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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May 08. 2022

있는힘껏 거리두기

손 닿는 곳의 티슈처럼

사람 간의 관계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는 단연 '거리'가 아닐까 싶다. 각종 글과 드라마, 영화를 보면 서로 간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심지어 물리적인 거리 기준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친밀한 관계는 50-60cm, 친구 혹은 아는 사람 간의 거리는 60cm-1m 정도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라고. 이렇게 서로 간의 친밀도를 따져가며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기준을 생각할 만큼 거리는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사랑' 논하는 깊은 관계가 될수록  거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사랑한답시고 일거수일투족 얽매이기보다 일정 수준의 거리를 두고 서로 독립적인 틈을 만들어두는  각자의 삶에 있어서 건강하다고들 말한다. 비단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동물 훈련사 강형욱 씨도 말했다. 사랑할수록 거리를 둬야 한다는, 참으로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말은 이렇게 어디선가 간간이 들어왔지만 이를 내가 막상 몸소 깨닫게   동생 때문이었다.


원래는 동생과 별로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8살이나 났기에 어릴 때는 장난만 칠 뿐 속 얘기를 잘 하진 않았다. 내가 대학생 때도 그는 아직 초딩이었으니 나의 연애 얘기 같은 건 터놓을 수 없었던 것. 내가 동생에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된 건 그가 스무 살이 되고 난 후로부터였고, 지금처럼 많이 친해지게 된 건 함께 프리다이빙을 배우러 다니면서부터였다.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공유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가까워졌고, 그러다 보니 모순적이게도 둘 사이의 차이를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됐다.


동생은 나와 한 배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나와 달랐다. 가치관, 성향, 취향 등등 많은 것들이 나와 반대였다. 상대적으로 그는 나보다 더 신중했고, 자신만의 기준이 훨씬 뚜렷했고, 정해진 질서에 따르는 걸 선호했다. 비교적 판단과 행동력이 빠른 나에 비해, 모자 하나를 사는데도 아홉 번씩 써보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신기함으로 다가왔던 차이점들이 이따금씩 답답함 등으로 바뀌곤 했다. 나는 그보다 몇 년 더 살았다는 이유로 비교적 쉽게 한마디 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설 수 있었다. 충고랍시고 말을 툭 던질 수도 있었으며,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줘야 한다는 오만에 사로잡힌 잔소리를 풀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충동들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고 철렁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그를 이끌려고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의 정체성과 가치관 등은 눈 깜짝할 새에 무시당한 것이다. 이러면 내가 욕하는 꼰대 어른들과 내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엄마한테는 말 못 할 내용이라며 속 얘기를 조잘조잘 풀어놓고 있는 그를 보며 마음이 순간 아찔해졌다.


그 후로부터 나는 그 애 몰래 노력한다. 그가 뭐든 털어놓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언니가 되는 것, 그가 어떤 실수를 해도 무조건 그의 편이 되어주는 보호자가 되는 것, 그가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가는데에 함께 할 친구가 되어 주는 것.. 이것은 서로 간에 적당한 간격이 있다는 전제하에만 가능해서, 나는 있는 힘껏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려 애쓴다. 손 닿는 곳의 티슈처럼 너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언제나 비치되어 있는, 그 정도의 거리와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본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애의 인생에 자꾸 쉽게 관여하려 들 것만 같아지니까.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라는 표현에 모두 익숙해졌지만 정작 실제 건강한 관계를 위한 거리두기에는 얼마나 익숙할지 모르겠다. 사랑할수록 더 많은걸 공유하고 붙어있길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직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소중히 대해야 할 영역에 왜 더 함부로 침범하게 되는 건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거리의 적당함이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를 잊지 않고 한 번씩 있는 힘껏 간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건강함은 유지하고 싶다.



<함께 추는 춤>, 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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