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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Apr 24. 2022

형편없는 디제잉을 합니다

바보같고 진지한 놀이를 하자

다른 어느 것과 마찬가지로 디제잉도 뜬금없이 시작했다. 어느 날 불쑥 친구에게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고, 친구가 어 나도, 라고 말했고 마침 자기 친구가 디제잉을 몇 년째 하고 있다며 그 친구에게 배우자고 했다. 그래!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장소는 그 친구의 집, 수업료는 술. 신이 났다. 디제잉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더욱 신이 났다.


처음 그 친구 집에 가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스크에 겨우 적응해가던 무렵의 봄날이었다. 같이 배우기로 한 친구 두 명과 와인을 사이좋게 나눠 들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낯을 가리는 나는 그 친구와의 첫 만남에 떨리는 마음으로 와인을 꼭 끌어안았다. 문을 열고 우릴 반갑게 맞이해준 그 친구는 그전까지 상상했던 디제이의 모습과는 영 달랐다. 순두부같이 말랑하게 생긴 데다 몸에 타투 하나 없었다. 집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고양이도 있었다. 심지어 그날 새로 데려온 녀석이었다. 얘도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낯을 가리고 있었다. 내 발등 위에 올라가고도 공간이 남는 자그마한 회색 고양이와 놀며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이렇게 조그마했던 녀석


이젠 이렇게나 커버렸다


그렇게 이주에 한 번, 혹은 삼주에 한 번 그 집에 가서 디제잉을 배웠다. 순두부 친구는 순하고도 단호한 선생님이었다. 매번 믹스셋(선별한 노래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곡처럼 구성한 세트)을 짜오라는 숙제를 내주어서, 다음 시간까지 10곡 내외로 준비해 가야 했다. 내가 틀고 싶은 노래들을 고르고, 이를 어떻게 잘 연결되게 구성할 건지 고민한 뒤 이를 매칭 하는 연습까지가 그 작업. 그렇게 준비해서 모이면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한 명씩 틀었는데, 이게 은근히 떨렸다. 나를 제외한 세명이 아닌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운 모습에 긴장이 되어버려서 제발 귓등으로 들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생각없이 즐거웠던 날들이었다. 원하는 대로 셋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도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좋아하는 장르가 같아서 서로의 셋을 들을 때 더 신이 났고, 애정을 듬뿍 담은 신랄한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했다(방금 내가 뭘 들은 거냐, 도대체 갑자기 이 전개는 뭐냐 등등). 술도 참 많이도 먹었다. 매번 양손 가득 와인과 맥주를 사들고 갔고 순두부 친구는 늘 아낌없이 집에 있는 음식들을 내주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으며 배운 탓에 배운 내용을 까먹어버리는 사태도 종종 발생했고, 그 집에 들어간 기억은 있어도 나온 기억은 번번이 없곤 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는 더 심해졌다. 계획했던 우리들의 파티는 무산되었고 디제잉 모임은 술 모임으로 변질되어 만나서 음악은 안 듣고 술만 먹었다. 그러면서 같이 배우던 친구 두 명은 디제잉을 접었지만 나는 놓지 않았다. 실력은 형편없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은 진지했다. 나는 어떠한 환경을 만드는데 음악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들을 새롭게 엮어 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재미를 쉽사리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는 처음에 디제잉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간간이 셋을 짰다. 제멋대로 셋을 짜서, 개발새발 녹음하고, 무려 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로드를 하고, 주위에 뻔뻔하게 공유까지 한다. 그러면서 형편없으니 대충 들으라는 밑밥 멘트를 잊지 않는다. 완벽한 셋을 만들지 않는(못하는) 것에 대한 선제적인 핑계다. 누가 내 셋에 대해 딴지를 걸어도 "엥, 내가 애초에 형편없다고 했잖아"라고 말하면 그만인 게 된 것이다. 어이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발칙한 사고로 하다 보니 희한하게 심적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더 재밌게 느껴졌다.


내가 녹음한 걸 들어보면 때론 바보 같아서 웃기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어서 어디다 쓰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도 없다. 그런데 셋을 짜다보면 세네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나에겐 이게 중요하다.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도 상관없다는, 심적 부담감 없이 순수한 재미를 몰입해서 느낀 때가 언제였나. 일할 땐 나도 모르게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되면서도 동시에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깨부수며 대충 살고 싶은 모순적인 나에게 이런 바보 같고 진지한 재미가 점점 더 귀해진다.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괴상한 것을 만드는, 형편없는 디제잉을 해야지.



창조성 회복 과정에서 하는 행동들은 때론 바보같아보일지도 모른다. 이 바보스러움이야말로 우리의 어린 아티스트를 윽박지르며 흥을 깨는 어른들을 물리치는 수단이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나 바보 같다는 것이 중요하다. 창조적인 삶이란 역설적인 것이다. 진지한 예술은 진지한 놀이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형편없는 믹스셋은 여기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soundcloud.com/9999-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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