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횡설술설 Apr 17. 2022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의외네요

어쩌다 이렇게 생긴걸 어찌하나요?

몇 달 전 <문명 특급>에 한가인 씨가 나왔다가 화제가 됐다. 생전 예능에 나오지 않다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됐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워낙 여성스럽고 곱게 생긴 얼굴인데 성격은 완전 이성적인 데다 털털 그 자체였던 것. 오왓. 놀랐지만, 반가웠다. 그간 이미지 유지를 위해 이 성격을 얼마나 참아왔을까. 댓글에도 그가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이런 본모습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달갑다는 내용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https://youtu.be/gWDBmyZSe54

한가인 씨의 재발견..! 반가워요!


이는 사실 나에게도 꽤나 익숙한 상황이다. 나 역시도 겉모습 대비 가진 성격과 취향이 낯설게 느껴지곤 하는지, 좀 더 가까워지고 나면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의외네요?"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이번에 팀에 새로 오신 분도 "겉보기엔 참하게 생기셨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고 친한 친구 하나는 술만 먹으면 "너 처음 봤을 때 옥상달빛 노래 들으면서 십자수할 것 같았잖아"라며 낄낄댄다. (옥상달빛과 십자수를 비하하는 게 결코 아니다. 내 실제 취향과 상반된 것들일 뿐.)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일이 많지 않았다. '남들이 원하는 나'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나에게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했고 그들은 곧 자신들이 사람보는 눈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나는 의외의 모습들로 그들을 실망시키기보단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모습이었을지언정 그들이 보고 말하는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냥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나의 내면과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내 진짜 모습은 뭘까 혼란스러워 하면서.  


사실 나는 마냥 그렇게 밝고 사랑스럽지 않다. 속에 분명 날 서있고 반항심 있는, 그런 면도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엔 죽었다 깨어나도 욕은 싫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거침없이 말해도 솔직한 모습들에 마음이 간다. 아니 욕 좀 하면 어때? 안 그렇게 생겨서 거친 가사의 힙합 좋아하고, 때론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도 하고, 참하고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게 대충 소맥 후루룩 말아먹는 것 좋아하지만 뭐 어때? 이것도 나의 본모습인 것을. 나의 솔직한 모습이 민낯 그대로 드러났을 때서야 내 속의 뾰족하고 날 선 부분이 나오는 거고 이것이 또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나만의 것이 아닐까.


술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 꺼풀 벗겨진 내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다. 술먹은 다음날 취해서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 해명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도 내가 평소 그만큼 솔직하지 못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브런치 주소를 아는 사람들은 나와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가까운 사람들이어서, 이런 생각을 이렇게 낯부끄럽게 다 보여도 되나 싶은 고민이 들 때도 있다.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하며 주저하기도 한다. 날 것의 적나라함과 야생적 솔직함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 나를 온전히 내보이는 것이 왜이리 부끄러운건지. 그래서 나에게 솔직함이라고 한다면 진부하지만 여전히 동경하는 어려운 가치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거침없이 무심하게 투명해질 예정이다. 이제는 적어도 예전처럼 나의 모습과 이미지를 메이킹하지 않는다. 나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내 취향이 더 선명해지면서 남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나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됐다. 상대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고, 나는 이런 나 스스로가 싫지 않다. 그렇게 멋들어진 사람도 아니고 겉모습과의 간극도 꽤 있지만, 그래서 생각보다 자주 남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겠지만 내 모습 그대로에 가깝게 살아가는 지금이 훨씬 편안하고 자유로우니까.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의외겠지만 뭐. 어쩌겠나요.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나면 바깥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힘이 생긴다.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것들이다.

-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중간 어딘가에 끼어서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