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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May 15. 2022

성공한 덕후가 되는 날까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기를

충격적인 한 주였다. 적지 않은 시간 좋아해 왔던, 최근 들어 더 좋아하게 되었던 한 래퍼의 몰카 사건 때문이었다. 다른 사고도 아니고 몰카 범죄라니. 처음엔 그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 소식들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게시물을 올린 것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맙소사. 진짜였다니. 그가 이런 짓을 했다니.. 아무리 실수였을거라 생각해봐도 어찌 됐든 잘못은 잘못이었다.


좀처럼 덕후끼가 없어 어떤 연예인에도 깊게 빠져본 적 없는 나였다. 그럼에도 이 래퍼를 그나마 좋아했던 건 앞뒤가 다르지 않고 솔직해 보였고, 나름 생각도 단단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썩 내 취향이 아님에도 그의 노래도 정주행 했을 정도였다. 하 그런데 이런 사태가 생기다니.. 그의 팬이라거나 덕후라고 말할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꽤나 충격이었다.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은 그게 설사 당장 듣기엔 거북할 수 있을지언정 적어도 뒤에서 딴짓은 안 한다는 내 가설을 그는 보기 좋게 후려쳤다. 나름 사람을 분간하는 기준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직도 한참 모자람을 반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와 같은 경험을 가진 건 나뿐만이 아니다. 시끌시끌했던 여러 사건들만 되짚어봐도 아마 꽤 많을 것이다. 오세연 감독은 무려 이런 경험을 살려 <성덕>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영화를 내면서, 세상의 수많은 덕후들이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하는 그에게서 아직도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틋함이 느껴져 웃프기도 했다. 그렇지.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마음까지 칼같이 끊어지지 않으니까.


그냥 우리 모두가 진심을 다해 지지하고 좋아했던 어떤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돌아서는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아낌없는 응원과 믿음과 사랑을 커다란 상처로 돌려받지 않으면 좋겠는데. 누군가를 향한 우리의 덕질이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런 바람을 줄줄이 읊을 필요도 없다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살면서 누구나 이런 경험을 최소 한번씩은 하게 되는 걸 보면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나가는 과정의 일부인걸까, 싶기도 하다. 그 대상이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마음껏 사랑하는거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이를 그만두는 건 더 어렵다. 나한테 어떤 서운한 짓을 해도,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마음이 머리와는 달리 칼같이 끊어내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좋아하자. 내가 가진 소중한 마음 자체를 잃어버리기에도 아깝고, 아프기 싫다고 안 하기에도 아까우니까. 마음에 상처가 나고 아무는 과정을 통해 더 튼튼한 사람이 되어서, 더 건강한 사랑을 줄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나름 내 안의 어떤 의미에서 '성공한 덕후'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 이야기

https://youtu.be/IvkaThuOznw



*영화 <Call me by your name> 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했던 그 마음을 잊지 말자..!

https://youtu.be/yo7JYjZ13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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