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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Jul 05. 2022

사랑하고 사랑해버리는

너구리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지난주에 한 뉴스가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다. 이름하여 너구리 출몰 사건. 내용은 이랬다. 서울 한강 도심지역에 너구리 가족이 출몰한 사건에 대해 현 상황을 분석하고 주변 시민들과 관련 관리자 등등의 의견을 물었던 것.


https://youtu.be/6pQqwRL3BOM


다른 뉴스와 별 다를 것 없이 느껴지는, 다소 평범(?)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슈가 된 건 기자, 그리고 인터뷰에 응하는 시민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기자는 거꾸로 스트레칭하는 시민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하는가 하면 (그 시민분은 아무렇지 않게 거꾸로 매달려 답변해주셨다), 길고양이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기도 하고(!), 대변을 보던 도중 너구리 습격을 받을 뻔했다는 한 시민의 반려견 이야기에 응아는 다 했는지부터 확인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뭉클했던 장면..


이 뉴스는 단순히 너구리를 주의하라거나 어떻게 내쫓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강이라는 곳에 새로운 이들이 찾아왔는데(혹은 돌아왔는데), 이들과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나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별생각 없이 킬킬대며 보다가 혼자 뭐가 그렇게 뭉클했는지 이 뉴스 영상을 두번 세번 돌려봤다. 4분짜리 영상 안에도, 그 아래 댓글들에도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이, 간만에 느껴지는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성선설 주의자임에도 배려와 따뜻함이라는 것은 이따금 사치스럽고 성가시다. 일하다 보면 사랑이 다 뭔가. 인류애 상실과 함께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영업 일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싫증과 염증이 생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나조차도 학을 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됐다. 그는 나보다도 더 사람을 좋아하던 친구였다. 인류애적인 사랑도 자신의 상황이 여유롭고 너그러울 때만 발현되는, 지극히 수동적인 것이 아니냐는 그의 자조 섞인 말이 서글펐다. 그걸 인정하게 되는 것 역시도.


<서울체크인>에 나왔던 이옥섭 감독, 구교환 배우의 대화


이런 와중에 최근 주변인들로부터 무수히 공유되고 좋아요를 받았던 이 장면을 보고 내가 처음 들었던 생각은 '굳이?'였다. 내가 가진 사랑을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나누기도 벅찬데, 왜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이를 나눠야 하는 건가 싶었다. 너무 미우면 사랑할 수가 없어요. 사랑은 기본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인데 보기도 싫은 사람과 어떻게 사랑에 빠집니까. 애정이 조금도 가지 않는데. 이 장면을 보고 도리어 '저들은 속이 넓고 포용력이 크구나, 난 저렇게까지는 안 할래'와 같은 거리감만 느끼고 말았다.


그런데 너구리 뉴스를 보고 나니 이 장면이 한결 다르게 다가오는 거다. 이옥섭 감독이 말한, 사랑해'버린다'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사랑한다는 것과 다른 게 아니었을까. 나와 친구가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것은 애정이 생겨 자연스레 사랑에 빠지는, 그 자체를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다소 수동적인 자세였다면 사랑해버린다는 것은 차이, 연민, 어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것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 내가 너구리 뉴스를 보며 뭉클해졌던 이유도 알게 모르게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서로를, 그리고 너구리를 책임지고 끌어안고 있음을, 사랑해버리고 있음을 느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성가시지만 어쩔 수 없이 따뜻해서 너구리 뉴스를 두번 세번 돌려본다. 날 피로하게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온기가 필요해져서 또 찾게 된다. 우리는 같이 살기 위해서 더 시끄럽게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랑하기 위해서 더 요란하게 서로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듯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더 시끄럽고 요란하게 경험하며 사랑해버리는 일도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걸 이렇게 인정해버리고야 만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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