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LG그룹의 반도체 인수 포기에 대해 아쉽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사실 SK그룹 내에서 반도체는 큰 시너지는 없다. 만약 지금 LG그룹 내에 반도체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가전과 함께 삼성과 라이벌로 맞설 수 있는 원투펀치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전경련에 대한 섭섭함이나 빼앗긴 계열사에 대한 여러 가지 고려로 인해 하이닉스 인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다소 감정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반도체가 급상승할 줄을 몰랐고 약간 거품이 빠지던 시기라 리스크도 없지 않았다. 리스크를 잘 감수하지 않는 LG그룹 특성상 그런 면도 있는데 냉정하게 생각하고 인수했어야 했다.
지나간 얘기는 접어두고 이제 현실 얘기를 해보자. LG전자는 휴대폰을 포기한 이후 가전(텔레비전포함)과 전장이 주력이라고 볼 수 있다. 반도체, 휴대폰, 전장, 가전까지 갖고 있는 삼성에 비해서 포트폴리오가 매우 약하다. 개인적으로 휴대폰을 포기한 부분은 아쉽다. LG전자 휴대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품성과 품질이었는데 전혀 개선의 기미가 없었다. 차라리 요즘처럼 풀스크린 터치 휴대폰으로 모든 휴대폰이 비슷해진 상황에서는 조금 경쟁력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삼성은 계속 아이폰을 벤치마킹하면서 아이폰을 닮아갔고 일체형 바디를 사용하면서 사실상 차이를 거의 없애다시피 했다. 그러나 LG전자는 특이한 기믹에 집착하면서 배터리 교환식이라던가 이중 디스플레이 같은 것들을 내놨다. 나중에 LG전자가 휴대폰으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다뤄보겠다.
아무튼 LG는 반도체를 해야 하는데 크게 3가지 이유를 들어보겠다.
1. 포트폴리오 차원
LG전자의 사업부는 전에도 말했는데 분할부터 잘못되어 있다.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 HE(Home Entertainment),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 BS(Business Solutions)로 구분되어 있는데 성격이 모호하고 중복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준도 일관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건 가전 하나뿐이다. 그나마 휴대폰이 있을 때는 두 가지 사업이 있었는데 그걸 없애고 나니 전장사업을 추가해도 크게 부각되는 브랜드가 없다. 삼성이 전장사업을 하만 인수로 한 것과는 대조되는 측면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 부분은 나중에 엘지그룹 경영분석 시간에 다뤄보자.
작년도 LG전자의 매출을 보면 84조 2,278억 원, 영업이익 3조 5,491억 원으로 나쁘지 않다.
사업부별로 가전(매출: 30조 1,395억, 영업이익: 2조 78억 원), 전장(10조 1,476억 원, 영업이익 1,334억 원), 홈엔터테인먼트(매출: 14조 2,328억 원, 영업이익 3,624억 원), B2B솔루션(매출: 5조 4,120억 원, 영업손실 417억 원)이다(출처: LG전자, https://live.lge.co.kr/2401-lg-2023-performance/)..
이 자료는 LG전자에서 공식 배포한 자료에 나와있는 금액을 쓴 것인데 좀 이상한 건 매출이 84조인데 사업부별 매출을 다 합해도 84조가 안된다. 거의 20조 원이 빠지는데 아마도 자회사 실적까지 포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이 지표만 봐도 대부분의 영업이익이 가전에 집중되어 있는 걸 알 수 있고 1조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낼 사업부가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홈페이지를 보면 사업을 Consumer Electronics(가전, TV), IT&Mobile Communications(휴대폰, 노트북), Device Solutions(반도체), R&D Center로 나누고 있다. R&D는 사업부가 아니니 빼고 보면 3개 부문이다. 그런데 여기 드러나지 않는 사업부가 전장이다. 하만을 주축으로 하는 전장사업만 매출이 14조 원대에 이르니 작은 사업부가 아니다. 사업부 구분은 삼성이 훨씬 잘되어있다. 이것만 봐도 사업을 잘하는 이유가 보인다. 사업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하고 각 사업부별로 매출구조도 뚜렷하다.
삼성과 엘지는 각 사업부가 1:1 대응되는데 모바일과 반도체만 엘지전자에 빠져있다. LG전자는 팔이 4개 달린 선수와 권투경기장에 올라가 있는 셈이다. 누가 이길지는 뻔하다. LG전자는 빨리 먹거리를 찾아서 삼성에 대응할 2개 사업부를 보강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사업이 반도체 사업이다.
여기서 하이닉스 수준의 매출 30조 정도를 확보한다면 추격의 발판을 만들 수 있다. 삼성 반도체의 매출을 약 60조 원대 많게는 90조 원대라고 본다면 절반인 45조 원대까지 맞추면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1/2 수준까지 노려볼 수 있다. 주가는 말할 것도 없다.
삼성의 경우 2023년 반도체가 죽을 쒔는데 그래도 LG전자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것은 휴대폰 사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지금 가전이 무너진다면 기댈 곳이 사실상 없다. 놀라울 정도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는 있는 가전사업이지만 전통적으로 이쪽 산업은 이익률이 낮고 경기도 많이 탄다. 또한 폭발적인 수요도 기대하기 힘들고 새로운 시장도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LG전자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고 가장 적합한 것은 반도체이다.
2. 유리한 점
반도체라고 하니까 좀 광범위한데 내가 볼 때 메모리 반도체로 나가기에는 좀 늦었다. 볼륨에서 삼성과 하이닉스를 뚫고 나가려면 또 치킨 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것은 시스템 반도체이다. 설계만 하는 펩리스를 할지 아니면 주문을 받아 생산만 해주는 파운드리를 할지는 고민이 필요한데 일단은 팹리스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다.
사실 사람들은 LG전자가 반도체에서 완전히 손을 뗀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LX그룹으로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LX세미콘이라는 디스플레이 칩을 주력으로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팹리스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자체공장도 짓고 있다. 그리고 LG반도체 시절 인력들 중 핵심이 남아 이곳에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전통이 LG전자 안에도 남아서 CTO 산하에 SIC(시스템반도체센터)라는 개발 조직도 있다. 이 조직에 대해서 LX그룹이 양도를 요청했지만 LG전자가 거절했다고 한다(출처: 디엘렉, 2022.02.07, https://www.thelec.kr/news/articleView.html?idxno=15920).
반도체는 극도의 노하우가 필요한 사업으로 이런 전통적인 핵심 인력과 조직이 중요하다. 실제로 LG전자는 여기서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설계)하고 있다. 이미 팹리스로 가는 기반은 갖고 있는 셈이다. 나는 엘지그룹에서 LX세미콘을 LX 쪽으로 넘겨준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계열 분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LG전자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체 팹리스 조직을 남겨두었던 것은 다행이다.
다만 LG전자는 내 바람과는 반대로 반도체 사업에 대한 열망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반도체 관련 회사인 LG실트론을 SK에 넘겼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반도체 생산사업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나 오너의 의지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유리한 환경에서 하지 않는 것은 경영 실책에 가깝다.
지금 전장사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 반도체 사업은 이것보다 훨씬 전망 좋고 성장성도 좋은 사업이라고 본다. 반도체 개발조직을 사업부로 개편해 팹리스로 추진하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기반이 전혀 없는 SK도 하는데 LG에서 못할 이유가 뭐겠는가? 게다가 반도체 사업을 일단 하면 LG전자 내부에서 구매할 곳이 많아서 시너지도 충분하다.
지금 LG전자에서 사들이는 반도체의 상당부문을 내부 생산으로 대체하면 그만큼 매출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갇히게 되는 것이다. 하이닉스 같은 경우 그룹 내 판매가 거의 어렵기 때문에 삼성전자에 비해 성장성이 매우 제약되고 있다.
사업기반도 있고 시너지도 있고 돈도 있다. 안 할 이유가 무엇인가?
3. 시대적 이유.
지금은 시대적으로도 반도체를 해야 하는 때이다. 바로 인공지능의 개화시기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개화시기에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했던 것처럼 인공지능의 개화시기엔 시스템 반도체가 필요하다. 벌써 OpenAI의 샘 알트만은 엔비디아의 독주를 볼 수 없다며 독자 반도체 개발/생산을 위해서 무려 9천조의 펀딩을 예고했다.
샘알트만이 보기에 앞으로의 반도체 수요는 그 정도를 투자하고도 남을 정도라는 것이다. LG전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여기에라도 올라탔으면 좋겠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시대의 최대 수혜를 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인공지능 시대를 엔비디아가 연 것도 아니고 시대에 잘 대응한 정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비트코인 채굴 때문에 GPU수요가 폭증해서 슈퍼사이클을 맞았고 그 뒤에 인공지능이 터지면서 또다시 슈퍼사이클이 왔다. 이중에 엔비디아가 직접 시작한 건 없다.
문제는 수학적 계산을 위한 칩에 엔비디아만큼 높은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드물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엔비디아의 독점기간이 오래가긴 힘들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엔비다아가 이 시장을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앞으로 인공지능 칩은 소프트웨어에 맞춰서 최적화되어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픽 칩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엔비디아가 인공지능을 위한 수학계산칩에 유리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칩을 최적화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회사가 직접 하는 게 유리하다. 엔비디아도 인공지능 솔루션을 갖고 있지만 사업을 가지고 있진 않다.
애플이 IOS에 M시리즈 칩을 최적화시켜 나가는 것이 좋은 예인데 인공지능 분야도 이렇게 변해갈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회사가 칩과 인공지능 모델을 다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애플은 앞으로 인공지능 모델 개발을 통해 자사칩과 최적화를 시도할 것이다. 이것이 곧 온디바이스 AI가 되는 것이다.
구글은 이미 자체 인공지능 칩인 TPU를 개발해놓고 있는데 다만 하드웨어 노하우가 부족한 지라 엔비디아의 성능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OpenAI는 앞서 말했듯이 자체 반도체 프로젝트를 대규모로 진행 중이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얼마 전 협력하기로 했다. 메타도 자체 개발칩인 아르테미스라는 칩을 개발해놓고 있다.
삼성이야 당연히 할 것이고 그렇다면 세계 주요 빅테크 업체들이 모두 인공지능 모델과 반도체 사업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LG전자만 소외되면 안 된다.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과 반도체 사업 중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인공지능 시대에 셋방살이 신세가 될 것이다. LG전자는 자체 인공지능 모델은 갖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문제는 이걸 서비스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가전을 통해 할 수는 있겠지만 가전에서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사용자와 활발한 교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고성능을 발휘할 여지가 적다.
이럴 때 휴대폰이 없다는 것이 뼈아프다. 나는 개인적으로 좀 새롭게 준비를 해서 다시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물론 인공지능폰으로 말이다.
삼성은 구글처럼 인공지능 모델을 단독으로 웹에서 서비스할 순 없지만 휴대폰이 있어서 그래도 활용여지가 있다. 휴대폰은 가전과 달리 사용자의 개인화가 되어있어서 빈번한 교감이 필요하다. LG전자만 길이 막혀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LG전자는 또 가전에 갇히게 된다. 시간은 고작해야 5년 이내라고 본다. 그 안에 LG전자는 인공지능 모델과 반도체 사업을 갖춰야 한다. 최소한 팹리스라도 만들어야 한다. 구글이나 메타도 반도체를 하는데 이미 해봤던 엘지가 못할 이유가 없다. 하면 더 잘할 것이다.
하나 더 요구한다면 그 인공지능을 쏟아부을 전방산업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삼성에겐 휴대폰이 있다. 엘지에겐 무엇이 있는가? 이런 문제까지 포함해서 준비해야 하고 일단 반도체를 사업을 통해 자체 인공지능칩을 개발하기 어려운 회사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한다. 엔비디아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에서 미처 칩을 공급받지 못하는 회사들에게 제2의 선택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엔비디아 칩이 좋아도 시장을 다 먹을 순 없다. 최소 2개 정도의 회사는 2, 3위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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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LG전자가 도약할 최고의 기회가 오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