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2: 2021.12.31 피일시차일시야>

21년 12개의 글을 사부작사부작 써내라가며

by IMMM

I. 이기적인 도망자


"피일시 차일시야 (彼一時 此一時也)"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라는 뜻의 고사성어로,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다르므로 그때의 기준이 반드시 지금도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 말은 맹자의 《공손추 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참을 이 문장에 머물던 중에, "내 자식이지만, 너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처음 본다."라는 왜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던졌던 말이 불쑥 떠올랐을까? 사업을 시작하고 승승장구하던 시절, 나는 물질적으로 내 부모와 가족, 내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멋'이라고 믿었다. 이제 와 보니 그것은 진심 어린 마음의 나눔이라기보다 자아도취에 가까운 과시였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을 잃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더 이상 베풀 수 없는 처지가 되자, 나는 그 모든 관계들로부터 도망쳤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을 주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기적 이게도 나는 관계로부터 조금이라도 상처받을 것 같거나 자존심이 상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사람들로부터 제일 먼저 숨어버렸다. 오히려 일로 만난 사람들, 채권자들로부터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사람들은, 나의 밑바닥을 온전히 드러내야 하는 소중한 사람들만큼 두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의 이기적인 모순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II. 여전히 과거에 박제된 '지금'

누군가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성장이란 것을 다시 하기에는 이미 삶이 너무 고달프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성장한 지금의 기억을 유지한 채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OK'다. 물질과 겉치레가 아닌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어 보고 싶다. 돈이 없어도 미안해하지 않고 곁에 머무는 법, 내 못난 자존심보다 상대방의 진실된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먼저 배우고 싶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이 '지만 생각한다'라는 1차원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지금 나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는 우울과 공황에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낀다. 점점 이 불안함이 나를 지치게 하고 현실에서 자꾸만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나의 '그때'는 여전히 과거에 박제되어 '지금'으로 건너오지 못하고 있다.


III. '그때'를 보내고 '지금'을 세우는 일

피일시 차일시야. 맹자의 가르침은 결국 '지금'을 살라는 뜻이다. 과거에 잘 나갔던 나도, 가족들에게 호기롭게 베풀던 나도 이미 지나간 '그때'의 사람이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빈털터리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마음을 나누는 법을 새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지금'의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도망쳤던 것은 가족이 아니라, 초라해진 나의 부끄러움이었어야 했다. 이제는 과거의 잣대로 현재의 나를 난도질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물질이 아닌 마음으로 서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내가 세워야 할 새로운 '지금'임을 알지만 여전히 그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과거의 '그때'가 지금의 나를 끌어당겨 숨 막히게 한다.


2021년 12개의 글을 써 내려가며 뒤돌아 본 나는, 후회와 연민, 자기 질타와 온갖 어두움이 가득한 1년을 살고 있었다. '지금'을 살기 위해 '그때'를 보내주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매일 '지금'을 살다 보면 어느새 조금은 정말 내일의 '지금'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그때'의 나를 용서해 주어도 될까? 언제쯤이면 오롯이 예전의 나로 '지금'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도 과거의 나를 보내주기 위해 사부작사부작 21년을 써 내려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