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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May 01. 2022

함부로 따뜻한 것들에 대해

오늘도 산만한 내 공간들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의자에 앉아 방을 한 바퀴 돌아본다. 산만하기 짝이 없다. 온갖 엽서, 쪽지, 사진 등등이 방 곳곳에 붙어있다. 떠들썩하기는 회사에서의 내 자리도 마찬가지다. 자리로 놀러 온 사람들은 내 책상을 둘러보곤 말한다. 누가 봐도 이 회사 오래 다닐 것 같다, 야. 다소 모욕적인 이 말에도 거세게 항변할 수 없는 건 그만큼 실제로 책상 위에 벌여놓은 것들이 많아서인데, 그중 팔 할은 편지와 사진이다. 내가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들의 모습이다.


시끌벅적..



청소를 할 것도 아니면서 뜬금없이 내 공간들의 지저분함을 언급하는 이유는, 윤형택 작가의 그림과 인터뷰를 보고 든 생각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최종 목적지가 ‘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간에 전시회장에 걸리게 되더라도 어쨌든 가장 마지막에는 누군가의 집과 같은 안락한 공간에 머물게 되어 그곳에서 그의 그림이 ‘따뜻함'이 되면 좋겠다고.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내가 처음 그의 그림을 보고 기억하게 된 것도 다른 사람을 향한 그의 시선에서 알게 모를 따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좌) Untitled (Man Reading Book), 윤형택 / (우) Untitled (Woman Reading on Sofa), 윤형택



사람에게 최초의 집은 동굴이라고 한다. 너무 밝은 곳에 노출되면 위험하니 그늘로 숨은 것이다. 그늘 안에서 빛을 낼 수 있다면 그때부터 그 공간은 집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예전에는 집의 중심이 불이었다고 했다. 따뜻하게 해 주고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 앉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예전처럼 불이 집에서 그 따뜻함의 역할을 못하니,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에 따뜻함을 느낄 요소가 필요하게 되지 않았을까. 여기서 윤형택 작가는 그의 그림이 마치 ‘불’과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랐을 것이다. 덕지덕지 붙여둔 편지와 사진들이 내 공간에서 그 불이 되어주고 있듯이.


내가 받은 따뜻한 마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눈에 가장 띄는 곳에 한장 한장 붙여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금방 흘려보내게 되니까. 그들이 어떤 온도로 건넸든 나는 오늘도 이를 통해 함부로 따뜻해진다.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속에서 멋대로 평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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