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본업은 사고처리 3

신에게로 돌아가는 존재

by 임모씨

90년대 초반 한 대학의 강의실

나는 꾸란을 배우는 3학점짜리 강의를 듣는 학생이었다.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내 최고의 이슬람학자이신 C박사님의 제자로서 예비역 학생이었던 나는 꾸란 구절을 암송하는 테스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 외운놈들만 수업을 파할 수 있는, 마치 예비군훈련에서 집에 일찍 갈 수 있는 특권에 목숨걸던 예비군들처럼 줄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빨리 술집으로 가거나 자기일을 보거나 하기 위해 죽어라 외우고 하나라도 틀리면 다시 기다렸다가 다 외울때까지 테스트는 지속되었고 C박사님은 단호하고 가차없이 탈락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남들 다 갈때까지 몇번의 탈락끝에 결국 다 암송하는데 성공하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친구들과 술집으로 누구보다 빨리 달려갔다.

이슬람 경전을 암송하고는 술집이라니...



때마침 라마단을 맞은 사막캠프에서 리비아 기사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리비아식당을 서성이던 짓을 못하고 있던 어느날 결국은 유족들의 합의서를 받아야 하는날을 맞았다.

당췌 감도 안잡히는게 생떼같은 어린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에게 종이짝을 들이밀려면 얼마나 강한 심장과 두꺼운 낯짝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그리고 그 부모들은 가해자인 외국회사를 대표해서 온 한국놈을 얼마나 죽이고 싶을까? 내가 그 입장이라면 나는 그냥 그들이 원하는걸 해줄 마음이 있을까?

어쨌든 누군가는 회사에서 처리해야할 일이었고 그걸 하라고 회사에서는 나에게 돈을 주는것이겠지. 그냥 때리면 맞고 뭐라 욕해도 어차피 우리나라 말도 아니니 그냥 듣고 다만 '합의서'는 꼭 받아가지고 오겠다는 당찬 각오를 하고 마을로 들어섰다.

이번엔 태국-리비아-한국 드림팀도 아니고 그냥 샤리프 알리 아저씨와 나만 단촐하게 갔다. 잘한것 같다. 그 교장선생님은 한대 맞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만큼 나이가 많이 드셨다.


이슬람의 성스러운 달인 라마단달엔 무슬림들은 해가 떠오를때엔 단식을 하고 해가 지는 시간엔 'Iftar 이프타르'라고 해서 다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신실한 무슬림들인 리비아 사막의 주민들은 마을의 중심부에 모여 함께 이프타르 시간을 가지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단지 평소의 왁자지껄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아닌 조용한 분위기에 어쩌면 침울하기까지할 정도로 잔잔하게 사람들은 모여있었다.

마을 어린청소년이 둘이나 죽었는데 유쾌할리 없었을것이다. 멀리서도 티나게 알아보기 쉬운 우리 차량이 마을로 들어서자 모여앉아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차 안에 앉아있던 나에게까지 전달되며 나를 숨막히게 했다.

이쪽을 쳐다보는 그들의 눈에선 가시광선으로 보이지 않은 분노의 레이져가 뿜어져 나오는듯 했다.

군인 무함마드새끼가 권총으로 협박을 해도 그만큼 쫄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냥 캠프에서 당차게 출발했던 각오가 너무 쉽게 무너지고 할수만 있다면 기사에게 얘기해서 얼른 차를 돌려 캠프로 돌아가자고 하고 싶었다.


어떻게 그들의 앞으로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샤리프 알리 아저씨가 내손을 잡고 잡아 끌었는지 아니면 내가 앞장서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는 그들의 앞에 있었고 사람들이 둘러싼 틈에서 유족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은 당장 뭐라도 불이 튀면 나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을터였고 샤리프 알리 아저씨는 그 큰눈으로 엄숙한 표정을 내며 그들과 뭐라뭐라 얘기하고 있었고 유족은 분노와 슬픔 그리고 뭔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기억뿐이었다.

이 성스러운 라마단달에 신실한 무슬림들은 다행히도 살인을 저지를 만큼 사악한 사람들은 아니었고 오히려 사막의 넉넉한 손님접대문화를 대대로 이어온 선한 유목민들이었다. 그들은 우리 일행에게 함께 이프타르를 하자고 권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알라에게서 왔고 알라에게로 돌아가야하는 존재입니다.' إِنَّا لِلَّٰهِ وَإِنَّا إِلَيْهِ رَاجِعُونَ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새어나온 무슬림들의 추모사였다.

그 말을 들은 유족들은 잡은 손을 놓지않고 모임의 상석에 앉아계신 마을의 제일 어르신들에게로 나를 안내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을의 상석에 그분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샤리프 알리 아저씨가 나에대해 뭐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르신들은 한국에서 '이슬람'을 전공한 젊은이를 마치 '학자'대접을 해주는것이었다. 그분들이 내민 꾸란을 펼치기 전에 몸에 베어있는 내 리액션은 '손을 먼저 씻고 펼쳐보겠다'였고 그분들 앞에서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인용하며 내가 리비아에 온 이유를 나의 자유의지로서 더 넓은 세상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이슬람 법학파에 대해서도 주절주절 나열한것 같은데 그분들의 입장에선 저 먼 한국의 듣보잡 젊은이가 공부할 정도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가 존중받는것에 대해 적잖이 감격하셨나보다.

곧 나의 호칭앞에 '우스타드'라는 경칭이 붙어있었다. 학자, 교수를 뜻하는 이 단어는 그 마을 어른들이 나에게 붙여줄 수 있는 최고의 존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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