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본업은 사고처리 4

나같은 놈을

by 임모씨

내가 대학교에 입학함으로서 교육열이 최고조에 달하던 대한민국의 학력인플레가 본격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심지어 대학원까지 가봤으니 본의아니게 타오르는 불에다 기름을 뿌린게 되어버렸다.

고3 2학기를 맞아 아버지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며 오부리 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니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은 안가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으나 뒈지게 쳐맞기 직전 어머니가 말려주셨고, 착한 아들이었던 나는 꿈을 접고 순순히 진학을 택했었다.

나같은 놈도 아들이라고 다리밑에 버리지 않으시고 돈까지 대줘가며 공부를 시켜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고 살아가고 있다.


유가족을 비롯한 마을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첫만남에서 합의서를 들이대는 무례한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가지고간 쌀과 설탕, 그리고 커피를 유가족과 어르신에게 전달드리고 우리의 작은 '성의'를 보여드렸고, 그나마 캠프에서 가까운 동네이니 자주 놀러오겠다고 말씀드렸다.

또한 행여나 뭔가 필요한게 있으면 말씀하시고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씀드리는 선에서 좋은 만남을 마무리 했다.

목숨을 건진것도 모자라 마을사람들의 호의와 존중을 얻게 되니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문제의 합의서는 다음 만남에서 유가족들이 흔쾌히 작성해 주었고,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에게 적지않은 고마음을 표해 그들의 슬픔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태국-리비아-한국 드림팀(?)은 그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최종공판까지 참석해서 그 코미디를 다시 연출하고 유죄를 받은 그 기사는 유치장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더이상 리비아에서 근무할 수 없었고 바로 출국조치가 되어 가장빠른 비행기편으로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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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근로자를 빵에서 구출하고 캠프로 가는길에 찍은 기념사진. 나는 샤리프 알리 아저씨의 리비아 전통복장을 뺏어입고 다른 태국기사의 선글라스를 뺐어쓰고 찍었다. 태국 아저씨는 생각보다 해맑았다.)


cimg0972_taufeeq.jpg (가라 집으로!!)


공부가 재미있어진것은 복학이후였다.

처음생긴 학사경고제도의 첫 수혜자가 될 정도로 공부말고 다른일에 열심이었던 나는 어느순간 공부바람이 들었다.

그때부터 아랍어 알파벳부터 외우기 시작하여 어느순간 아랍어 소설을 배우는 그 시간 맨 앞자리에 앉아서 교수님의 열변에 튀는 침까지 다 맞아가며 수업에는 적극적인 범생이가 되었다. 그 소설속 주인공의 격한 슬픔을 표현하는 아랍어 글자의 반복이 나에게는 증폭하는 아픔을 표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을정도로 몰입하는 학생으로 변했다.

하지만 돌아온탕아가 갑자기 남들만큼 아랍어를 잘 할리 없었고 그 배움은 비로소 아랍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야 조금씩 내몸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시험을 보기위한 아랍어는 내가 비록 못했지만 진심어린 그 추도의 언어를 그들의 언어로 나눌 수 있는 경험과 나와다른 문화를 대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학교에서 교수님들께서 나에게 전해주신 진정한 배움이 아니었을까.

꾸란을 배우고 하디스를 배우고 이슬람을 배우고 외우고 단어를 알고 하는것이 내 미래에 무슨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수단으로 그 사막의 사람들과 교감을 할 수 있는 공감대가 된다는것이 우리 부모님께서 뼈빠지게 돈대주셔서 내가 얻은 행운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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