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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Feb 18. 2019

30대 기업 경영진단 -신세계 1 -

신세계 그룹 1

 신세계 백화점은 원래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에서 출발해서 동화백화점을 거쳐 삼성에 인수되면서 신세계백화점이 되었다. 삼성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이명희 회장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워왔고 현재는 정용진 부회장이 그룹의 중심축이 되어 전체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 기업 중 CJ와 신세계의 행보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는데 과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할지 성장한다면 어느 정도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새한그룹, 한솔그룹 같은 경우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CJ, 신세계와 비교할 상황이 안된다. 그러고 보면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한국 같은 바람 잘날 없고 불확실성이 큰 나라에서는 기반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라 해도 경영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대우, 국제그룹 같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들도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는 것이 한국이다.


 특히나 정치적인 이유가 많이 개입한다는 것이 아직도 관 주도의 경제구조를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CJ와 신세계는 분리 후 본업에서 번 돈을 기업 확장에 많이 사용하였는데 분리 전보다 훨씬 더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본업보다 더 큰 부업을 가진 종합그룹으로 변신하였다. 각자 사업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놓아 앞으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백화점 사업을 중심으로 한 회사인데 나중에 이마트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할인점 부문에서 캐시카우를 갖추었다. 이제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된 할인점은 초반 박터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상위권 업체가 과점하는 분위기이다. 그 외 호텔, 건설 부문이 있고 기타 프랜차이즈 사업들이 있다. 사업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유통기업들이 호텔, 건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신세계도 그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선 주력인 백화점부문을 보겠다.


 이명희 회장의 딸인 정유경이 백화점 부문을 맡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녀의 경영능력은 두고 볼 일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정용진 회장에 대해서만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과연 백화점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2018년 3월 기준 백화점 시장점유율은 롯데, 신세계, 현대 순인데 롯데가 39.6, 신세계가 28.1%이다. (출처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8030910540980315, 아시아경제 2018.03.09일 자, “백화점 '빅 3' 시장 점유율 95%… 순위는 지각변동, 신세계 2위 탈환”) 

신세계 백화점 대구

 별다른 혁신 없이 1위를 따라잡기에는 차이가 많이 난다. 2, 3위 차이도 1% 내외로 사실상 공동 2위이다. 2위 싸움에 업치락 뒤치락하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히 피곤하다. 1위라면 충분히 출혈도 감수할 의미가 있는데 2위는 쟁취한다고 해도 그걸 자랑할 것도 아니고 뺏기자니 꼴찌로 쳐지는 느낌이라 그것도 불편하다. 


 예전에 휴대폰 시장을 놓고 LG전자가 이런 입장에 놓인 적이 있었다. 국내에서 2위, 해외에서는 3-4위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1위와 차이가 많이 나는 2위는 사실 방어에 더 주력하는 게 보통이다. 90년대까지는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기업이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1등이 다 가져가는 세상이 오다 보니 2위도 살기 힘들어졌다.


 지금 LG전자를 보면 나름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을 빼고 국내 메이커로는 2위인데 수익이 전혀 나지 않고 있다. 정보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정보 접근성의 평등화가 이뤄진 현대사회에서 어느 회사 제품이 1등인지 아는데 굳이 2위 기업의 제품을 사야 할 이유는 없다. 과거에는 몰라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수입제품이 별로 없어서 선택의 폭도 넓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같은 돈을 주면 당연히 1위 기업의 제품을 사는 게 맞고 그럼으로써 1위 제품은 더 많은 돈을 제품 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 1위의 힘은 더욱 강력해지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국내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완벽하게 규모의 경제를 이룬 현대자동차가 효율성을 높여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내놓자 2위, 3위 업체들이 따라가기 힘든 형국이 된 것이다. 현대 기업경제에서 2위는 의미가 날로 퇴색하고 있다. 1위만 살아남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은 변화가 심각한 업종은 아니다. 


 다만 최근에는 홈쇼핑, 인터넷 쇼핑 등이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오프라인 쇼핑의 파이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작아지는 파이를 들고 싸워야 하니 더욱 1위 업체만 유리한 형국이 유지되고 있다. 백화점 3사는 모두 규모의 경제는 이룬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파이가 작아지면 수익성 악화로 인해 3위 업체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살아남는 방법은 역시 혁신이다. 기업은 혁신하지 않으면 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그것이 시장의 법칙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추진한 신개념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는 성공작으로 평가해도 될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오프라인 매장에 가지 않는 고객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복합,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강화해 단순히 쇼핑하러 가는 게 아니라 가족이 나들이를 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B2C 사업을 가지고 있는 신세계로서는 아주 적합한 사업이다. 정부의 규제가 걸리긴 하지만 대세는 어쩔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신세계는 이런 면에서 롯데와 경쟁해볼 수 있는 구도를 갖추었다. 롯데와 신세계의 백화점 사업 1, 2위 차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사람들은 1위와 2위 차이를 가볍게 보지만 기업 내부로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 어떤 업종이든 2위는 2위 하는 이유가 있다. 2위가 1위를 하려면 아예 기본 틀을 바꿔야만 가능하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는 똑같은 게임이 계속될 뿐이다. 


 항상 90점을 맞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 학생이 만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더 공부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해서는 결국 한두 문제는 어디선가 틀릴 것이다. 만점을 받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만년 2등 육상선수가 1등이 되기 위해서는 운동화 끈 매는 법부터 바꿔야 한다. 


 롯데그룹에 대한 분석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한데 왜 신세계 백화점이 2위만 하는지 이유를 찾아봤다. 맥킨지 수준의 분석은 아니다. 일단 롯데백화점의 지점수는 34개, 신세계 백화점의 지점수는 12개이다. 이것만 봐도 매출 차이가 왜 벌이지는 지 알 수 있다. 매출의 전쟁터인 서울시내로 좁혀보면 더 극단적이다. 서울시내 롯데백화점의 지점수는 11개, 신세계는 3개이다. 신세계 백화점이 많은 줄 알았는데 찾아보면 실제 개수가 이것밖에 안된다. 홈페이지에서 찾은 개수이니 정확할 것이다.


 매장 수가 곧 매출 규모인 유통업계에서 이 정도 차이면 규모가 벌어지는 게 당연하다. 신세계의 매장 수가 이 정도로 적었는지 몰랐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신세계 백화점의 태생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신세계는 삼성그룹에 오랜 기간 속해있었고 주력기업이 아니었다. 초창기 백화점 멤버로 삼성의 지원을 업고 빅 3에 들기는 했지만 추가적인 투자는 없었고 삼성그룹의 자본은 대부분 전자사업에 투자되었다. 나중에 신세계는 독립했지만 이번에는 이마트 사업에 대한 출혈경쟁으로 백화점에 올인할 상황이 못되었다. 덕분에 할인점 부문에서 일인자가 되었지만 백화점이 여전히 롯데에 뒤지게 되었다. 


 현시점에도 계속 밀리는 이유는 이미 서울시내에서 주요 요충지에 롯데백화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부동산 보는 눈이 재계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던 신격호 회장은 주요 상권 요충지에 롯데백화점을 세웠고 거의 적중했다. 이제는 수십 년이 지나 완전히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로 신세계백화점이 엄청난 땅값을 감당하지 않고서는 큰 규모의 백화점 건물을 요충지에 세우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 서울에는 땅이 없다. 간간이 나오는 부실기업들의 사옥이 있지만 백화점을 위한 위치는 아니었다. 기회가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늦은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매장에서부터 밀리니 유통업의 특성상 다른 마케팅에서 월등하게 앞서지 않는 이상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 어려웠다. 어차피 이렇게 된 상황에서 신세계는 그룹의 주력으로 백화점보다는 이마트에 집중하는 모양새이다. 


 백화점이란 것 자체가 온라인 쇼핑, 실속 추구의 세태 속에 유통업계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점을 모를 리 없는 신세계 그룹에서 여기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마트를 중심으로 후계자로 낙점된 것도 그룹의 주력이 이마트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신세계 센텀시티

 그렇다면 신세계가 성장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매장 수에서 절대적으로 밀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것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세계가 마케팅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최근에는 스타필드를 중심으로 백화점인지 아웃렛인지 헷갈리는 복합쇼핑몰 형태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점차 실속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경향을 잘 파악해 백화점이라는 무거운 형식은 벗어버리고 중고가 매장과 고급 매장을 섞어 중상류층의 소비욕구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수단을 찾은 셈이다.


 나는 신세계가 서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명품점을 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니라 부티끄나 갤러리 같은 규모로 만들어 최상류 층의 소비를 흡수할 필요가 있다. 사실 백화점도 매출의 상당부문을 소수의 고소득, 고매출 소비자가 차지하기 때문에 전 계층을 만족시키는 백화점이 아닌 최상급 VIP를 만족시키는 매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엔터테인 요소를 도입해 줄 서서 구경하고 싶은 곳이 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예전에 벤츠에서 연 팝업스토어에 가본 적이 있는데 벤츠라면 거리가 멀었던 젊은 층과 서민들이 실제로 보고 경험하면서 저변을 확대하는 효과를 낳았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도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다면 그것도 매출이나 다름없다. 그 팝업스토어에는 젊은 층에 맞게 마술, 어쿠스틱 콘서트 등을 열어 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와서 벤츠차를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스타필드와 같은 복합쇼핑몰은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이제 가정마다 차를 가지고 있어서 꼭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어야 장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교외로 차를 몰고 가보고 싶을 만큼 유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엔터테인먼트와 교육이다. 엔터테인먼트 관련 계열사가 없어서 아쉽지만 CGV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어차피 CJ 입장에서도 많은 유동인구를 잡아줄 유통채널이 필요하다.


 영화뿐만 아니라 키즈, 전시회, 갤러리, 쇼,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해야 사람들이 교외까지 나와서 쇼핑하는 명분이 된다. 이것은 온라인에서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꼭 필요하다. 나는 모 쇼핑몰에서 요리를 가르쳐 주는 것을 보았는데 쇼핑몰에서 밥을 먹고 재료를 사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직접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새로운 소비를 유발하는 방식이 매우 좋아 보였다. 교육이란 것도 그런 면에서 접근하면 좋다.


 너무 어린이 대상 교육만 고집할 필요는 없고 기존의 백화점 문화센터와 달리 백화점주도가 아닌 민간 교육 업체들을 다수 입점시켜 다양한 연령대의 유동인구를 유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돈 주고 듣는 사람들은 소비할 여력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교육받으러 왔다가 쇼핑도 하면 전반적인 매출 상승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예전에 어느 자료에서 영국의 전통 있는 백화점에서 바닥을 안쪽으로 살짝 낮춰놓아 매장 중심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어서 고객들이 매장을 돌아다니다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매장 안에 계속 머물도록 한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매우 영악하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고객을 유인하고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물건 파는 곳만 있어서는 안 된다. 지식도 팔고 즐거움도 팔아야 한다.(어느 정도는 공짜로 제공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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