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횡설술설 Jul 12. 2022

나의 느리고 부지런한 행복

555원의 적금을 부으면서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 참 많다. 회사 일만 잘 해내기도 바쁜데, 퇴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컨드 잡을 뛰는 사람도 있다. 굉장하다. 심지어 잘 놀기 위해서도 부지런해야 한다. 당근마켓이나 오픈 카톡방을 보면 운동과 같은 취미 활동을 함께 할 사람을 모집하는 글도 많다. 한 친구는 당근마켓에서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갓생살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첫날 파이팅 넘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퇴색되어 가는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라 정이 간다며 귀여워했다.  


태생이 게으르고 계획성 없는 나는 이런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갓생살기’ 트렌드가 영 부담스럽다. 게다가 꾸준함도 부족해서 회사 점심시간에 운동하러 가는 것도 겨우 다니고,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고 있는 것 또한 내 인생 최대치의 꾸준함이다. 내가 부지런 떨며 산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나 하는 생각에 이번 한번쯤은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가 비일비재하다. 계획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는 나만 아는 거니까. 어쩌면 내가 계획을 덜 세우는 이유는 자꾸 초반의 계획을 틀어버리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덜 느끼기 위한 자기 보호책일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유일하게 부지런해지고 싶었던 영역이 있다면 '행복을 느끼는 마음'이었다. 내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밋밋한 회색 빛이라 괴로웠던 올해 초, 느끼는 것도 촉수를 부지런히 세워야 더 보이고 더 찾아내고 더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소위 '행복 적금'을 붓기 시작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마다 내가 좋아하는 숫자 5를 활용한 555원을 입금하기로 한 것이다. 지극히 소소한 순간일지언정 행복을 더 자주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작은 행복들이 쌓이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행복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최근에 게을렀네..!


이래나 저래나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나의 시간들에 고스란히 남겨진다. 내가 어떤 부지런함으로, 얼마나 촘촘하게 살았느냐에 따라 내 하루가 바뀌고 내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바뀐다. 비록 다른 사람은 모를 나 스스로와의 약속일뿐이지만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걸 아는 이상 언제까지고 부지런함이라는 가치를 피할 수만은 없어 다시 주섬주섬 찾아와 본다. 느리더라도 내가 중요시하는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부지런히 조금씩 쌓아가보기 위해.


무언가에 있어서 부지런하게, 그리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어나가는 것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부지런히 느꼈던 순간들이 모인 후를 떠올리며 오늘도 안테나를 세운다. 어쩌면 부지런하게 나의 시간을 채운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최고로 아낄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상반기가 눈 깜짝할 새에 흘렀다. 좀 더 노력을 쏟아부은 하반기를 보내고 난 후에 내가 좀 더 단단하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고 사랑해버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