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루틴
리비아는 이슬람국가이다.
그리고 이슬람은 술이 금기이며, 당연히 리비아에서는 술을 살수도 없고 술을 마셔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다 걸리면 감옥에 갈수도 있다.
하지만 몇십년을 이어져온 한국의 중동건설신화를 뒤에서 묵묵히 지탱해온 멘탈관리자 '술'은 대부분 술을 불법으로 정해놓은 문화권에서도 결코 죽지않고 불법의 생명을 끈끈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마운 존재에게 '친구'라는 아랍어 '싸디끄'라는 진심을 담은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하였다.
그 친구는 너무나 다른 문화적 배경과 기후가 몸과 마음에 주는 충격을 우리 '친구'가 마음을 다잡아주었고 그리움과 고단함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남자들끼리만 지내고 있다보면 그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적응만 되면 정말 재미있다. 낙엽이 길거리에 굴러가도 웃음이 터지는 사춘기를 막 벗어난 여고생처럼 하루하루가 재미있는일로 가득차고, 그 좁은 사회에서도 갖가지 방면의 재주꾼들이 나타나서 외부의 결핍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채우기도 한다.
어느 능력자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동건설의 시작과 동시에 시작되어 보이는 '싸데기' 제조법은 면면히 흘러내려와 이곳까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리비아에 산개해 있던 여러 캠프중 누구의 술이 제일 맛있다, 숙취가 적다 등 품평과 명성도 공유되어 우리 말단 캠프까지 파이프 라인을 따라 몰래몰래 배달이 되었다.
그 가격도 품질과 명성에 따라 다양해서 13년산같은 비싼 싸데기가 있는가 하면 급할때 얼른 찾을수 있는 싸구려 베트남 주조 싸데기까지 다양했다.
근로자들은 쇼핑을 나가서 무알콜 맥주를 사오기도 하는데 취향에 따라 무알콜 맥주를 사서 싸데기를 타먹는 사람들도 있었고 식당에서 얼음을 빌려와서 타먹거나 스트레이트로 먹는 사람들까지 취향마져도 얼추 맞춰가며 음주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쌀을 발효해서 그걸 증류하는 과정을 거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잡스럽고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동안의 비용과 걸리면 감빵가는 그 리스크까지 감안한 비용이 곧 싸데기의 가격인데 어떤 싸구려 싸데기는 발효과정을 단축하기 위해 밧데리 카바이드 용액을 써서 대량생산을 한것이다. 아마도 학교다닐때 마셨던 싸구려 막걸리가 그런 방법을 썼다는데 다음날 아침을 괴롭게 만드는 그런 효과가 동일한 것을 보면 그 흉흉한 소문이 사실이었던것 같다.
내가 가끔 마을로 가서 사오는 '누룩'은 우리 L과장의 요청에 의한것으로 이분은 오랜 해외생활에서 익힌 막걸리 주조 장인이었다. 신기하게도 쌀을 사용하지 않고 지역에서 나오는 대추야자를 발효시켜 진짜로 걸쭉한 막걸리를 만들어 내었다.
쌀로빚은 막걸리가 하얀색인데 비해 이 막걸리는 보라색의 탁한 액채였고 한동안 휴게실의 시간을 장식했었다.
나름 맛도 나쁘지 않고 색깔도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즐겨 퍼마셨었다.
우리 '무뚜반장님'은 저녁시간이면 그 후진 반찬을 안주삼아 고뿌에 싸데기를 넘실거리게 담고 벌컥벌컥 들이키셨다.
내가 캠프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던 기억중 그분이 한고뿌 없이 저녁을 먹었던 기억은 한번도 없었다.
그때문인지 그의 코는 딸기코가 되어있었고 무뚜만큼이나 배가 많이 나온 '아부지'로 기억한다.
오랜 해외근로자생활이 만들어놓은 그의 슬픈루틴은 그를 이 단조로운 사막생활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