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핥기의 무게중심
살면서 시기별로 자주 되뇌게 되는 말이 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종의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건데, 예를 들어 예전의 한 때는 '대충 살자 유쾌하게' 였고, 지난 몇 년간은 '자연스럽게 살자' 였다. 그때그때 나에게 중요한 가치에 따라 이 말들도 변화해왔다.
이런 내가 최근 몇 년간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해오고 있는 말은 '일희일비하지 말자'다. 가장 많이 중얼거린다는 건 곧 그만큼 일희일비를 많이 한다는 반증. 언젠가부터 일희일비함에 따라 심적으로 오르락 내리락하게 되는 롤러코스터의 느낌이 멀미가 나듯 싫어졌다. 급격한 수직 낙하와 상승의 반복은 지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는 대신 좀 더 단단해지고, 그래서 잔잔한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원체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는 업무 환경 상,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과몰입하는 내 성향 상 일희일비하지 않기란 개미핥기가 개미를 끊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어떤 일이 닥치면 어느새 내 결심을 까맣게 잊고는 울었다가, 웃었다가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희일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이를 최대한 숨기는 것뿐이었다. 감정이 치솟았다가 땅으로 꺼질 때마다 나는 회사 화장실 한 칸에 숨어들어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다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러 간 날, 트레이너 선생님이 반원 밸런스볼 위에 올라가 스쿼트를 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그냥 스쿼트도 힘든데 저 팽이같이 생긴 것 위에서 스쿼트를 해야 한다니. 처음엔 중심을 잃고 엄청 흔들렸다. 다리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시나무마냥 후들거리는 모습이 영 우스꽝스러워 선생님과 킬킬 웃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흔들림 속에서도 찬찬히 나만의 무게중심을 찾아가게 됐다. 흔들림과 안정감이 묘하게 공존하던 찰나.
갑자기 내가 일희일비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작은 것에도 쉽게 즐거워하고 또 슬퍼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생겨먹은 나. 밸런스볼에서 스쿼트하는 것처럼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번 흔들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흔들림을 인지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무게중심이 대략적으로 어디쯤인지를 잊지만 않는다면. 이 무게중심을 기억하기 위해 내 시선이 자주 닿는 곳에 타투를 새겼다. 밝음 속에도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도 밝음이 있는 것이 인생이고 균형점이니, 일희일비하지 말자.
어차피 완벽한 균형점이란 없고 그 누구도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할 수 없다. 일희일비하게 될 때마다 밸런스볼 위에서 흔들리던 나를 떠올리기로 했다. 흔들림 속에서도 더듬더듬 무게중심을 잡았듯이 때로는 확 기울었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찾아와 균형을 잡으면 그만이니까. 쉽게 즐거워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복이라는 정신 승리는 덤.