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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Jul 18. 2022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파도타는 서퍼의 마음으로

1.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하면서, 맞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말이다. 어릴 적 어른들은 내게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며 그래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보다 더 중요했던 건 나에 대해 알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낱낱이. 사랑이란 결국 상대와 깊숙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다 발가벗겨지게 됐다.


2.

상대보다도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된다.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미처 몰랐던,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나의 밑바닥을 본다. 어찌나 내 자신이 꼼짝없이 찌질해지는지. 작은 걸로 엄청 행복해했다가도 별 것 아닌 걸로 질투하고, 두려워하고, 서운해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 기가 찬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을 할 때만큼은 어쩔 수 없이 감정에 매몰되게 되는 것일까. 내가 머리로 컨트롤할 수 있으면 그건 감정이 아니라고 했더랬다.


3.

사랑을 하게 되면 푹 빠지는 편이라 감정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감정의 파도에서 정신을 차리려고 허우적대다가 그냥 포기하고 물살에 나를 맡긴다. 그냥 넘실넘실 자연스럽게 살아야지, 하며 힘을 빼고 몸만 맡기면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감정에 따라 사는 것이 이성에 맞춰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기도 하다. 파도의 오르락 내리락에도 휩쓸려서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잘 버텨낼 수 있을 체력과 나에 대한 믿음을 무한정 필요로 한다. 그래서 결국 사랑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단단해야 한다는, 진부하고도 본질적인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더 건강해지자.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자.  




*

매미가 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다.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 좋으면서도 동시에 너무 슬퍼진다. 이 순간이 오래도록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과 오래 남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공존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너무 행복한 순간에 종종 울컥하기도 한다. 영원하지 않을 순간이라 더 좋게 느껴질 수 있는 걸까? 문득 매미가 365일 운다면 내가 그때도 매미 소리를 이렇게 좋아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매미야 남은 시간 더 우렁차게 울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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