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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Jul 31. 2022

피부 비결이 있다고 한다면

거울은 가끔, 대충 보자

내가 피부가 제일 안 좋을 때는 여유로울 때다. 말 그대로 내게 주어진 여유 시간이 많을 때 보통 피부가 제일 안 좋더라는 것을 얼마 전 우연히 깨달았던 것.


일반적으로 가장 바쁘고 스트레스받을 때 피부가 제일 안 좋지 않나, 라고 생각하기 쉽다. 왠지 여유가 많으면 쉴 시간이 많고, 스트레스도 적으니 피부도 좋아질 것만 같은데 그때 도리어 왜 피부가 안 좋냐고 한다면, 쉽게 말해 거울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서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거울을 더 오래 보고, 오래 보다 보면 평소보다 내 얼굴을 더 샅샅이 뜯어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법도 한 아주 작은 뾰루지까지 굳이 손으로 건드려 생채기를 내게 되는 것이다.


타고난 피부가 엉망은 아닌 데다 톤이 밝아서 작은 뾰루지 하나만 생겨도 제법 티가 나는 편인데, 바쁠 때는 그걸 아예 발견을 못하거나 건드릴 여유도 없어 그냥 무시하고 산다. 무시한 채로 며칠 지내다 보면 혼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도 왕왕 있곤 하다. 그런데 거울을 자주 오래 들여다보면 그 작은 흠을 못 참아내고 결국 건드려버리고, 그러면 뾰루지의 원래 크기보다도 더 큰 크기로 생채기가 나는 경우가 많다. 불필요하게 깊고 큰 상처를 스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문득 이것이 비단 피부에 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여유 시간이 많으면 나 스스로에 대해 더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런 시간이 너무 늘어나면 내가 가진 작은 결점이나 부정적인 생각까지 건드리게 되고, 그래서 평소엔 하지도 않을, 해봤자 즐겁게 사는데 도움도 안 될 근본적인 생각까지도 파고들게 된다. 나는 한 때 내가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존재론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이런 깊은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자연스레 우울한 감정이 스멀스멀 생겨나기도 한다. 나를 너무 들여다보다가 오히려 스스로를 우울한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철학자들 중에 우울한 사람들이 많은 게 괜히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유 시간을 줄이고 늘 바쁘게 살아야 한다, 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거울을 너무 자주, 오래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살면서 분명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겠지만, 매일매일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굳이 내가 가진 작은 흠결까지 매번 찾아내며 건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가만히 두면 내가 언제 그런 생각 했었나 싶게 스르르 사라지기도 하고, 행여나 염증으로 번져 커지려 한다면 그때 들여다봐도 늦지 않다. 피부든 마음이든 거울을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못 살게 굴지 말고 내버려 두자, 이런 작은 흠결들이야 어차피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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