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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Jun 26. 2022

언젠가는 잃어버려야 하겠지만

사진을 찍으며 생각한 것들

“나는 사진을 충분히 찍어놓는다면 그 누구도 절대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내 사진들은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잃었는지를 보여준다.”


보고 나서 순간 멍해졌던 낸 골딘(Nan Goldin)의 말. 사진작가 정멜멜은 이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진의 참 잔인하고 무정한 속성을 나타내는 말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느끼곤 한다고. 늘 이 말과 함께 아직 찍히지 않은 사진들과 내가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잃어버려야 할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이 말을 보고 잠시 생각하다가, 내 사진첩을 열어 쭉 훑어보았다. 나는 어떤 순간들을 담았나. 그리고 어떤 순간들을 잃었나. 내 사진첩 속 사진들은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순간의 일부이거나, 혹은 함께 본 풍경들이었다. 좋았던 그 순간을, 결코 영원하지 않을 그 찰나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을 단서가 되는 조각들을 주섬주섬 모아두었달까.


누군가와 (술을) 함께 하는 순간의 일부 ..


사진작가 정멜멜을 좋아하게 된 건 우연히 본 그의 사진들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들은 따뜻했다. 피사체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과 다정한 색감을 띠고 있었다.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솔직하고 엉뚱하고 담담한 어투도 좋았다. 그의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단하고 근사한 사진은 아니었지만, 편안하고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갔다. 사진을 찍다 보면 피사체의 좋은 부분을 빨리 캐치할 수 있게 된다는 작가님의 말이 왜 나오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정멜멜 작가의 사진들 (인스타그램 @meltingframe)



좋은 사진의 기준이 뭐냐, 는 질문에 정멜멜 작가는 ‘사람들이 소중한 순간들을 의식하지 않고 찍어둔 사진들’ 이라고 했다. 꼭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손을 뻗어 찍은 사진들은 왜 다 티가 나는 것인지. 결국 좋은 사진을 많이 찍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마치 피부가 좋으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같이 굉장히 원론적인 답변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는 말이다. 사진은 그 시간의 것들을 담게 되니까.


내 핸드폰 속 사진첩을 보면 요즘의 내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적나라하게 알게 되는데, 낸 골딘의 말을 보고 난 후로부터는 시간을 생각 없이 보내고 있다가도 아차, 싶어서 한 번이라도 카메라를 더 켜게 된다. 언젠가는 잃어버려야 하겠지만 그 잃어버리게 될 때를 최대한 늦춰보기 위해, 그리고 '좋은 사진'들로 내 사진첩을 최대한 채워보기 위해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하는 순간들을 한 장이라도 더 남겨둔다. 한결 더 애틋함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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