보라. 메타 퀘스트3와 비전프로. 싸다고 꼭 싼타나게 디자인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어떤 걸 쓰고 싶은가? 비전프로는 1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면에서 거의 완성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앞으로는 더 가볍고 얇게 변해서 약간 두꺼운 고글정도로 가게 될 것이다. 디자인에서 이미 승부가 나는 것이다. 벌써 밖에 비전프로를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위 간지가 나긴 한다. 메타 퀘스트3는 맹꽁이도 아니고 메뚜기도 아니고 이게 뭔가? 그냥 집에서 게임하는 용도 외 밖에 나가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다. 싸게 만들려고만 하니 싼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메타 퀘스트 프로는 조금 낫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헬멧느낌이 난다.
메타는 아무래도 하드웨어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보니 새로운 시장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고 경영학에서 배웠던 대량생산의 경제성만 생각한 것 같다. 이것이 꼭 메타만의 일은 아니고 대부분의 기성업체들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싸게 만들려고 원래 가려던 목적지의 1/3에 멈춰 서면 사람들은 그 제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시장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제 펼쳐질 공간컴퓨팅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2차원의 사고에서 벗어나 3차원으로 눈을 넓히면 엄청난 응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스탠드를 켜지 않고도 가상의 스탠드를 켜 특정 부분을 밝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도 빛이 각 공간에 반사되는 걸 자연스럽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고 누구인지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고 자동차만 봐도 모델과 스펙을 알려줄 수 있다.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면 진행상황과 분석을 경기장 안에 뿌려줄 수 있고 모르는 곳에 가더라도 지형과 지물을 이용해서 위치를 파악하고 길을 알려줄 수 있다.
예전에 터미네이터에서 봤던 시각보조 정보가 그대로 구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SF영화에서 수없이 봐왔음에도 막상 그 제품이 나왔는데 허공에 2차원 화면 띄우기나 하고 있고 뭐가 좋니 안 좋니 논하고 있다. 3차원을 줘도 2차원밖에 못쓰는 것인가?
이미 각종 응용 사례가 나오고 있는데 3차원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화면 띄우기는 핵심이 아니다. 아마 이 시장이 제대로 열린다면 디스플레이, 개인용 컴퓨터 같은 것은 멸종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라 컴퓨터가 시각을 갖게 된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공간인식이 나오고 공간 컴퓨팅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